사무엘서는 구약성경에서 9번째 책이고, 역사서 중에서는 4번째 책입니다. 열왕기서와 사무엘서 2권을 히브리인들은 열국기(列國記)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에 번역될 때 열국기(Book of Kingdoms) 1서가 사무엘상하서이고 열국기 2서가 열왕기상하서입니다. 이들을 모두 묶어서 열국기1, 2서로 분류했다가 우리들은 지금 사무엘상서, 하서 이렇게 나눕니다.
히브리인들은 사무엘상, 사무엘하도 한권이고 열왕기상, 열왕기하도 한권이며, 역대상, 역대하도 한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서를 말할 때 히브리어로 부를 때는 사무엘의 책('세페르 사무엘')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이 써서 이렇게 책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고,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왜 나누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다윗 왕조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정통성을 부여한 왕조로 보기 때문에 초대 이스라엘 사울 왕이 죽는 것으로 사무엘상서를 마무리하고 다윗이 유대의 왕이 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눈 것 같습니다.
‘사무엘상’은 네 사람의 가정이 등장합니다(사무엘 가정, 엘리 가정, 사울의 가정, 다윗의 가정). 이들 모두 전기(傳記) 형식으로 아주 내용을 간략하게 쓰고 있습니다.
이 역사서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는데, 우리가 배우면서, 잘못된 것을 되풀이 하지 않고 또 잘한 것을 우리가 본받기 위해서 읽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나 사회풍토는 역사를 잘 가르치거나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잘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역사는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철학도 문학도 잘 보지 않습니다. 현대인들은 간단하게 인터넷에서나 스마트 폰에서 간략하게 몇 줄을 찾아보는 정도로 역사를 보고 말지, 어떤 인문학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에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상서 1장에 보면 이야기 배경이 에브라임 산지입니다. 에브라임 산지와 베냐민 땅 산지 사이 접경지대에 ‘라마’라는 곳이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이라는 말 전체가 어떤 지명이나 한 고유명사처럼 오해되기 쉽지만, 풀어 쓰면 “숩 땅에 있는 라마”라는 의미입니다. 실로 서쪽 약 26km에 있습니다.
‘엘가나’라는 사람은 에브라임 땅에 사는 레위인입니다. ‘하나님은 소유하신다’ 하는 뜻인데, 고라 자손입니다. ‘엘가나’라는 사람은 숩의 현손입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니까 5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숩의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라마다임소빔’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엘가나에게 아내가 둘이 있었는데 자랑이 아니고 이것은 아마도 첫 번째 부인이었던 한나가 아기를 갖지 못함으로 인해서 두 번째 부인, 브닌나를 두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을 낳았고 원래 첫 번째 부인인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아들이 없다고 둘째 부인을 두어서 아들을 낳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제 둘째 큰 아버님이 이런 경우입니다. 후손, 아들을 낳기 위해서 둘째 부인을 맞이했는데, 저는 둘째 큰어머니는 두 번째 큰 어머니만 주로 뵈었지요.*/ 히브리인들은 자녀가 없거나 아니면 아들이 없거나 할 때 대가 끊어지는 것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얼마 전까지 그랬지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1-2)
에브라임 지파의 행정의 중심이고 종교의 중심이 ‘실로’인데 거기에 솔로몬 성전을 지을 때까지 실로에 법궤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랬다가 엘리 시대에 법궤가 블레셋 땅에 갔다가 또 돌아오고 하는 일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제의(祭儀) 장소는 오랫동안 실로였습니다.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3)
조금 후에 우리는 엘리 가정의 이야기를 보게 될 텐데, 이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을 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4-6)
엘가나 가정의 분위기를 한 절에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제사하러 갈 때 엘가나가 하나님께 제사하도록 재물을 주는데, 둘째 아내 브닌나에게도 주고 자녀에게도 주고 제사를 드리게 합니다. 그런데, 엘가나가 희생제물로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습니다. 왜 한나에게 갑절을 주었겠습니까? 자식이 없어서 늘 마음에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기에 그런 한나를 위로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한나에게 갑절을 준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줘서 제사를 드리게 해도 그것이 한나에게는 만족이 안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 여성들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 할 때, 자기 몸에 큰 결함을 가진 것 때문에 ‘콤플렉스(complex)’를 느끼고 그것 때문에 가슴아파 하지만, 유대 여성들은 ‘내가 정상이 아니다’ 하는 것과 달리 ‘하나님이 나를 외면했다’ 하는 것으로 인식을 하기 때문에 자식 없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만족이 안 됩니다.
남편 엘가나가 그렇게 배려해주고, 제사할 재물을 한나에게 갑절주고 해도 그것이 한나에게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여기 말씀에 두 번씩이나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치 못하게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또, 둘째 부인이거나 첩 주제에 본처가 아들을 못 낳는데 첩이 들어와서 아들을 낳고서, 기고만장한 것이 상처를 줍니다. 그때 라마에 있는 여성이나 한국 여성나 별 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적’ 브닌나라고 썼고, 그녀가 한나를 심히 괴롭게 했기 때문에, 한나는 아주 속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7-8)
‘어찌하여’란 말을 세 번씩이나 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먹지 아니하고 어째서 울고 어째서 그렇게 슬퍼하시오. 내가 그대에게 열아들보다 낫지 않소?”
한나에게 물어봤자, ‘열 남편 있어봐야 뭐 하냐, 아들 못 낳으면 그만인데…’ 이렇게 생각하는가 봅니다. 엘가나가 아내 한나를 많이 배려하고 챙겨주는데도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과 또 브닌나 계속 격동하게 하기 때문에 마음이 슬프고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9-11)
한나의 짤막한 기도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이 기도가 어제 오늘의 기도가 아니겠지요? 또 실로에 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늘 하던 기도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한나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일부러 잉태를 못하게 한 것입니다.
사사 시대의 칠흑 같은 360년 간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점점 더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사사도 타락하고, 제사장들도 의지하거나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깊은 밤이 지나면, 또 새벽이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한 여인의 기도로 여명(黎明)이 서서히 밝아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올립니다. 사사 시대에 삼손이라는 나실인을 키워서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 그 뒤에 다른 대안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또 다시 ‘나실인’ 하나를 기르는 수밖에 없는데, ‘나실인’을 기르려면 여자들로 하여금 애를 못 낳게 해서 애를 못 낳는 서러움에 북받쳐서 견디다 못해 한나처럼 서원하기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기대하셨습니다.
가만히 말씀을 들여다 보면, 이 기도는 한나의 기도 같은데, 관점을 달리 해서 보니까 한나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까지 하나님의 기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기도는 이스라엘 여성들에게,
“제발 아들 하나 낳아서, 거룩하게 길러 가지고 나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일 좀 할 수 있게 해라!”
이런 하나님의 기도가 담겨 있고, 그 시절이나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 여성들에게 부탁하는 기도가, “제발 아들을 낳아서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길러서, 하나님과 일 좀 할 수 있게 해 다오!”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나가 기도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기도해서 한나에게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나가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르지만, 하나님보다 애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람을 찾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떤 가정에서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과 사역을 할 수 있게 정말 잘 길러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못된 버릇 안 들게 길러야 되고, 병에 안 걸리게 길러야 합니다. 사람들도 아이를 기를 때, 누구든지 아이를 잘 기르고, 착하게 기르고, 경건하게 기르고, 준수하게 기르고, 경건하고 건강하게 기르고 싶지요. 그런데 마음대로 됩니까? 그나마 하나님과 약속을 해 놓으면 좀 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기르지 않겠습니까?
신구약 전체로 보면, 첫 번째 나실인이 삼손이었고, 그 다음이 사무엘입니다. 정확하게 나실인이다 라고 기록하지 않았지만, 세례 요한도 나실인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나실인처럼 그렇게 모태로부터 구별되셨고, 사도 바울도 나실인 같습니다. 사도행전 18장 18절에 사도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나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바울이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봐야 몇 사람 안 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2-14)
한나가 서원기도를 반복하는데, 말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만 움직입니다. 대제사장 엘리가 그것을 보고 오해를 하지요. 술취해서 성막에 와서 추태를 부리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5-16)
여기 ‘악한 여자’라는 말을 의역을 했는데, 히브리어에는 벨리알의 딸(‘밧드 벨리알’)로 되어 있습니다. 즉, ‘마귀의 딸’로 보지 말아 달라고 한나가 말합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17-18)
엘리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한나가 근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가 좋은 대제사장은 아닐지라도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저도 뭐 능력있는 목사는 아니지만, 이 강단에서 하는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믿으면, 근심이 사라지고, 기도의 제목이 상달될 줄 믿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19-20)
‘사무엘’ 하는 말은 ‘구하였다’는 뜻보다도 “하나님이 들으셨다.”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러니까 내(한나)가 구하였더니,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한나가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고 남편과 동침했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올리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냥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간구했으면, 담대하게 행동해야지, 행동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믿음 없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1-23)
한나가 서원을 했기 때문에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아들이 젖을 떼면, 하나님께 받치겠다고 알립니다. 유대인들은 젖 떼는 나이가 3살 정도입니다. 3살이면 36개월 정도 되지요. 36개월 동안 젖을 충분히 먹이고 젖을 뗍니다.
/*여성들은 아시고 남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꼭지를 계속 자극하게 되면 임신 호르몬이 안 나옵니다. 자동으로 터울이 만들어 집니다. 그러니까 3년 동안 꼬박 아이가 계속 엄마 젖을 만지고 젖꼭지를 자극을 하면, 임신 호르몬이 안 나와서 정상적인 여자라면 임신이 안 됩니다. 그래서 따로 피임법을 쓰지 않고, 어린 아이에게 젖을 3년을 먹이면, 피임이 되어서 터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젖을 떼면, 우리 식으로, 4살 아이쯤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3살이죠. 이제 우리 나라도 만 나이로 통일하기로 했으니까, 같아졌지요.*/
3살 정도까지 젖을 먹이면, 어린 아이 두뇌발달에 굉장히 유익합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직장간다고 젖을 일찍 떼버리거나 아예 우유를 먹이지요. 이렇게 하니까 아이들이 머리가 나빠집니다.
나실인 법은 민수기 6장에 나오는데, 보통은 일정 기간을 두고 헌신합니다. 20세에서 25세까지 드린다든지. 그런데 한나는 너무 한이 맺혀서 낳게만 해주시면 그 아이의 평생을, 젖 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바치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아이가 자라면서, 백일잔치하고 첫돌잔치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백일잔치, 첫돌 같은 것은 없고 젖을 뗄 때 잔치를 합니다. 아브라함부터 젖을 뗄 때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잔치가 성년식을 할 때 합니다. 남자는 만 12살 되면, 성년식을 합니다. 그리고 성년식 잔치는 굉장히 크게 합니다. 결혼식 잔치보다 더 큽니다. 성년식 때는 집안 일가친척, 경조사를 같이하는 일가친척들이 아이가 성년, 만 12살이 되는 때 잔치를 베풀면 모두 모입니다.
그냥 와서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년식 축의금을 줍니다. 우리 돈으로 거의 1백만 원 정도를 줍니다. 그 아이가 만 12살 될 때, 성년식 때 일가친척, 집안, 친구들이 와서 1백만 원씩 50명 정도 가져오면 5천만 원이나 되지요. 아이가 12살 될 때, 5천만 원 정도를 가지고 인생을 출발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서 대학을 졸업 때쯤 되면, 자산을 얼마나 불렸는지,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서 한 밑천 가지고 이쩌면, 수 억을 가지고 인생을 출발하도록 합니다. 그것도 우리가 배울 만 한 것 같습니다. 돌잔치해서 떡 먹고 남는 것이 뭐 있습니까? 아이의 미래를 위해 종잣돈을 12살 될 때, 성년식하면서 한 사람이 1백만 원씩 축의금을 갖다 주면, 품앗이가 되지요.
아이가 인생을 절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살지 않고, 돈 버는 기술을 어려서부터 배워 놓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좋은 점들을 기독교인들은 전혀 배우려고 하지 않고 본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5-28)
한나가 얼마나 감사했으면, 수소를 세 마리나 제물로 가져옵니다. 사무엘이 4~6살 그 정도 나이입니다. 나이를 많이 봐도 사무엘이 6살 밖에 안 되었는데 그 아이가 벌써 하나님께 경배하도록 집에서 경건훈련을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정에 자라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경건훈련을 해야 됩니다. ‘커서 지가 알아서 하겠지.’ 하면 안 되고, 어려서부터 예배하는 훈련, 기도하는 경건훈련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이 말씀대로 하는 집이 있고 안 하는 가정들이 있는데 어려서부터 경건훈련을 똑바로 한 그런 가정들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이 다릅니다. 예배드리러 오는 자세가 다른 아이들과 다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지막 사사, 샤무엘의 출생과 봉헌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역할 인물이 참 희귀한 시대 한나 라는 여인을 통해 한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셨는데, 때로는 가정의 불행이 또 어려움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서 신실한 자녀들을 길러낼 수 있게 하시고 기도하며 간구하는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미쁘심을 찬양하며 존귀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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