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약궤의 이동 경로 >
여호와의 법궤가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 후에 사사 시대에 와서 엘리 때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궤를 빼앗기고 처음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의해서 궤는 아스돗으로 옮겨 갔지요. 그리고 여호와의 재앙으로 인해서, 블레셋의 가드로 옮기고 거기서도 또 에그론으로 옮겼고, 다시 블레셋이 궤를 돌려 보냈지요. 그래서 벧세메스로 왔는데, 궤 안을 살펴 보다가 여러 사람이 죽자 거기서도 옮겨 갑니다.
그래서 7장 1절에 ‘기랏 여아림’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기랏여아림은 ‘숲의 성읍’이란 뜻으로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산지였습니다. 기브온 서남쪽 8km 지점에 있었고 원래 기브온 사람들의 땅이었다가(수 9:17) 후에 베냐민의 기업이 되었습니다(수 18:11-15). 이곳은 훗날 태어나는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 선지자의 고향입니다(렘 26:20).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1-2)
여호와의 궤가 기럇 여아림에 20년을 머물게 됩니다. 아비나답(‘나의 아버지는 고귀하시다’)이 그 땅에 사는 레위인 또는 제사장 같습니다. 20년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앞에 가서 절기를 지키지 못했고, 제사도 온전히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세월을 보내니까,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빨리 여호와의 언약궤가 실로에 돌아오기를 바라고 원했을 것입니다.
원하지만,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한 죄가 있기 때문에 모셔 오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 때, 사무엘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아마도 사무엘이 어느 정도 장성해서, 엘리의 뒤를 이을만큼 준비가 되기까지 기다리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또,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품을 열어두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멀리하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도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십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3)
지난 20년 전에 이미 전쟁에서 블레셋에게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섬기고 조공을 받치고 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신들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치고 했을까요? 아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그렇게 많이 갔다 바치라 하지 않았을 텐데, 전쟁에서 진 원인도 있겠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독종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해서 괴롭히지 않았을까요?
그 20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밝히고 있지 않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는 아마도 ‘하나님 섬기고 있을 때가 좋았다’ 는 것이 여호와를 사모했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때가 무르익자, 사무엘이 등장해서, 설파하는 것이 요약하면, “하나님만 섬기라!” 말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블레셋의 신들을 다 버리고, 또 다른 바알들까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알 신도 블레셋의 바알이 있고, 가나안 족속의 바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바알의 아내되는 여신, 아스다롯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4)
아주 바람직한 설교의 응답이지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무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대로 실천합니다. 이런 모습이 저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편으론 4절 말씀을 통해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지, 이집트를 나온지가 얼마입니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았고,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함께 성경을 배우고, 들었고 가나안 땅을 정복했으며 하나님을 경험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섬기고 있는지 통탄할 일이지요.
잠시, 사사기로 돌아가서 지나온 일을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사기 2장 11-1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끝없이 이방신의 미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습관들이 사무엘 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사무엘이 다 버려라 한 그때까지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5)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합니다. 미스바의 뜻은 망대(望臺)입니다. 적이나 주위를 살피기 위해서 높이 세운 곳인데, 장소의 개념도 있지만 ‘지켜보는 자’라는 뜻도 됩니다. ‘인격’이지요. 신앙적으로 보면, 이곳에서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지금도 외부에 적이 많은 이스라엘은 적을 가장 멀리까지 내다기 위해서 여러 곳에 망대를 세웠습니다. 성경에 5군데 정도 있습니다. 여기 미스바는 아마도 베냐민 지파 땅과 에브라임 지파 땅 경계 즈음 있는 지역으로 생각됩니다.
사무엘이 우상을 버리고 오면, 미스바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6)
“물을 길어서 여호와께 부었다”는 것은 마음을 씻는 것과 유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머리에 물을 붓지요. 육의 죽음과 죄의 씻음을 상징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그 고백이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합니다. 그리고 하루 동안 금식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지요.
사무엘이 ‘다스렸다’는 말은 ‘가르쳤다’는 말로도 해석됩니다. 이렇게 사무엘의 주도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의 기도회를 가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7-8)
꼭 이렇게 기도 후에는 시험꺼리가 있습니다. 이 때 당황하면 안 되고, 계속 믿음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에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인 것이 꼭 전쟁을 모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힘을 모으고 준비가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쓰려는 듯, 군사를 몰고 옵니다. 망대니까 블레셋이 어떻게 하는지 잘 보이지 않겠어요?
사실, 무기도 변변치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사무엘에게 나와 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위해서 기도요청을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지요.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9)
구약 곳곳에 예수님을 예표하는 사건들이 나옵니다. 사무엘이 이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어린 양 하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드리는 번제를 여기서 ‘온전한 번제’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응답이 내립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어린 양)님의 희생(십자가)으로 대속(죄용서)을 받고, 진노의 심판(영원 형벌)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0)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 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큰 우레와 블레셋 군사들에게 혼돈과 혼란을 주셔서,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이 거반 죽고 부상당하고 지치고 싸울 능력이 되지 않을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1)
‘벧갈’은 ‘어린 양의 집’이란 뜻입니다. 미스바 서쪽 즘인데,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약 10km즘 떨어진 곳이 아닐까 봅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2-13)
‘에벤’은 ‘돌’이란 뜻입니다. ‘에셀’은 ‘돕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도움의 돌’인데,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블레셋을 무찌를 수 있었다는 의미지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짱돌’(우박)을 내리셔서 블레셋 군사들을 물리쳤다” 고 기념비를 세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까지 신에게 기도할 때 바알이나 아스다롯 같은 우상에게 했을 때는 이런 역사가 없었습니다. 우상과 잘못된 것을 다 내려놓고 자기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르게 신앙생활을 해도 어려움과 시험이 닥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역사를 경험케 하시려는 숨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혹시 나에게나 우리 가정에 우상은 없는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이 있는지 살피고 돌아보면서, 진실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 뒤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경험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참 신이심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신앙의 지도자가 이래서 필요합니다. 의로운 사람, 경건한 사무엘이 백성을 지도하면서 다시는 우상이 그들 마음 속에 있지 않도록 제거합니다. 회개하고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한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도 적을 막아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4)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죄, 우상숭배의 문제가 해소가 되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그런 문제가 사라지니까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앞으로 예언서 ‘요엘서’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가 원만하게 되면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순리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집니다.
우리 나라에도 참 평화가 오려면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 나라는 우상이 충만합니다. 어디가든지 우상이 있고, 산길이나 들 길로 끝까지 가면 절간이 나옵니다. 그리고 교회가 있지만 교회의 젊은 세대들이 점점 떠나가고, 교회가 소멸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사회를 선도하고 영향력을 끼치고 이끌어야 하는데, 돈이 우상이 되거나 아니면 목회자가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교회도 사실 많지 않습니다.
참 두렵습니다. 우리 나라가 정말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면 우상을 버려야 되는데, 쉽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체제라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 하면서 우상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신타파라는 말이 이승만 대통령 때 조금 있었지만, 이제 그런 말이 사라졌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우리 문화를 찾아야 한다면서, 향토문화라고 하면서, 무당도 무형문화제로 등록시키고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 그래서, 우상숭배가 많아졌습니다. 대한민국에 점쟁이가 60만 명이나 됩니다. 우리 나라 군인 숫자보다 많습니다. 온통 점쟁입니다. 심지어 기도원에도 양복 입은 점쟁이가 있습니다. 예언해주고 돈 받고, 기도해주고 돈 받고 거의 무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도응답이 안 됩니다.
우리 나라가 국방 안보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지만, 우리가 우상을 버리면, 많은 나라 가운데 있지만,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군대도 필요하고, 국방도 튼튼히 해야 하지만, 평화를 이루고 싶으면,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춘근 박사 유투브 채널에 보니까 국제정치 역사를 보면 먼 나라하고 싸운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항상 가까운 나라와 싸웁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아니면 중국입니다. 옛날에 몽골이 우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때는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가까운 나라와 잘 지낼 것 같은데, 역사를 보면, 가까울수록 전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참 어리석고 악합니다.
엉뚱한 상상인데, 지금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가 아프리카라든지 지구상에 가난한 나라, 약한 나라를 서로 도와서 좋은 일하기 경쟁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를 들어, ‘미국이 올해 좋은 일 많이 했단다.’ 하고 소문이 나니까, 갑자기 중국이 시기가 나서 ‘우리가 더 좋은 일 많이 하자.’ 하고 경쟁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계 패권을 두고 더 많은 것을 빼앗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악하고 타락을 했는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그 넓은 우주 속에 지구라는 작은 별, 하나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생명들이 충만합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세계, 모든 민족이 다 형제자매 아니겠습니까? 모두 아담의 자손들이고 다 노아의 후손들인데, 놀랍게도 이렇게 인간이 악한 것만 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서니까 아모리 사람하고도 ‘평화가 있었더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15-17)
사무엘이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서 순회하면서 다스립니다. 그래서 또 수십 년 간 평화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사무엘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도 그랬지만, 사무엘 때에도 모세5경(율법)을 7년에 한 번씩 낭독하고 가르쳤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면서, 성경을 가르쳤다면 좋았겠고, 성경을 제대로 배운 후계자, 혹은 지도자를 세우지 못한 점은 사무엘의 부족한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무엘 시대나 여호수아시대에 성경이 어디가 숨어있는지 레위인들이 필사본을 여기 저기 두었어야 했고, 실로에도 있어야 했는데, 아마 엘리 제사장 시대 이후로 분실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더 이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전부다 한 집에 몇 권씩 가지고 있잖습니까? 제대로 배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면서, 나라와 세상을 위한 사무엘과 같은 인재를 길러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무엘 시대에 여전히 우상숭배를 이어오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희들도 말씀을 읽으면서, 또 들으면서 우리도 버리지 못한 우상들이 있는지 살피게 하시고,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게 하옵소서!
이 땅에 아직 버려야 할 우상들, 미신들이 가득합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읽고 배우고 실천하여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우리 민족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아름다운 나라 되게 도와 주옵소서!
이 땅에 참 평화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가까이는 북한과 평화통일을 이루게 하시고, 세계를 위해서도 쓰임받는 우리나라 되게 하시고, 교회들이 깨어서 이 시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사무엘과 같은 거룩한 지도자를 길러내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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