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9장 사울의 등장

 

< 출처: 위키백과, 베냐민 지파 땅 >

 구약성경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베냐민 지파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와 내전을 치르면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약한 지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려고 할 때, 이 베냐민 지파에서 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유다 지파나 여호수아가 난 에브라임 지파 같은 곳에서 왕을 세우지 않으시고, 하필이면 가장 적고 연약하게 되었던 베냐민 지파에서 초대 왕을 세우셨을까요?

 지도를 보셔도, 베냐민 지파가 차지하고 있는 땅도 다른 지파에 비하면 적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1)

 베냐민 지파 중에서 사울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지 않고 ‘기스’라는 사람이 먼저 등장합니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는 이름의 뜻이 ‘활’입니다. 전쟁 무기지요. 아마도 무인(武人)이 아니었을까 추측이 됩니다. 앞으로 왕을 세우면,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많이 해야 할 텐데, 그런 면에서 무인 가문에서 지도자를 세우신 것 같습니다. 

 훗날 사울이 죽을 때, 다윗이 노래를 짓습니다. 그 노래가 ‘활의 노래’입니다. 사울도 그 아들 요나단도 모두 활을 잘 쏘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아주 신궁(神弓)이라 할 정도로 활을 잘 쏘았다고 합니다. 기스 가문의 사람들이 아주 활을 잘 쏘는 무인 가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2)

 사울의 이름은 ‘희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문의 희망이었고, 이스라엘의 희망이지요. 이스라엘 12지파의 내전이 벌어져서, 베냐민 지파에서는 모든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죽었습니다. 단 600명의 남성들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들에게 아내를 구해 주어서, 새롭게 베냐민 지파를 부흥시키는데, 몰락한 지파일지라도 다시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망했다고 영원히 멸망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고, 범죄한 자들을 보호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했다가 온 지파가 망하게 된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런 자신들의 역사를 사울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대화하는 것을 보면, 자기 가문과 자기 지파에 대해서 분수를 알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제일 미약하고 또 자기 지파 가운데 자기 집안은 지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을 만큼 제일 못난 집안입니다 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중심을 아셨는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사울이 키가 참 큽니다. 우리 나라 20세 이상 성인 남성의 키가 172~174cm 정도라고 하는데, 그보다 어깨 위라면, ‘서장훈’ 선수만큼 큰 키입니다. 지금도 2m가 넘으면 키가 너무 커서 불편합니다. 버스 타고 다니기도 힘들 텐데, 옛날에 그정도로 크면, 얼마나 큰 키였겠습니까? 이 사울이 하는 행동을 보세요.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3-4)

 아버지 기스가 사울에게 암컷 나귀들을 잃어버렸으니까 찾아 오라고 시킵니다. 두 말도 않고 종과 함께 나귀들을 찾으러 떠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들은 수컷보다 귀합니다. 더 비쌉니다. 어쩌다가 나귀들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나귀를 찾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납니다. 부모의 말에 순종을 잘 하는 사울을 보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울이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신 것 같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땅에서 에브라임 땅까지 나귀들을 찾으려고 살펴 봅니다. ‘살리사’ 하는 말은 ‘초원’, ‘들’이란 뜻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도나 낮은 평지 같습니다. 반면에서 ‘사알림’은 ‘높은 곳’, ‘천장’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높은 언덕 산지까지 나귀를 찾은 것이지요.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높은 곳에서 낮은 평지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나귀를 사환과 함께 사울이 찾는 것입니다. 앞으로 좀 있으면 다윗을 만나게 되겠지만, 어딘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나귀나 양이나 한 마리도 잃지 않으려고 찾고, 살피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5)

 숩 땅, 숩 사람들의 땅. 사무엘상 1장에서 사무엘의 고향 ‘라마다임소빔’ 설명을 드릴 때에, ‘숩 땅에 있는 라마’ 라고 했습니다. 즉, 지금 사울이 암컷 나귀들을 찾다가 사무엘의 고향집에까지 찾아간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베냐민 지파 땅의 경계까지. 꽤 먼 길을 나왔는데, 아직까지 나귀를 찾지 못했습니다. 꽤 시간이 흐른 것이지요. 그런데, 사울이 아버지가 자기를 걱정하실까 염려가 되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효자(孝子)지요. 그런데, 좋지 않은 쪽으로 보면, 끝까지 나귀를 찾아서 돌아가겠다는 의지나 책임감은 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간에 고생이 되어서 좀 일찍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그와 함께 한 사환이 무엇을 좀 아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6)

 “라마 땅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그분에게 가서 물어 봅시다. 혹시 우리가 나귀들을 찾아서 돌아갈 수 있게 알려 줄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고 사환이 사울에게 제안을 합니다. 사울은 ‘라마’라는 곳에 사무엘이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사무엘이 순회를 하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베냐민 지파 땅에는 사람도 적고 그렇게 재판할 일들이 많지 않아서, 그 근방을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요즘이야, 인터넷, SNS 등 소셜미디어도 있고, 대중 매체, 신문, 방송, 잡지 같은 것도 많기 때문에 나라의 대통령이나 중요한 인물들을 모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부터 약 3,500년 전에는 ‘풍문’이나 소문이 아니면, 직접 만나서 보기까지는 소식을 잘 알 수 없지요. 그런데, 사환은 대충이라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사무엘인 것입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7)

 사울이 염치가 있습니다. 그냥 가서 그 비싼 나귀를 찾는데 도움을 달라고 하는데, 맨입으로 갈 수 있느냐고 하지요. 그래서 뭐 좀 드릴 것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8)

 빵이나 음식은 없고 돈이 조금 있습니다. 은 1/4세겔. 은 1세겔은 노동자 한 사람의 4일치 품삯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1/4세겔은 하루 품삯 정도 됩니다. 오늘날로 치면, 한 15만원 정도 될 듯합니다. 분명 집을 나섰을 때는 여비를 조금 챙겨가지고 나왔을 텐데, 거의 다 쓰고 15만원 정도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9)

 여기 9절에 보면, 괄호로 묶어져 있는데, 이것은 후대에 서기관이나 성경학자가 덧붙인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 관습이나 풍습 또는 고어를 풀이해서 오늘날 말로 바꾼 것을 설명합니다. 지금부터 약 3,000 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정의 큰 일을 결정할 때, 예언자를 찾아가서 신탁을 받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무엘서가 쓰여졌을 때는 그런 일이 좀 드물었기 때문에 이런 해설을 달아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사무엘서도 상당히 후대에, 이를 테면,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고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 기록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열왕기서나 왕정시대의 일어난 일들을 보면, 그래도 선지자가 종종 등장합니다.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0)

 이 사울이 사환의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울이 아랫사람의 말도 잘 들을 줄 알고 사람이 괜찮습니다. 그냥 무시하고 돌아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공짜를 바라지 않고 선지자에게 예물을 드릴 줄도 알고, 염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11-12)

 사울이 소녀들에게 묻는 것을 보면, 격이 없이 행동합니다. 사환에게 물어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사환이 나서서 물어보지 않은 것이 사환도 남자이기 때문에  소녀들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특히 젊은 소녀들에게 말을 잘 안 섞거든요. 

 그래서, 좋은 정보를 얻어냅니다. 소녀들이 빨리 가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무엘이 라마의 산당에서 제사를 주관합니다. 이것을 보면, 사무엘이 ‘사사’로서 직임을 내려 놓았어도 제사장의 직분은 감당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서 은퇴를 하거나 명퇴를 해도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의 직분은 그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목회자도 교회에서 사임을 하거나 은퇴를 해도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을 내려 놓는다고 할지라도 성도로서 의무는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3)

 참 친절하게 소녀들이 사울에게 알려 줍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울이 꽤 훈남이고, 잘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제사를 지내고, 제사 음식을 나눌 때, 가장 어른인 사무엘이 기도를 드리고 함께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고 하지요. 우리 속담에는 ‘찬물에도 위 아래가 있다.’ 라고 하지요. 어른 먼저 수저를 들어야 자녀들과 어린 아이들이 순서대로 숟가락을 들었던 우리의 지난 과거 문화가 참 비슷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스라엘 문화가 우리 나라와 비슷합니다. 동양적인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애들이 어른들보다 더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었고, 아버지들은 찬밥 신세가 되었는데, 불과 40~50년 만에 완전히 유교적인 문화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4-16)

 참고로, 왜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을까요? 아마 실로 성전이 파괴되어서 좀 높은 곳에 간이식 제단을 쌓고,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산당을 이스라엘 곳곳에 지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산당에서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서 우상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꼭 나쁜 의도는 아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산 속 외진 곳에 우상 숭배가 행해지는 빌미가 됩니다. 

 사울은 소녀들의 말대로 산당으로 올라가다가 사무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어느 가수의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하는 가사 말처럼, 사울은 아버지의 암컷 나귀들을 찾으려고 길을 나섰는데, 이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셔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올려 보내려고 하신 일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일들을 예삿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무엘은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알게 되었고, 사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을 하려고 하면,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에 힘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고 싶어도 맡길 수가 없는 것이지요. 

 보통 때 같으면, 사무엘이 그저 암나귀나 찾으러온 한 청년이 기도받고 가는 것으로 알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사무엘이나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울 사람을 그냥 보내는 것이고, 일반 백성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아무나 데려다가 왕을 세웠을지도 모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17)

 기도하며,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던 사무엘은 사울을 보자마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18-19)

 사무엘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까, 사울을 바로 알아보는데, 사울은 전혀 사무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또 사울이 그렇게 신령한 사람은 아닙니다. 사울이 싸움에는 능할지 모르고, 부모에게는 효도하는 자식일지라도 영적인 면에는 무지합니다. 사울이 여러 모로 참 괜찮은 사람이지만, 좀 영적인 면에서 그래도 신령한 측면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집을 떠나 있어서, 부모에게 효도는 잘 못했고, 또 전쟁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전혀 실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령하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는 것에 깨어 있으니까, 사사로서 제사장으로서 큰 일을 잘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성도들도 세상적으로 유능하지 못하고,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있어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은사나 능력을 충분히 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일에서 부족한 것은 여러 사람의 도움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사역을 잘 해 냅니다. 우리가 자녀를 양육할 때도 그렇습니다. 기스처럼 아들에게 활을 잘 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면, 설사 인간적인 것은 좀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 제 몫을 감당할 것입니다.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20)

 사울이 벌써, 3일 째 나귀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일을 훤히 꿰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네 가문이 아주 존귀하다고 말합니다. 아직 사울이 왕위에 오른 것도 아닌 데, 지금 있는 일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21)

 사울은 자기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직 그만큼 기스의 가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지금은 참 겸손한 데, 앞으로가 문제이죠.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22-24)

 사울을 제일 상석에 앉힙니다. 원래는 사무엘이 가장 상석에 앉고 30명의 라마의 장로들이 그를 둘러싸고 앉는데, 사울이 제일 중앙에 앉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고 특별하게 부탁한 맛있는 요리를 먼저 제공합니다. 그 넓적다리가 양의 넓적다리인지, 소의 그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나라도 사위가 처가에 오면, 장모가 토종닭 백숙을 해서 넓적다리를 떼어서 주는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없나요? 저도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록은 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이 성경을 읽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요. 

 사울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황송하고 부끄러워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몰랐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5)

 제사와 식사를 마치고, 또 어느 집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는데, 아마 사무엘의 집이 아닌 가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룻밤을 지냅니다. ‘지붕에서 담화한다’ 고 되어 있는데, 고대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출처: 바이블다큐, 고대 이스라엘의 4방 구조 가옥>

 지붕이 우리처럼 기와 지붕이나 박공지붕이 아니고 거주 공간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집은 보통 2층 가옥인데, 1층은 가축들을 기르는 공간과 음식준비를 위한 화덕이 있었습니다. 1층 한켠에 벽으로 가로막고 가축들을 키웠고, 물론 방도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가축냄새나 소음 때문에 2층에서 잠을 잡니다. 우기에는 비 때문에 1층 방에서 자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길지요. 보통 때 지붕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활했고, 지붕과 지붕 사이에서 이웃간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마 10:27). 또한 지붕에 작은 방을 만들어 기도실로 사용하거나(행 10:9), 귀빈을 모시기도 했습니다(왕상 17:19, 왕하 4:10).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26-27)

 하룻밤을 자면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할 말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저녁동안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도, 왕이 되기 이전에 필요한 교양에 대해서 교육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리고 사환을 먼저 앞서 보내고, 이제 정말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은 사울이 사무엘을 찾아오게 된 사건을 읽었습니다. 아버지의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그를 세우시려고 행하신 오묘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 아버지의 뜻을 분별하며 살게 하시고,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외모나 학벌이나 실력이 낫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하며, 동물이나 사람이나 사랑함에 있어서는 뛰어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세상의 영혼들을 하나라도 잃지 않고 다 찾아서 아버지께로 돌리는 그런 신실한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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