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읽은 예화입니다. 목사님과 경찰 서장님과 군수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오찬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곧 식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식사를 마쳤으니, 음식값을 계산해야 하는데, 누가 밥값을 내었을까요? 그 음식점 주인이 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1-2)
구약 시대에 관원의 권력이라는 것은 참 큽니다. 관리를 기분나쁘게 했다가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함께 먹을 때에도 긴장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그래도 인권이 있고, 자유가 있기 때문에 범법자가 아니면, 그리 크게 긴장할 이유가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먹을 때, 그 사람이 어떠한지 잘 드러나게 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는 직장을 구할 때, 식사면접이라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기업들은 다면 평가라고 해서, 일부러, 식사나 술자리를 만들어서 음식을 먹여 보면서,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람의 인성을 평가하거나 살아온 배경을 알아볼 요령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무튼 어른들과 식사를 할 때, 예의를 잘 갖춰야 한다는 가르침은 어려서부터 배웠는데, 이 말씀은 함께 식사자리에 있는 사람이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거나 음식에 욕심을 부리는 그런 모습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예의 범절 같은 규범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 전체를 보면서, 이 말씀을 읽어보면, 우리 성도들이 절제하는 삶을 살라는 교훈을 줍니다. 가장 작은 것이지만, 음식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이 기본적인 욕구들이 있습니다.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는 것 등 이런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모든 동물들이 기본적으로 생존의 욕구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해도 정도를 넘어서서 절제하지 못하는 삶이 기본적인 욕구 외에 우리가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누가 있는지 의식조차 모르고, 자기 배만 채우기에 급급해서는 참 인격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음식 앞에서 양보하고, 참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무슨 일에든지 인내하고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3)
저가 옛날에 살던 집에는 종종 쥐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쥐 덫을 놓기도 했는데, 그 쥐덫 안에는 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정도 쥐들이 잘 다닐 법한 곳에 두면, 어김없이 쥐 한 마리가 덫에 걸려서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이 되었지요.
우리가 이런 쥐 신세를 면하려면, ‘누가 왜 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가?’ 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가족 간의 친교 모임이나, 어떤 특별한 행사 때문에 참여한 것이라면 좀 쉽게 이해가 되지만, 갑작스럽게 누가 나에게 식사자리를 한 번 갖자고 할 때에는 다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비단 식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에도 수없이 많은 광고와 낚시성 글들이 우리가 가진 휴대폰으로 들어옵니다.
잘못하다가는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자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혹 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내세웁니다.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주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주겠다거나, 고령층이나 젊은 층에게는 쉽게 돈을 버는 일자리를 소개하겠다든지, 여러 가지 것들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까닭없이 베푸는 이득에 대해서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접근해서 우리를 속이고,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빼앗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기꾼이나 범죄자일 수 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4-5)
그래서, 1-3절과 4,-5절이 다른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우리들의 욕심 때문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빠르게 친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은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밥 한번 먹자!’ 라는 말은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말로써 이해를 해도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6-8)
그래서, 무슨 음식 때문에, 그것 좀 얻어 먹으려고, 아무하고나 함께 식사 자리에 가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맛 있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어떤 꿍꿍이가 있을지 조심해야 합니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9)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과 사업이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대접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밥이나 차를 여러 번 사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데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미련한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정말, 좋은 뜻을 가지고 대접을 하는데 별로 감사함도 없고, 좋은 교제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계속해서 대접하는 일은 상대에게 좋지 않은 인상만을 남길 수 있습니다. 나쁘게 세상적으로 말하면, ‘호구’가 되는 일입니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10-11)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지만, 그 지혜를 가지고 지나치게 사악하게 행하면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사업을 늘리고, 부동산을 구입하고, 직원들을 많이 거느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요함이 넘쳐서, 더 가지려고, 연약한 사람들,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의 재산까지 빼앗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사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좌시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대기업들이 196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기업들도 별 볼일 없었고, 자본도 많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경제 성장을 위해서 외환을 차입하여 몇몇 기업에 몰아주어서, 규모를 키우게 됩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세계 큰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게, 자본을 조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대, 삼성, LG 같은 대기업들이 생겨났습니다. 세계에 수많은 제품으로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였고, 많은 세금을 나라에 내고, 일자리를 주어서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기업들을 키워 냈을 때는 세계에 나가서 경쟁하여서 좋은 제품과 상품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했는데, 국내 환경이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많은 자본을 가지고 내수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대기업들이 소규모 상권을 빼앗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빵집입니다. 여러분 80년대만 해도 동네에 개인 빵집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만 가득합니다. 그 많던 가게들이 다 망해서 문을 닫았습니다. 일개 한 개인이 글로벌 대기업과 어떻게 경쟁이 되겠습니까? 제빵사들 일부는 대기업 계열사에 임시직 글로자로 일하게 되었지만,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졌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해야할 일이 있는데, 소규모 상권들을 다 장악해 나가고 있으니,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이익도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치열한 경쟁보다는 편안하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에 기술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 같은 일에 등한시 하게 되고, 그것이 곧 기업 경쟁력을 갉아 먹게 될 것이니까요.
일본이 한 때는 전 세계의 가전제품과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는데, 점점 기술개발을 하지 않고, 제품 개발과 같은 경쟁력을 쌓기 위한 활동보다는 남아 도는 돈을 가지고 부동산 투자나 해서 투기를 통해 돈을 벌어보겠다고 기업가 정신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발주자인 삼성과 LG 같은 회사에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우리 나라로써는 참 다행이었지만, 오늘날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0절과 11절을 어느 한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에게도 적용되지만, 기업이나 국가에도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욕심대로 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12-14)
우리 자녀들을 어릴 때에 잘 훈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대입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징계하시고 채찍질 하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기에게 닥친 일들이 하나님의 징계인지 전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맞아도 깨닫지 못하면, 계속 맞을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욥의 친구들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곁의 사람을 정죄해서는 안 되겠지만, 뻔히 보이는 잘못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조언을 해 주었다가 괜히 관계가 깨지고 미움만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잘 깨우쳐서, 하나님 앞에서 자꾸 징계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15-18)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씀을 잘 따르고, 이 지혜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마음을 쓰고 착념하면, 기뻐하시고 웃으십니다. 꼭 우리 육신의 부모처럼 같은 반응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한 일을 할 때가 생겨서, 그 일을 하고 나서 하늘을 한 번 보세요! 하나님의 미소가 보일 것입니다. 만약, 그런 것을 잘 못 느끼겠다고 하면, 지금 하는 일이 별로 하나님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손해 보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손해를 보면, 다른 방식으로 갚아 주세요! 반드시 장래가 있고 소망이 있음을 이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십시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19-21)
22장에서도 ‘친구’를 사귈 때에 여러 가지 지침들이 있었습니다. 23장에도 언급이 되는데, 술을 즐기는 자들, 비싼 음식에 빠진 미식가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비슷하게 사치하고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과 사귀면, 소비생활에 중독이 되고, 가산을 탕진하게 됩니다. 또, 게으른 사람도 멀리해야 합니다.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같이 잠 자고, 게을러집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2-25)
우리의 부모님들은 언제 가장 기쁠까요? 자녀가 잘 될 때가 아니겠습니까? 세상에서도 잘 되고,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자녀로 소개할 수 있다면, 부모님의 큰 기쁨이 되겠지요.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욥기를 보면, 욥이 경건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천사들에게도 자랑을 하지만, 사탄에게까지 자랑하면서 칭찬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복을 받아 누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분을 다 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의 육신의 부모도 기쁩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26-28)
우리의 부모도 하나님도 우리들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면서, 거룩하고 행복하게 자녀를 낳고 사는 것을 바라십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음녀’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꼭 불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중독이나 나쁜 습관이나 이방의 신이나 우상이 모두 ‘음녀’입니다. 개인과 가정을 파괴하는 그 어떤 것도 조심해야 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항상 말씀에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여기 대표적인 음녀가 ‘술’로 예시됩니다. 우리가 절제해야 할 것 중에, ‘술’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술에 참 관대했었는데, 이제는 사회가 많이 변해서, 술 마시는 문화도 점점 바뀌는 것 같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였는데, 이제는 절제를 미덕으로 여깁니다.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신약 시대에 보면,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네게 자주 나는 병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써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유럽지역은 물이 석회수기 때문에 그대로 먹으면 배탈이 많이 납니다. 2천 년 전에는 물 대신에 하는 수 없이 과즙이나 과일주로 부족한 수분을 보충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맥주라든지 이런 것을 요로결석 환자들에게 조금씩 쓰게 하지 않습니까? 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조금씩 쓰는 것 외에는 우리 성도들은 가능하면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나라 물은 아주 깨끗해서 그냥 마셔도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수질 관리가 잘 되어서 물을 아끼지 않고 낭비하는 것이 문제이지, 성실한 공무원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29-30)
재앙이 술에 취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 정신이 없을 때, 사탄이 기회를 틈타서 우리를 죽음에 내몹니다. 교통 사고로 죽거나 추운 겨울날 동사(凍死)하는 수가 있습니다. 술 마시고 괜히 시비를 걸다가 맞아 죽는 수도 있습니다. 도둑들이나 악한 자들에게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3,500여 년 전에 벌써 폭탄주(혼합한 술)가 있었다니 참 놀랍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게 되더라도 술에 잠겨서 이성이 마비되고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사건 때, 선장이 술에 취해서 잠 자다가 배가 암초에 부딪친 줄도 모르고 하다가 수 백명의 아들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남이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있지만, 술에 잠긴 내가 또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수 있습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31-35)
어떻게 이렇게 잘 묘사했는지, 꼭 술에 취해서 모든 것을 경험해 보고 아는 듯이 말합니다. 이런 것은 간접적으로 알아야지, ‘이 말씀이 진짜인가?’ 하면서 또 확인될 때까지 술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술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걷는 것도 보고, 아무데서나 누워서 잠 자는 취객을 보지 않습니까? 그들의 느낌이 꼭 이 성경에 나온 부분과 같을 것입니다. 슬기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나쁜 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주변을 관찰함으로 이 말씀이 진리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자를 통해 귀한 교훈의 말씀을 주신 것은 한 번 뿐인 인생을 허망하게, 허무하게 보내지 말고, 알차고 보람되고 거룩하고 지혜롭게 살도록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부모님과 이웃은 물론이요,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새해 첫 수요일에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립니다.
오늘도 말씀 가운데, 우리의 연약한 모습들을 봅니다. 작은 것을 참거나 인내하지 못하여서 범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을 가려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교제케 하시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악한 자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이 세상에 우리에게 허락된 것들이 많지만, 절제하지 못해서 죄악에 무너질까 염려됩니다. 좋은 음식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마음 껏 먹고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를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욕망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게 하시고, 절제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선용(善用)할 수 있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가정을 세우시고, 주신 자녀들을 길러내면서 부모님을 통해 주신 사랑과 은혜들을 배우고, 또 육신의 부모님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도 존경하고 사랑할 줄 아는 참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깨어있게 하시고,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추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도와 주옵소서!
말씀으로 사람의 도리를 알게 하시고, 바르고 깨끗하며, 신실한 삶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머리가 되신, 존귀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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