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1-10절까지는 한나의 기도인데, 사실은 찬양입니다. 아들을 낳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내가 주님께 구원을 받았다고 노래합니다. ‘여호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다고 하면서, 아마도 브닌나를 생각하면서 노래한 듯 한데, 교만하거나 오만하지 말라고 합니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5)
한나가 노래하고 찬양한 것이 사무엘을 낳고 바로 부른 것이 아니라 좀 세월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받치고, 자녀를 또 계속 낳습니다. 21절에 보면,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았다고 했는데, 사무엘까지 모두 합하면, 6명을 낳은 것이지요? 그런데 5절에 7명을 낳았다고 하니까 아마도 한 아이는 좀 자라다가 어릴 때에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6-7)
요약하면, 여호와는 생사화복(生死禍福)의 주인이십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10)
이런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완전히 멸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입니까? 11절과 같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지요.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11)
제사장 곁에 5살 밖에 안 된 사무엘을 놓고 옵니다. 사무엘이 어머니와 떨어져서 어떻게 컸는지 설명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서부터 엘가나와 한나가 어린 아이를 훈련시킨 것 같습니다. 엄마와 떨어져서 제사장 집에서 영원히 살게 한 것입니다. 사무엘이라는 한 아이가 태어나서 젖떼기, 그리고 젖 뗀 후에 아이를 평생토록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 집, 실로에서 자라게 하는 것을 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2)
이제 카메라가 옮겨서 엘리의 아들들을 비춥니다. 이 아이들은 한 마디로 행실이 나쁜데, 그 이유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행실이 나쁘면, 사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을 알면, 함부로 죄악을 범할 수 없어요.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대해서 얼마나 바르게 아느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또, 성경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제사장의 아들들이라도 바르게, 착하게, 경건하게 자라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아버지의 직분을 그대로 세습받아서 제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훌륭하다고 해서 자녀들도 그렇다고는 말 못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가문도 이러한데, 하물며, 일반 성도들의 가정은 자녀들을 바르게 기르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한데 목회자 자녀들 중에 못된 애들이 많습니다.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3)
나쁜 행실의 예를 드는데, 벌써 이런 행위가 한 두 번이 아니라 습관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14-17)
‘기름을 태우기 전’이라는 것은 화제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기 전에 빼앗아서 고기를 요리해 먹었다는 말입니다. 요약적으로 말씀드리면, ‘엘리의 아들들의 행실이 나쁘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범하는 것도 나쁜 것이지만, 가장 잘못된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몰라서 그랬다고 해도, 제사장의 아들들, 그것도 대제사장의 아들들이 지금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물을 자기 것으로 착복(着服)했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도 제사장들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아닙니다. 적어도 25살 이상은 되서, 제사를 집례를 해야 할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집례하고 나면, 자기들 몫이 분명히 있습니다. 율법에 명시도 되었고. 그렇다면 제사를 다 드리고 자기 것을 챙겨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하나님의 것도 다 내 것이니까, 내가 먼저 가져가겠다고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준비한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어떻게 엘리가 자기 아들들을 길렀기에 아들들이 이렇게 행동할까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정에도 자녀들이 대체로 이렇게 큽니다. 아이가 잘못할 때 초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채찍으로 때려가면서 바르게 길러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내버려 놔두면서, ‘아이가 크면 알아서 하겠지!’ 하고 그냥 두면, 못된 습관이 굳어집니다.
‘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하듯이 어릴 때, 경건훈련을 제대로 안 하면 계속 그럽니다. 다행이 청소년기에 뉘우치고 돌이키고 회개하는 일이 혹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고 어릴 때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해서 그 아이를 망치는 수가 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자기 집안 뿐만 아니라 교회를 망신시키고 크게 시험꺼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가정에서는 아이를 기를 때 정말 반듯하게 길러야 됩니다. 어릴 때, 맞고 자란 아이는 달라요. 내버려 놔두면 이것이 오히려 해가 됩니다. 성경은 채찍질 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버려 두면 그대로 못된 습관이 굳어 버려서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됩니다.
다시, 이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와 대비를 시켜서 어린 사무엘을 언급합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18)
깨끗한 세마포(베옷)가 이미지로써 사무엘이 은근히 바른 행실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19-21)
엘리가 사무엘을 바친 한나에게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또 ‘다른 아들들, 자녀를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복을 빌었는데, 정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한나에게 세 아들을 더 주시고 또 딸 둘을 더 주셨습니다.
다시, 엘리의 집안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가 늙었습니다. 젊어서도 아이들 버릇을 바로 잡지 못했는데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이 노인말을 더 안 듣습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2)
이 제사장들의 악행이 끝이 없습니다. 제사를 멸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끌어다가 성폭행을 했는데, 이 사실이 엘리 귀에 들렸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이 악행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3-24)
엘리가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래서 어린 아이 버릇은 어릴 때, 바로 잡지 못하면, 여러분도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듣게 될 수 가 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잘못할 때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해야, 커서 큰 사고를 안 칩니다. 크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내버려 두면 아이들이 이렇게 됩니다. 너무 엄하기만 해도 안 되겠지만, 너무 사랑만 가지고 양육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랑과 채찍을 함께 가지고 자녀를 반듯하게 양육해야 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25)
훗날 역사가가 해석하기를, 이들이 아비의 말을 이렇게까지 안 듣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죽이시려고 작정을 하신 것 같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이런 말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공자도, 논어에서 비슷한 말을 합니다.
“획죄어천(獲罪於天) 무소도야(無所禱也)”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때가 없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에게 실수하는 것도 하면, 안 되지만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이렇게 잘못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게 하겠습니까? 사실, 우리 인생들 모두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지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된 것 아닙니까? 참 은혜지요.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26)
반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사람이 자라가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을 받고 또 더 사랑스러워 가고 키도 크고 지혜도 자라고 이렇게 균형 있게 잘, 반듯하게 자라야 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이렇게 자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7)
여기 하나님의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언자라든지 죄를 책망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매우 일찍이 나타난 사람인데.,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천사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28-30)
엘리가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또한 하나님의 제사보다 더 소중히 여기니까 그런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모독하고 해도 바로잡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신학적인 질문인데,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지금도 논쟁을 합니다. 물론 예정론으로 보면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한번 택하셨다고 영원히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택하셨다가도 하나님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잘못하셨거나 실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잘못이나 실수하실 리가 없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자체가 선의 기준이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합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분명히 택하신 가문이고, 그래서 옛날에 네 집이, 레위지파 아론의 자손들의 집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영원히 세워서 일하게 하겠다고 하셨지만, ‘네가 하는 것을 보니까 내가 그렇게 안 해야 되겠어’, ‘결단코 그렇게 안 할 거야’, 하십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을 봐 가면서 얼마든지 하나님은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시는데 누가 “왜 그렇게 합니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업신여기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도 경멸이 여길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1)
노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다 젊어서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백발은 노인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만 얻을 수 있다’ 하는 말씀이 있는데 엘리가 자식들 단속을 안 한 것 때문에 그 집안에 노인이 하나도 없이 다 젊어서 죽게 될 것입니다. 참 두려운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2-33)
좀, 번역이 어렵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한 두 사람이 가문이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게는 하겠지만, 그 사람도 역시 오래살지 못할 것이란 내용입니다. 훗날 다윗 시대에 ‘아비아달’이 이 엘리 가문의 남은 자손인데, 이 사람 마저도 파직하게 되어서 솔로몬 시대에 그 화려하고 부요한 시대에 참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게 됩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4-35)
어떤 하나님의 사람인지 모르나 두려운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도 ‘나답과 아비후’도 하나님께 제사할 때 소홀히 하고 등한이 하다가 제단에서 불이 나와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있거나 특히, 목회자라든지 장로님들이 자녀를 정말 잘 길러야 됩니다. 잘못 길렀을 때 책임이 더 큽니다.
‘충실한 제사장’은 당시에 사무엘을 말씀하는 것일 수 있고,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는 말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36)
엘리의 자손들이 훗날 제사장직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성물을 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충실한 제사장에게, ‘빵 한 조각’ 얻게 제사장 자리 한 자리 구걸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아주 끔찍한 말씀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어떻게 경건훈련을 했는지 보여주셨고 또 어려서부터 교육을 하지 않았던 엘리 가정에 홉니와 비느하스의 가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엘리의 가정이 몰락하는 이유는 ‘모르는 죄’ 때문에 아니라 엘리 제사장이 알면서 자기 자녀들이 저주받을 짓을 자청하는데도 금하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두렵게 새기고 우리 가정에서 자라나는 모든 자녀들이 경건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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