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키백과 출처, 브엘세바 지도 >
사무엘상 7장 17절과 8장 1절 사이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사무엘이 어떤 뇌물이나 사람의 낯을 보아가면서 재판한 일이 없고,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평안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시각에서 사소한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언급이 없습니다.
솔로몬의 현명한 재판처럼, 좋은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가 기록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블레셋 민족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야기가 7장에 나오고 끝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이야기만 부각시키고, 그저 사무엘은 순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전혀 자신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을 만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그러한 것이 사무엘의 훌륭한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벌써 은퇴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1)
제가 볼 때는 약 70세쯤 되어서, 사사의 역할을 두 아들, 장자(長子)와 차자(次子)에게 맡기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사무엘이 사사의 역할을 잘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들에게 그 역할을 세습(世襲)시킬 때에 별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훌륭한 분의 자제(子弟)라고 해서 부모의 인품과 실력을 그대로 물려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기업을 일군 창업 1세대 밑에서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 받아서 더 잘 성장시키는 경영자가 된 아들도 있지만, 오너 일가에 의해서 오히려 더 성장하지 못하고 경영 세습 후에는 기업이 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무엘이 정치도 잘하고, 제사장 역할도 잘했지만, 아버지로서 자식을 썩 잘 길러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 떠도는 말에 ‘자식 자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남의 자식을 너무 흉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식이 더 흉이 많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2)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믿음을 엿볼수 있습니다. 여호와만 참 신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둘째, 아비야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란 뜻입니다. 두 아들 이름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사무엘의 신앙 고백이 들어있고, 아들들이 또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친근히 하고 가까이 모시기를 바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최남단의 도시 브엘세바는 ‘일곱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인데,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곳에서 조약을 맺은 일이 역사적으로 많습니다. 아브라함과 그랄의 아비멜렉이 조약을 맺었고, 이삭 시대에도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었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두 아들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큰 명예와 지위를 얻은 다음에 일어나지요.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3)
아버지 사무엘은 경건하고 성실한 분인데, 그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재판관이 되어서 재판을 뇌물을 받고 판결했다는 것입니다. ‘사사’라는 말은 ‘쇼페팀’으로 재판관이란 뜻입니다. 두 아들이 브엘세바에 가서 재판하는 중에 뇌물을 받고, 재판을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아들들이 아버지를 안 닮은 것이지요.
법정에 서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다가 보면 시시비비가 생길 수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재판관을 통해서 억울한 것이 해소되어야 합니다. 만약, 재판관이 뇌물을 받고 판결을 잘못하게 되면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억울한 것을 해소할 데가 없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법을 잘 지킬 사람들이 없게 됩니다. 정의와 공의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잃게 되지요.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4-5)
이스라엘 지파의 장로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사무엘에게 와서 논의를 합니다. 사실은 재판관 탄핵을 하고, 정치적 권력을 내려 놓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아들들의 뇌물 수수 사건이 정치적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아들들의 사면 조건은 사사 정치 체제가 아니라 왕정 시대로 정치적인 권력 구조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사사 정치체제인데, 사실 신정체제입니다. 오늘날 이란이란 나라에서 보이는 정치 체제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다스리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아들들에게 ‘사사’로서의 권한을 주었다가 하나님의 권위만 실추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6)
사무엘은 자기의 기분대로 거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묻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사무엘이 늙었지만 아주 공과사는 명확하게 구분해서 잘 하고 있습니다. 대개 권력자들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오죽하면, 다른 연예인들의 스캔들을 터뜨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하기도 합니다. 사무엘은 그런 얄팍한 수를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내려 놓고, 하나님께 사무엘이 물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책망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7)
하나님께서 잘못하신 일이 전혀 없음에도, 사무엘을 두둔하시면서, 그 아들들의 죄를 묻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정치사를 봐도 아랫 사람들을 시켜서 지도자가 죄를 지었지만, 자기들은 전혀 몰랐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부하 한 두 사람에게 모든 죄를 덮어 씌워서 감옥에 보내고 마무리 짓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사무엘의 아들들의 잘못도 책임을 지시려고 하십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얼마의 뇌물을 받았는지 자세하게 기록되지 않아서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그리 큰 뇌물 사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김영란 법에 명시된 접대 가능 금액을 살짝 넘어선 정도가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 전에 워낙 사무엘이 약간의 뇌물조차 받지 않은 청렴한 분이기 때문에 조금 받은 떡값 정도가 크게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그런 정도도 하나님은 책임을 지십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인간 왕을 원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8-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었을 때부터, 항상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했듯이 사무엘에게도 그렇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유를 주시는지,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셨지만, 믿지 않고 싶으면 믿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곧 하나님 앞에 설 텐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대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우습게 여기고, 친절하게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전해주고 말해 주어도 무시하고 말아 버립니다.
하나님은 인간들 세계에서 억지로 왕 노릇하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염치가 많은지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억지로라도 계속 왕을 할 꺼야!” 이렇게 안 하십니다. 그렇게 못하세요. 여러분이 싫어하면 그냥 떠나 가십니다.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0)
그래서, 하나님께서 왕정제도에 대해서 사무엘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이 늙었지만, 왕정 제도에 대해서 잘 알아 들었고,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이 하나님이 왕이시라면, 사무엘은 총리 같은 역할인데, 총리 아들 되는 요엘과 아비야가 재판을 굽게 했다는 소문이 나니까 총리 아들들 때문에 하나님까지 불신임 당하는 것입니다.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1-17)
이스라엘 백성들과 장로들은 인간 왕을 세운다는 의미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세히 상기시켜 주는데, 결론은 무엇입니까? 17절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간 왕 한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실 때는 사람을 종처럼 부리지 않았습니다. 사사 시대에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 이런 식의 군대 조직이 없었습니다. 전쟁이 났을 때에 급조해서, 부대를 편성해서 지휘관 몇 사람 두고 싸웠지, 직업 군인을 둔 적이 없습니다. 직업 군인을 두면, 좋은 면이 있지요. 그러나 비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안보비용이라는 것 대부분이 인건비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릴 때에는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군사비로 지출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땅을 모두에게 나눠 주셨지만, 인간 왕은 오히려 일부를 빼앗아서 자기가 차지합니다. 또 백성들로 부역을 지게 해서 왕의 땅을 경작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레위인과 제사장을 위해서 땅의 소산의 십일조와 가난한 객, 고아 과부를 위한 3년 마다 십일조를 추가해서 낼 것을 율법에 명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킨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상숭배하는 마당에 하나님께는 십일조를 잘 드렸을까요?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 제사장 할 일자리가 없어서 미가라는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 들어가서 약간의 옷과 보수를 받고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 사회가 하나님을 위해서 십일조를 제대로 바치지 않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빼앗아서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 나눠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말로는 십일조를 바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얼마나 세금이 거둬졌는지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아마도 거의 내는 것이 없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니, 사무엘의 아들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것을 한 편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재판관도 월급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무보수로 그냥 봉사만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실질적인 원인은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과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왕을 세우면, 십일조를 빼 먹을 수 있습니까? 왕은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땅과 곡식과 옷과 살림살이들을 뺏어갈 것입니다. 이제는 속된 말로 얄짤(?) 없습니다. 그러면 신실한 백성들은 왕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하고, 하나님께도 제사를 드릴 때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세금이 배나 늘어난 것입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은 좋다고 합니다.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18)
사무엘이 왕정제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결론적으로 경고를 합니다. 악한 왕이 일어나거나 왕이 변질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고 괴롭힐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왕정시대가 아니라 공화정 시대이지요. 그래서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권력이 여러 기관으로 분산시켜서 대통령도 뽑고 국회위원도 세우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선출했기 때문에, 지도자의 정치행위에 대해서 대가를 치뤄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선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말 합당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 인물들을 우리 교회가 길러내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섬기고 있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19-20)
이렇게 무지막지한 사람들은 하나님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고집은 하나님도 말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수준에 맞는 어리석은 왕을 세우고 어리석게 고통을 당하고 후회하곤 합니다. 사실, 최고의 정치제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고, 인간이 인간 위에 군림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제도입니다. 이 최고의 제도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도 못하고, 수준이 낮기 때문에 실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왕을 세우라고 허락하시면서도 하나님 마음이 안 좋습니다. 인간들이 억지로 자기들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해서, 허락하셨지만 하나님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해서 하는 것은 아닐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라는 신약 성경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가능하긴 하지만, 덕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21-22)
사무엘이 모든 설명과 조건들을 다 이야기 했지만 설득이 되지 않았고, 인간 왕을 세우기로 하고 백성들을 돌려 보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무엘이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인가 준비를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
우리 나라는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이 왕으로 있다가 그리고 민주주의 시대로 넘어 왔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을 뽑았지만, 왕이 다스리던 시대다 더 악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조시대 왕들은 그렇게 악(惡)하지 않았습니다. 존경을 받는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저지른 악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교과서에 잘한 것과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서 기록했지만, 모두가 다 진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살았던 지식인들이나 학자들이나 교수들이나 아니면 역사학자들, 기자들이 쓴 것을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끔찍한 만행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참 악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 망했습니다. 그래서 고백할 수밖에 없는 말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라는 것이지요.
성경의 역사서가 정치역사입니다. 역사에서 정치이야기를 빼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서로 견제하며 국민을 섬겨야 하는데, 종교는 종교대로 타락해서 국민들의 피를 짜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국민들을 못살게 해서 정당한 심판이 이 땅에서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최후에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은 국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 평화가 깃든 나라, 전쟁의 위험이 사라진 나라를 물려주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무지몽매한 백성들이 고집을 부리고 합당하지 않은 요구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어리석은 저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비록 사무엘의 아들들의 작은 죄악 때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왕의 자리에서 물러 나시고, 새로운 인간 왕을 준비케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는 일이었고 사무엘도 기뻐하지 않는 일이었으나 무지막지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허락하신 것을 보고, 저희들도 행여 그런 고집으로 기도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 뜻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아버지 뜻대로 되길 원합니다’ 라고 겸허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구한 후에 역사가 더 발전된 것이 아니라 더 나빠졌음에도 저들은 회개할 줄을 몰랐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 국민들도 깨어서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 깊이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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