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장은 미련한 자에 대한 계속되는 모욕과 수치입니다. 계속 읽어 나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1)
미련한 자(히, 케실-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때에 맞지 않은 일과 행동, 말을 하면서 분열과 다툼을 조장합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지도자가 되었을까요? 이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자들이 영예(히, 카보드-높은 지위)와 영광을 누리는 것을 봅니다. 가까운 북한 만 보아도, 수많은 사람을 굶어 죽게 하고, 자기 동포를 노예로 착취하고 있는 정권 아닙니까? 그런데, 70년이 넘도록 김 씨 세습왕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세운 것은 이북 사람들 아닙니까? 자기들이 신봉했던 사상 때문에 김일성부터 시작한 그 빨치산 세대들이 나라를 장악해 나갈 동안, 그 북한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결국에는 미련한 사람들이 미련하고 악한 통치자를 세워서 자기들이 죽을 고생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미련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미련한 지도자에게 높은 지위와 영광을 안겨 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참으로 지혜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2)
이유 없는 저주도 이뤄지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이유없는 축복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모두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율법에 약속하신 대로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르면 반드시 상이 있을 것입니다.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그 댓가를 치르겠지요. 그래도 우리 성도들은 기왕이면, 까닭없이 나쁜 말을 하기 보다는 이웃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복을 하는 것이 이웃과 화평을 도모하는 나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3)
중국 춘추시대에는 한비자의 법가 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면, 이스라엘 왕들은 이 잠언의 말씀일 것입니다. 군주가 명확한 법을 제정하고 제시하여서 신하와 백성들을 따르게 할 때, 세(權勢)를 가지고 잘못하는 자들은 일벌백계(一伐百計)하여서 왕의 명령을 강제로 따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대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영향을 준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군주는 채찍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신하들을 다룰 때, 술(統治術)을 가지고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여러 가지를 파악하고 군주의 통치에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이 군주(히스기야)를 위한 잠언으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을 몽둥이로만 다스리는 그 군주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대중(大衆)들은 대체로 미련합니다. 사실, 모든 인생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서, 예배를 드리고 섬길 수 있겠습니까?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4-5)
우리말로, ‘자기 잘난 맛에 산다.’ 고 하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남보다 조금 나은 것 가지고 자신이 잘난 줄 압니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별 거 아닙니다. 다 연약하고 다 병들고, 다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6-7)
미련한 사람을 통해서 어떤 일이나 심부름을 시키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큰 손실과 손해를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 봐야 그 사람이 지혜롭게 일을 감당하는지, 아니면 일만 만드는 지 알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구별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말씀에서 한 가지 힌트가 나옵니다. 마치 다리 저는 자의 달리기를 연상케 합니다. 즉, 일처리가 늦다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즉시 즉시 행동하지 않습니다. 다리가 고장난 것처럼 늦게 행동합니다. 심부름을 시켰는데, 아주 늦게 일이 진행되면, 오히려 안 하는 것보다 못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행동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빠릅니다. 꼭 빠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빠르면서,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빠른 경제 성장이 되었고, 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8)
1절과 같은 말씀이지요. 물매에 돌을 묶어 두면 안 되고 잘 언저져 있다가 물매질을 놓으면 정확하게 돌이 날아가야 하는데, 묶어 있으면 오히려 물매질하는 사람이 다치게 됩니다.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9)
미련한 사람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고통과 고난 뿐입니다. 손해만 당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의 말이라고 해서 다 따르지 않습니다. 조언도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0)
6절 처럼, 사장이 미련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전혀 관련없는 사람에게 중요하고 정교한 일을 맡기듯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의 반대되는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기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만의 재능과 달란트를 잘 관리하고 높은 숙련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1, 13)
미련한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법을 모릅니다. 첫째는 실수를 두려워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13절에 연이어 ‘시장에 사자가 있다’고 외치면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으로 비유했습니다.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야구 선수 중에 타자는 3할 타자를 아주 수준이 높고 좋은 타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10번 중에 7번은 모두 범타로 물러갑니다. 10번 중에 단 3번만 성공해도 아주 잘한 것인데, 7번의 실패가 두려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실패하고서 바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한 다음에는 준비하고 연습하고 실력을 쌓아서 이겨내고 말아야 하는데, 세 번, 네 번, 다섯 번 계속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맙니다. 사람은 모두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그러나, 한 번 실패를 할 때마다 철저한 자기 반성과 준비와 도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2)
스스로 지혜롭게 여긴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언제나 발전하려고 계속 자신을 담금질 하는 사람만이 더 배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1등이 앞으로도 계속 1등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계속 경쟁하고 준비하고 배우고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다 배웠고, 나는 충분히 알만큼 안다’ 고 하면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가는데, 나만 멈추면 퇴보하는 것이지요.
일본의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갈 때, 반도체만 보더라도 세계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고 안주하였다가 삼성과 LG에게 반도체와 가전제품 시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삼성과 LG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기술개발을 하지 않으면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들에게 밀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는 자세로, 듣고, 생각하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4)
돌쩌귀는 우리로 치면, ‘경첩’입니다. 문이 고정되어서 열리고 닫고 합니다. 그렇듯이 게으른 사람이 침대에서 왼쪽으로 돌아누었다가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것을 반복한다는 말이지요. 지혜자가 관찰을 해 보니까 그렇습니다. 참 예리한 관찰력입니다. 아프거나 잠잘 때 외에는 일어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머리도 잘 돌아갑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5)
게으른 사람은 보면, 밥 먹는 것도 느립니다. 먹는 것도 귀찮아 합니다. 자기가 차려 먹는 것은 고사하고 남이 해주는 밥도 잘 먹지 못합니다. 일이 바빠서 끼니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 게을러서 먹지 못하면 그것도 역시 문제입니다.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16)
게으르면서, 더 얄미운 것은 자기가 게으른 것을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그렇다고 핑계를 댑니다. 말로는 누구에게나 지지 않습니다.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보면, 나름 생각이 있는 것인데, 그런 사람과는 대화를 더 이어 가기가 싫게 됩니다.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 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17)
게으른 주제에 또 말은 잘 해서 여기 저기 참견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시비에 끼어들어서 호되게 당합니다. 마치 남의 개를 기분 나쁘게 건드리는 것과 같지요. 개 귀를 잡아 당기면, 왠만한 개는 다 덤비고 물어 버립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너무 나서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그것보다 자기 일에 더 신중하고 집중해서 잘하는 것이 나에게나 남에게 유익합니다.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의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 ” (18-19)
이웃을 헤치고 그것을 즐기는 파렴치한 자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자를 ‘미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말이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을 죽이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어지럽핍니다.
* 미련한 자의 또 다른 이름, 다투는 자, 말쟁이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20-21)
우리 성도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자랑하기 위해서 말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쓸데없이 남의 집 이야기를 옮기고 다는 일을 삼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나 장로나 교회 사람들이 나쁘다고 말하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덧붙이거나 맞장구를 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더라도 전도의 문이 닫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하겠지만, 흠이 있고 죄가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납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잘못과 허물과 죄악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2)
남의 말, 특히 다른 사람의 허물과 흉을 보는 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즐겁게 듣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죄인이라는 증거지요. 남이 안 된 이야기, 망한 이야기, 실패의 이야기. 그러나 말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내면이 더 중요합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원수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으로는 속임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23-25)
우리가 듣기 좋은 말이라고, 다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달콤한 말로 유혹해서 결국에는 우리를 망하게 하고,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보이스 피싱만 우리의 재산을 노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은행에서도 우리를 속이고, 보험사에서도 우리를 속일 수 있습니다. 너무 사람을 믿지 맙시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알고서 속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출지라도 그의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말 하는 자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26-28)
우리의 삶의 끝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언행을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여,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미련한 우리들을 사랑으로 깨우쳐서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심을 항상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들은 미련한 것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했다면 용서하시고, 이제 열심히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옵소서!
때로는 말쟁이처럼,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우리 입술에 파수꾼을 두셔서, 세상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쓰기 보다 복음을 전하며, 이웃을 세우고, 화평케 하는 입술이 되게 하옵소서!
미련한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서 많은 열매를 거두어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 잠언의 말씀들이 마음에 새겨지게 하시고, 때마다 일마다 생각나고 적용할 수 있게 성령님께서 도와 주옵소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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