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監察)은 감독하여 살피는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이시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그 옛날 임금들의 마음에서부터 시골 마을의 논밭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까지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우리를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마음이 하나님과 마음이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방식대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1)
이 말씀을 오해하면, 세상의 모든 왕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움직여서, 주관하고 다스리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악한 통치의 잘못은 하나님 탓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왕을 택한 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에서 비로서 비밀이 풀립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1)
지금 우리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곧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성탄절을 축하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지요.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지도자들이 되고, 권세를 얻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가 이뤄질 것입니다. 사람이 다스리는 것은 완전하지 않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말씀이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들은 복음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2)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도 자주 이 말씀을 잊어버리는 듯합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더라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 마음이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실을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행위를 낫낫이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깨어서 경성하여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하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3)
제사는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은혜를 입는 제도가 제사였습니다. 만약, 우리 조상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닐고 있을 것입니다. 정의는 하나님의 법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시대 당시에는 율법이 기준이 됩니다. 상대적으로 지키기가 그렇게 어렵거나 까다롭지 않습니다. 범죄한 것 때문에 우리의 의지와 힘으로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끝에 가서는 항상 부족함과 애매함을 느낍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실은 다 지키지 못하면서, 가식과 가면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공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정의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직 하나님만이 이 공의를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공의의 성경적인 정의는 같은 잠언에 나오는데, 21절입니다.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1)
공의의 좌우편에 생명과 영광(명예)이 있습니다. 정의를 실현하면서 생명까지 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그 죄가 크면, 반드시 사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율법의 기준으로는 살인한 자나, 간음한 자는 죽여야 합니다. 정의는 법대로 심판해서 죄인을 죽여 버리면 끝납니다. 그러나 공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심판을 해야 하지만,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어떻게 범죄한 사람을 댓가를 치르면서 살릴 수가 있을까요?
우리 인간들의 방법과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을 보내셔서 이루십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쓰시고, 하나님의 정의 심판을 받아 인간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범죄한 죄에 댓가를 치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만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죽지만 다시 살아나도록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그 어느 누구도 이룰 수 없는 큰 이적과 기사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단 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믿고,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는, 생명과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주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공의’를 행하는 방법은 ‘용서’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고,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제사는 없고, 오직 찬미의 제사만 있을 뿐이고, 사도 바울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 악한 세대의 문화와 관습을 답습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혁을 시켜야 합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4)
우리 성도들은 눈이 높으면 안 되고 낮은 곳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만하기 보다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세상의 부요나 권력이나 무슨 학문을 자랑하겠습니까? 우리가 오직 자랑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5-6)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면서, 부지런히 살아야 합니다. 모은 재물을 가지고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의 부자들처럼, 자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괄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제에 힘쓰고, 일하면서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0)
악인들은 우리들의 반면 교사입니다. 꼭 악한 일을 해서 악인이 아니라 ‘남’ 잘 되는 것을 배아파 하거나 남이 은근히 잘못되고 망하기를 바라는 것이 악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부자라고 해서 못 도울 이유도 없고,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도울 수 있습니다.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11)
2절 말씀과 비슷합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하나님은 모든 이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공동번역 성경에는 ‘의로우신 자’를 ‘의로우신 하나님’으로 확정했습니다. 이 세상에 선한 분은 하나님 뿐이시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막10:18).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13-14)
악인들의 특징은 ‘무자비’입니다. 그렇다면 의인들의 특징은 ‘자비’이겠지요. 그래서 구제를 합니다. 이 자비는 댓가를 바라지 않은 도움입니다. 의인들의 이 성품은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기 때문에 자비로운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악인들의 기도와 부르짖음은 듣지 않으시지만, 의인의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7)
악인들이 ‘하나님께 무언가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해도, 하나님은 악인들의 의도를 다 아십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인들은 거의 돈을 주면,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축복을 해 줍니다. 심지어 목사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고, 돈을 받고 악한 의도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악인들의 기도를 하나님께로부터 외면하실 뿐만 아니라 심판하십니다. 무자비한 자들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에 의하면, 긍휼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약2:13).
14절에서 은밀한 선물을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바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선물이며, 세상적으로 말하면 ‘뇌물’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문제는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서 강제로 나눠서 평등하게 하고자 함이 문제입니다. 구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은 선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사회주의의 문제는 평등을 강제적으로 법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며 부자는 나쁘다는 인식과 가난한 자들이 감사한 마음 없이 자신의 권리인 듯이 당연히 일을 하지 않아도 모든 재화를 받아 누려야 한다는 잘못된 욕심이 문제 입니다. 반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을 극대화 시켜서, 어떤 면에서는 열심히 일하게 만들고 부지런하게 사람을 만드는 면이 있지만, 지나치면, 경쟁자들을 악한 방법으로 제거하고, 독과점을 하려고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재능을 섬기는 데 쓰기 보다는 자기와 가족을 위해서 이기심을 극대화하려는 탐욕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사상과 논리에 지나치게 빠지면 옳지 못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19)
성경은 독신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이 잠언의 말씀을 읽으면, 결혼보다 혼자 사는 것이 좋은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가정의 화목은 부부에서 시작하는데, 부부가 서로 화목하기가 참 어려운 것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을 드러내는데, 꾸미지 않고 사실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래서, 가정 생활에서 어려움이 있음을 알고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가정 천국을 이루면 좋지만, 남녀 모두 서로가 다른 점이 있고, 짧게는 20년 간 다른 가정에서 자라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 맞춰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20)
그러나, 부부가 화목하고 자녀들을 잘 길러내면, 그것이 가정의 귀한 보배이며 기름입니다.
어느 성공한 여성 CEO가 강연을 했는데, 자신의 휴대폰에는 수 천명의 연락처가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라고 고백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가족이었고, 자신의 행복은 가족들과의 관계가 좋을 때에 그리고 건강할 때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녁 약속은 거의 잡지를 않고, 저녁 식사는 늘 가족과 함께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17)
우리 성도들은 일반 사람들과 즐거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연락을 즐거워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연회를 베풀어서 먹고 마시고, 여행다니고 노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일을 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 이런 저런 오락하고, 게임하며 영화보는 것을 기뻐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죄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아주 보잘 것이 없지만, 자신의 여행을 위해서라면, 1년 치 연봉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사용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부자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남에게 이런 저런 싫은 소리 듣지 않고 엄하게 사람들을 부리면서, 좋은 것은 다 먹고, 좋은 것은 다 보고 누리고 즐기는 것 아닙니까? 나는 뼈 빠지게 일 주일에 쉬는 날도 없이 돈을 벌어야만 겨우 생활을 하는데, 부자들은 여유가 넘치거든요. 과로하는 분들이 쉼이 필요하고 오락 거리도 필요합니다만, 자기 생명을 바쳐서 이룬 부를, 고작 게임 몇 번 해서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성도들은 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기쁨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생명을 살리고 얻는 기쁨입니다. ‘선’을 행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15)
예수님을 닮은 기쁨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8)
이 사회의 정의와 공의를 세우는 데 법정이 참 중요합니다. 그에 못지 않은 것이 증인이지요. 우리 성도들로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참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서 억울하게 피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영혼의 문제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악과 거짓이 판을 치는데, 우리 성도들이 진리를 가지고 조용히 가만히 있는다면,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어떻겠습니까?
이 땅에서 재물을 빼앗기고, 억울하게 생명을 뺏기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영혼의 문제는 차원이 다릅니다.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 증인으로 확실하게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사이비가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니까 자기들이 이기는 것 같고, 힘이 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30-3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늘 성도들에게 승리가 있음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거룩한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악인들의 행위를 낯낯이 살피셔서, 그에 맞는 보응과 심판을 하신다면, 하물며, 거룩한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섬긴 것을 잊으시겠습니까?
악인들의 길을 걷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 거짓에 미혹되거나 유혹되지 않도록 참 진리 안에서 굳건히 서게 하옵소서! 모든 교만과 불의와 거짓과 욕심과 쾌락을 내려 놓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참 진리를 행함으로 우리 속에 참된 기쁨이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생명을 얻는 기쁨, 생명을 살리는 기쁨을 허락해 주옵소서! 주님의 자비하심과 같이 우리들도 구제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교회를 섬기며, 주님의 신실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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