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7장] 인간관계론

<앤드류 카네기, 어린이 조선일보 발췌>


  잠언 27장은 인간 관계에 대해서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1)

 미국의 유명한 권투선수 였던 마이크 타이슨이 시합 전에 짧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권투 시합에서 한 말인데, 시합에 나가는 선수들이 언제나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준비하고 대결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모두 승자일 수는 없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미래의 일도 자신의 구상한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확신에 넘쳐서 자랑까지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을 잘 세우는 것까지는 맞지만,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자랑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 잘 되고 나서, 후일담처럼, 말하는 것이 낫지 미리부터 자랑하는 것은 주로 사기꾼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 성도들은 마땅히 자기 일을 자랑하면 옳지 않고,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고후10:17)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며, 다 내려 놓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바랍니다 나이들어도 나를 잊지 않기를’ 이란 책이 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조상미 씨가 자기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많은 분들이 젊은 날에는 화려했던 삶이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요양병원에 들어와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삶을 봅니다. 

 한 어르신은 젊은 날 씨름선수였습니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신체 건강하고 아주 시합을 잘해서 인기도 있었는데, 그만 나이들고 병드니까, 아내도 자식들도 케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환자 침대가 맞는 것이 없어서 항상 발은 튀어 나올 수밖에 없고, 그 키에 맞는 침상이 없습니다. 무게는 또 얼마나 나가는지 한 두 명이 달라붙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 분이 무슨 일로 움직일 때마다 입에 ‘미안합니다.’ 를 달고 삽니다. 젊은 날에는 큰 키와 잘 생긴 외모가 남부러울 것 없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큰 짐이 됩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2) 

 남보기에 자랑할 것이 있더라도, 남이 하면 했지, 스스로 자화자찬(自畵自讚)하지 않는 것이 성경의 인간관계론입니다. 자랑하면, 미움을 살 수 있습니다. 친구를 만들기보다 원수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기, 질투하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괜히 자랑했다가 관계가 멀어질 수 있고, 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너무 옷 잘 입으려 하면 안 되고, 똑똑한 사람은 말을 적게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 둘보다 무거우니라.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3-4)

 또 좀 자랑한다고 미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미련하기 때문에 분노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6)

 ‘면책(面責)’은 책임을 면하다(免責)는 뜻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웃사람이나 부모가 자기 자녀나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중하는 것인데,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더 큰 실수를 하지 않게 되겠지요. 우리가 회사나 어떤 조직에서 처음 일을 배울 때, 대체로 혼이 나면서 일을 배웁니다. 그런 혼을 내지 않고 내버려 두면, 그 조직이나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선생님이나 부모가 바르게 책망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또, 신약성경에도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고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씀까지 합니다. (히12:8)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6, 9) 

 성도들은 우리에게 좋은 말만 하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지 말고, 정말 우리에게 따끔하게 충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자꾸 좋은 말로 우리에게 칭찬만 하는 사람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무언가 가져갈 것이 있어서 접근했는지도 모릅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7) 

 이 세상의 물질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서 가치가 변합니다. 필요할 때는 귀하게 여기다가 필요없을 때는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변하는 사람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고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8)

 사실, 인간은 모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에덴 동산에 두셨는데, 시조가 에덴을 떠났으니, 그 뒤에 태어난 우리들 모두는 다 고향을 등진 것이지요. 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흙으로 빚어진 사람 속으로 들어왔으니까.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이 땅에서 오랜 동안 가족과 친척과 이웃과 함께 살면서,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 같지만, 성경을 읽으면 우리에게 참 고향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보금자리를 떠난 새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듯이 우리에게도 항상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길을 찾았지요.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갈 길을 찾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는 죽음도, 해함도 없고 영원히 평안하고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항상 우리는 여행객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마치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10)

 우리가 남을 도울 힘이 있을 때, 도와야 합니다. 친구, 아버지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또 반대로 내가 환난을 당한 때는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에 그랬다가는 형제까지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이 피하다가 놉 땅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서 음식을 얻어 먹고, 무기를 얻습니다. 그렇게 잠시 들렀는데, 그곳에 사울의 가축 관리인인 도엑에게 보이게 됩니다. 다윗을 도왔다고 아히멜렉과 그 자녀들이 모두 사울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한 사람 아비아달만 도망을 쳐서 다윗에게 합류하게 됩니다. 

 다윗의 사정을 후에 가족들이 듣고, 다윗의 부모를 비롯해서 형제들도 다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피한다고 가족들에게 갔으면 가족들 모두 사울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하고 도피 중인 범죄자를 잡을 때도 그 사람의 가족이나 지인 곁에 경찰들이 매복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12)

 재앙을 보고, 잘 숨고 피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어떤 위험지역 뿐만 아니라, 사람이 큰 위험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이단, 사이비에 빠진 사람이나 그 교주들을 피해야 하고 귀신과 연합한 사람 박수, 무당, 신접한 사람, 그리고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도 조심해야 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원어로 ‘아룸’이라고 하는데, 신중한 사람을 뜻합니다.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3) 

 유대인들은 참 재리(財利)에 밝은 사람들입니다. 이 잠언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돈이 필요해서 돈을 꾸는 사람에게 가장 값비싼 전당물은 겉옷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신용으로 돈을 빌려 줄 것이 아니라, 담보물을 받도록 교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외인’은 같은 이스라엘이나 유대인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돈을 꿀 때에는 노예각서를 받고 돈을 빌려 주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보면, 같은 히브리인은 6년이면 빚을 탕감해 주고, 영원히 종으로 부리면 안 됩니다. 그러나 외부사람들은 노예로 삼아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동족은 약간의 재물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지만, 외인들, 이방인들은 노예로 삼아서 영원히 자신들을 섬기게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전 세계의 금융을 장악하고 있는데, 같은 유대인들끼리 사업을 하면 서로 돕고 같이 잘 살게 하고, 함께 산업을 장악해 가지만, 다른 이방 사람들은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삼고 착취합니다. 고대로부터 아주 지혜롭게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간 것이 유대인들입니다. 나라도 없이 1천 년을 흩어져서 살다가 미국 땅과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고서, 온 세계를 뒤에서 주무르고 있는 이들의 지혜를 못 당합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4)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때에 맞지 않으면, 고통이 되고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일하려고 나섰는데, 붙잡고 한참을 ‘샬롬’하면서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해 보세요. 그러면 안 되겠지요? 그럴 때는 간단히 목례하고 가는 것입니다.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5-16)

 보통 부부관계에서 하는 이야기인데, 아내를 말싸움해서 이길 남자는 없습니다. 말로는 보통 못 당합니다. 간혹 여자보다 말 많은 남자가 있기는 한데, 특이한 경우입니다.  대체로 남자는 하루에 5천 단어 안밖으로 말을 하고, 여성들은 1만 5천 단어를 쓴다고 합니다. 세 배 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말로 이길 수 있습니까? 또 16절에 남자가 여자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어가 안 되니까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이지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7)

 선한 경쟁은 사람을 발전하게 합니다. 그래서, 꼭 개인적으로 잘 알고 밥도 같이 먹는 그런 친구가 아니더라도, 경쟁자지만, 나를 발전시키고 경쟁하게 해서 성장시키는 사람은 다 친구입니다. 함께 일하면 좋고, 그렇지 않고 경쟁 회사에 있다 할지라도 같은 분야에서 서로 경쟁할 수 있다면 좋은 친구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8)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잘 기르고 키워야 합니다. 그 나무가 꼭 자기 것이 아니라 주인이 따로 있어도 그렇습니다. 비록 남에게 고용이 되어서 일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 그 열매를 함께 먹게 됩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23-24)

  부귀와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성실한 삶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대게 선배 목사들이 후임 목회자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많이 합니다. 성도들을 양 떼에 많이 비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 목자는 예수님 뿐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영의 양식으로 영혼이 배부르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 받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옷은 행동과 행실을 의미하고, 밭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부귀 영화는 잠시 잠깐이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일을 하다가 이 땅에서 맡겨진 일 때문에 존귀와 영광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받을 면류관과 상을 위해서 사람의 인기나 인정을 바라기 보다는 우리의 일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게 하시고 세상 자랑을 그치게 하옵소서!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 뿐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찬미하고, 세상 가운데 증거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리의 복음을 듣고, 함께 그 길을 걷게 하옵소서! 

 권고를 듣는 귀를 주옵소서! 충성된 친구의 충고, 부모님의 훈계, 스승과 선배의 꾸지람을 듣고 반항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여기고 사랑으로 알고,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귀를 주옵소서! 이들은 주님께서 보내신 지혜자들임을 알고, 우리가 더 성장하고 바르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들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 후배들, 이웃들. 이들을 잘 살펴서 때를 따라 영의 양식을 먹이고,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오직 주인은 그리스도십니다. 종의 직분을 잘 감당하여, “잘했다 충성된 종아! 내 즐거움에 참여할지니라.” 하고 인정을 받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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