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이 이뤄지는 이야기가 4장에 나옵니다. 사무엘이 소년일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이 일이 벌어졌는지 모릅니다. 어느 정도 사무엘이 성장해서 홉니와 비스하스가 담당하던 제사장의 직분을 맡을 나이 정도가 되었을 때에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3장과 4장 사이에는 시간 간격이 존재합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1a)
여기서 사무엘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리지만, 이 아이를 통해서 계속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은 타락하고, 변질되어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주님의 뜻이 전달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식지 않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화(禍)’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1b)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배경과 원인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 전쟁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아벡(Aphak)은 ‘성채’란 뜻인데,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서북쪽 50km 떨어진 곳인데, 고고학자들 간에는 확실하게 구역을 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곳이 블레셋 나라가 원정을 나갈 때, 기지처럼 사용한 곳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2)
전열(戰列, battle line)은 전쟁에 참가하는 부대의 대형을 의미하는데, 이스라엘보다 블레셋이 전술을 잘 세워서 싸웠는지, 이스라엘이 4천 명이나 첫 전투에서 패합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3-4)
고대 전쟁은 신들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이 전투의 패배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와 주지 않아서 싸움에 졌다고 믿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왜 이 아벡 전투에서 이스라엘을 패하게 하셨느냐 하면, 사무엘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심판의 도구로 블레셋 군사들이 선택된 것입니다. 만약, 엘리가 회개하고 자기 자식들을 징계하고, 제사장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다면, 결과는 또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전투에서나 이 세상의 경쟁에서도 ‘죄악’을 범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고,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을 사용해서 징계 혹은 심판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분석을 해 보아도 자신들은 질 수 없는 전쟁인데, 왜 졌고, 수 천명의 군사가 죽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가지 안을 내놓습니다.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 전장(戰場)으로 가져오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전쟁을 하는데,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는 않고 도우실 것이는 것입니다. 언약궤가 실로에 있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지 못하고 아벡으로 언약궤를 가져오면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다고 믿는 자체가 벌써 미신(迷信)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5)
이스라엘 장로들의 제시한 대로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옵니다. 지도자들이 미신 충만하니까, 백성들도 이제는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환호하고 사기가 충만해 집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6)
이스라엘 진영에서 큰 소리가 나고 사기 충천하니까, 블레셋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것은 블레셋이 이스라엘 군영에 대해서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첩자나 내통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블레셋은 적을 알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7 -9)
이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신이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 가나안 땅에 어떻게 정착을 했는지, 어디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왔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적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반면 이스라엘은 상대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문제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 성도들이 잘못하면, 세상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미신처럼 잘못믿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세상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어느 학교 교실에 믿지 않는 선생이 반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선생이 손을 든 아이에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셨니?”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요.”
한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다른 손을 든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배웠니?”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데요.”
다른 아이에게 선생이,
“그럼, 너는?”
“저도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 한 아이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네 말이 맞다!”
하더랍니다.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이웃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아는데, 성도들이 고작 한다는 소리가 “예수믿으면 천국간다!”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겨우 ‘예수님만 믿고 지옥을 면하고 천국을 가겠다.’, ‘이 세상에서 복이나 받겠다.’ 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으면 여기 언약궤를 가져오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데, 성도가 되어서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전도를 하고, 세상을 섬기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7-9)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는데,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였다가 해방되어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신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이 두려움에 도망을 가는 것이 아니라, 더 결사항전할 다짐을 합니다. 여기서 지면 우리는 끝장이다 하면서 히브리인의 종이 되지 않겠다고 목숨을 겁니다. 언약궤를 아벡으로 가져온 것이 오히려 상대편에게 더 결의를 다지는 악수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10-11)
이스라엘 군사들이 사기가 높았지만, 전쟁에서는 패했습니다. 3만 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죽었습니다. 첫 전투에서 4천 명, 이번에 3만 명. 합해서 3만 4천명이 이 아벡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한 법궤마저 빼앗겼으니, 이스라엘로써는 가장 수치스런 패배를 맛본 것입니다. 국치(國恥)
우리 나라도 국치를 맛본 적이 있지요. 가깝게는 일본에 의해서 을사늑약(乙巳勒約) 또는 을사조약(乙巳條約)을 맺은 것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날이 국치입니다. 가장 치욕스러운 때는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 조약을 맺을 날일 것입니다. 대한제국이 완전히 일본에게 식민지가 된 날입니다. 조약 체결 이후 일주일 동안 발표를 미루다가, 순종황제의 조칙이라는 형식으로 선포되면서, 1910년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이 되었습니다. 이 날이 519년 간 유지해오던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멸망한 날 이 된 것입니다.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2-13)
한 전령(傳令)이 실로에 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옵니다. 모습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옷은 찢었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의미로 머리에는 먼지를 뿌렸습니다.
언약궤를 보내고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엘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곡소리로 인해서 더욱 근심합니다. 실로 뿐만 아니라 이 전령의 소식이 닿는 모든 마을들마다 애곡과 부르짖음입니다. 남편과 자식을 전쟁터로 보냈던 부인들이, 자녀들이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4-15)
불길한 예감이 엘리에게 듭니다. 연세가 98세니까, 몸을 빨리 움직여서 소식을 들으러 갈 수 없고, 시력도 안 좋습니다.
“이 소리는 무엇이냐?”
“아무도 없느냐? 나에게 무슨 일인지 알려다오.”
이 때, 엘리에게 전쟁터에서 도망 나온 사람이 전달합니다.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6-17)
“이스라엘 군사들이 큰 패배를 당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고, 하나님의 궤도 블레셋 군사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엘리가 이 소식을 듣자, 의자가 뒤로 발라당~ 꽈당! 엘리도 충격을 먹고 쓰러졌는데, 뇌진탕으로 급사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8)
엘리가 58세에 사사가 되었는데, 40년이 지난 98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날에 두 아들과 함께 엘리가 죽습니다.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19-20)
비느하스의 아내가 그 당시에 임신했었는데, 시아버지와 남편이 그렇게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이를 낳게 됩니다. 이 아이가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을 낳는 것은 불행 중에 그래도 좋은 소식인데, 이 비느하스의 아내도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 죽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어 줍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21-22)
그 아들의 이름이 ‘이가봇’입니다. 원어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있느냐?” 즉,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엘리 가문의 몰락입니다. 대제사장이자 사사로서 온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귀하게 대접을 받고, 높임을 받았던 가문이 하루 아침에 몰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를 잘못 길렀기 때문입니다. 이 이가봇은 유복자로 자랍니다. 어머니 없이 큰 아이가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완전히 멸절하지 않고, 씨를 주신 것은 회복의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코미디에 “있을 때 잘해! 난 봉이야!”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을 바르게 섬겼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지금 구원받은 성도라고 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교만하다가 예수님을 죽이는 큰 과오를 범했고 그로 인해서 전 세계를 떠돌아 다닌 세월이 천 년이 넘습니다.
우리들은 말씀을 읽으면서, 동일한 실패를 하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저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와 그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서,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자신들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를 불러 왔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들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게 하시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를 세우도록 인도하옵소서!
사무엘이 어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들을 수 있는 분별력을 우리에게 주셔서, 항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범죄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들도 자녀들을 잘 길러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키울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 보다 자녀들을 더 사랑하지 않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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