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8장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시작은 말씀에서 시작합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제일 먼저 받은 말씀, 모세5경(토라)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9)
사람이 신을 찾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기도’입니다. 불교에도 그렇고, 샤머니즘을 들여다 보아도, 나무나 돌을 쌓아놓고 사람들이 눈을 감고 소원을 아룁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그 대상이 다르고, 접근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종교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도를 하는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눈을 감고 마음으로 말합니다.
유대교의 기도는 하늘을 향해서 두 손을 펴고, 고개를 하늘로 들고, 눈을 뜨고 소리를 외치는 방식으로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방 신, 바알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또 관찰하면, 그 제사장들이 자기 몸을 칼로 베거나 채찍으로 때리며, 제단을 돌면서 소리내어 기도하는 방식으로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신에게 다가간다고 믿습니다. 또 장소적으로 높은 산이나 높은 곳에서 기도를 해야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곳이 기도처로 적합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본질부터 다릅니다. 기독교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 소원을 아뢰고,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기도를 성도들이 드리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기도는 듣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각, 느낌, 소원 등을 재잘거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가 순종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이 모범을 정확히 보여 주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옵소서!”
이것이 기도입니다. 천지 만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마땅히 피조물로서, 영광을 돌리고, 내게 주어진 명령과 하나님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가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의 자그마한 소원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자가 여러 가지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잠잠히 자기의 일을 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늘 평안함이 있습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1)
많은 사람들이 조급하고, 쫓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좀더 가지기 위해서 좀더 누리기 위해서 애씁니다. 바쁘게 살면서도 왜 자기가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이유와 목적도 없이 헤매일 때가 많습니다.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2)
나라도 그렇고 개인에게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관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직 주님 뿐입니다. 물질이 주인인 사람은 돈이 시키는 데로 합니다. 돈 주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권력에 노예가 된 사람은 ‘권세’ 앞에서 엎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한 분만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자비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잔인합니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이 보통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알아주는데,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런 사람을 ‘권력을 잡고 가난한 자를 억압하는 자’로 의역합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다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나 선한 영역에서 가진 것이 없다는 의미지요.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율법도 버리고, 또 그러한 동류들을 칭찬하며 서로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4)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이런 사람과 율법을 버린 자와는 거리를 둡니다. 서로 엮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지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처음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점점 분별해 나갑니다.
“악인은 정의를 깨닫지 못하나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느니라.” (5)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물질과의 관계를 지혜롭게 거리를 둡니다. 너무 급하게 재물을 쌓으려고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성실히 일하면서, 필요를 채우고,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할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한 정직한 거래를 합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6)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때로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 부유하지 않게 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가난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도 굽게 행하는 것은 ‘부’를 위해서 여러 가지 미덕이 아닌 일을 하는 것인데, 8절 말씀에 보면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리는 일이 예로 나옵니다.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8)
쉽게 말하면,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하는 것입니다. 사채업자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 사채업은 굽게 행하여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쌓은 부가 결국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젠가 빼앗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베푸는 자를 위해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부유하려고 굽게 행하는 일의 다른 예로, 권력을 가지고 토색(Swindle)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입니다.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15-16)
성경 말씀의 비유를 보세요! 부르짖는 사자, 주린 곰으로 악한 관원을 비유합니다. 이런 식으로 빼앗과 갈취하는 것이 악한 사람들에게는 지혜처럼 여깁니다. 다시 돌아가서, 11절 말씀에 ‘부자’ 특히 과정이야 어떻든, 돈만 벌면 된다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물질을 모으는 방법에는 지혜가 있을지 모르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11)
그래서, 정직하게 성실하게 벌어서 부자가 되는 과정 중에라도, 고리대금이라든지 권력을 이용해서 나쁘게 물질을 모으는 것은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부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책망과 심판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땅의 삶은 짧고 유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 나뉠 때에는 한 번 가게 된 곳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 (1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권세도 물질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들은 다른 이웃을 사랑하는데, 그 힘과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은 더 가지려고 그 권세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국민의 복지를 증진 시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누고 사용해서 허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살리고 사회가 발전하도록 이끕니다.
버클리대학 심리학 교수 대커 캘트너가 쓴 ‘선한 권력의 탄생’ 이란 책에서 재밌는 실험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그룹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두 그룹으로 나눠서 사람의 눈 주위의 모습을 보고 어떤 감정인지 맞춰 본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70%를 맞췄지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50% 정도 밖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즉, 권력이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오늘과 같이 민주적인 사회에서 능력있고 열정적이며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에게 권한을 주어서 공동체를 위해 일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은 항상 두 길 가운데 서게 됩니다. 하나는 권력 남용의 길을 가고, 남보다 자신의 생각과 기분과 의지에 따라서 다른 이들을 이용하려 듭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로부터 영향력을 잃고 권세를 잃게 되는 길로 점점 나아갑니다. 반면, 공동체를 위해서, 여러 사람의 공감하는 일을 우선순위를 잘 세워서 하는 사람은 더 많은 힘과 지지와 영향력, 그리고 권력을 얻게 됩니다.
과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권모술수를 해서라도 권력을 차지하라고 하는 그런 신화는 이제는 사라져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셨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나라와 권세 위에 권세를 얻으시고, 찬송과 영광을 받게 되셨습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13-14)
여기서 전제가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숨기려고 하지 않고, 자복하고 버리는 자(회개)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18)
여기서 성실하게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말합니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마음에 말씀을 새겨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니냐 하고 오해합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단, 율법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셔서, 끝난 것입니다. 그 뒤로는 산 제사, 우리 몸을 거룩하게 드리는 영적 예배만 남아 있습니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放蕩)을 따르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19-20)
이 말씀을 보고, ‘난 땅이 없는데…’ 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달란트와 사명이 있습니다.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이 모두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삶의 자리가 바로 ‘자기 토지’입니다. 그곳에서 성실히 일해야 합니다. ‘나 먹을 것만 하자!’ 그 정도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내 가족 뿐만 아니라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나눌 것이 있을 정도로 성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많은 열매와 생산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방탕(공허함, 무가치함)을 따르는 사람은 늘 남에게 신세를 지고 명예도 없는, 모두가 꺼려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일에 비해서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얻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됩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21)
이 말씀은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판사는 피의자를 보고, 유죄인지 무죄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법정 증거주의’ 라는 용어가 있듯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재판해야 합니다. 만약 법을 어긴 사람이 겨우 빵 한 조각 때문에 도둑질을 한다는 것은 참 한심한 노릇입니다. 사회가 악해서 어떻게 벌어 먹고 살 기회조차 없는 그런 사회가 되는 것도 한심한 일이고, 열심히 땀흘릴 생각이 없이 단지 빵 한 조각 때문에 양심을 파는 것도 사람을 가치없게 만듭니다.
“부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서도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 받게 하는 자의 동류니라.” (24)
그런 종류의 또 한심한 사람이 가족의 것을 훔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도 모르고,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봉양해도 모자랄 판인데, 부모의 것을 훔치는 사람도 참 한심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을 보고 참 한심하다고 하지만, 좀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훔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26)
우리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제일 잘 속이는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겠다고 하고서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하겠다고 다짐하고서 한 일은 또 얼마나 많고요. 다른 사람에게 말을 안 해서, 남들은 모를 수가 있지만, 자기 영혼은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행할 수 있습니까? 자기 연약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연을 하려고 하면, 스스로 잘 안 되듯이, 하다못해 니코틴 껌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 조그마한 것인데, 우리 의지대로 잘 되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가 하는 언어와 행동과 습관과 마음 속에 일어나는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이런 것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합니다. 늘, 성령님께 죄를 고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고 그가 멸망하면 의인이 많아지느니라.” (28)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있는데, 저희들은 내 생각만 한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저희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는 돈이나 어떤 사람이나 명예 같은 것에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고 참 주인이신 아버지를 기뻐하며,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구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아버지를 찾으며, 참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게 주신 달란트, 사명을 찾아 정직하고 성실하게 감사하며 또 기뻐하며 감당케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세상이 유익을 얻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스스로 속이고 넘어집니다. 연약하고 실수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면, 우리도 용서하며, 사랑으로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겸손히 섬기게 도와 주옵소서! 설날이 다가 옵니다. 가족 친지들을 사랑하며, 주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함께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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