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
집회, 회중, 백성의 공동체에서 어떤 직무/직책을 맡은 사람을 전도자라고 합니다. 정확히 솔로몬 시대에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 때는 제사장도 있고, 레위인들이 성경을 가르치기도 했던 시기라, 코헬렛이 활동한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기에서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을 때, 회당 예배에서 모임을 주관하고 말씀을 해석하거나 오늘날 설교를 했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전도서의 말씀을 끝까지 읽고 듣고 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오해해서 인생을 비관하고 염세주의적인 삶을 살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2)
뜬금없이 ‘헛되다’고 합니다. 그것도 네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헛될까요?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3)
우리가 햇빛을 받으며, 낮에 일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일들이 모두 유익하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농사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곡식을 심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야만 한 해를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중요한 일이 많은데, 왜 헛될까요?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4)
그 이유는 죽음 때문입니다. 아무리 수고한 들, 그 수고는 매년 반복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점점 늙어가고,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서 그 일을 반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했던 일들은 우리의 부모와 선조들이 했던 일이고, 그 일은 내 아들과 딸들이 그리고 그 후손들이 영원히 반복하며 해야할 것입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5-7)
그렇지만, 우리가 볼 때, 사람 빼고는 모든 만물들은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해는 여전히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을 배우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데, 공전하면서 자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수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계속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것입니다. 멈추지 않고요. 지구 주위에 또 달이 있어서 역시 자전과 공전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으로 바다도 출렁이고, 바다의 움직임이 또한 기압에 영향을 주어서 바람의 움직임을 가져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알고 있습니다. 물의 순환을 볼 때,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육지에 비를 내리고 그 빗물은 모여서 땅에 일부 흡수되지만, 시내와 강으로 흘러서 결국에는 다시 바다로 모이게 됩니다.
물의 총량은 변함이 없고, 이 물의 순환으로 말미암아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마시고 생명을 이어갑니다. 나무는 꽃과 열매를 맺고, 땅의 풀들은 자라 초식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이 초식동물들을 육식동물이 잡아 먹고, 적당히 생태계를 이루며 조화를 이뤄갑니다. 육식동물은 다시 죽어 땅의 거름이 되고, 다시 풀과 나무가 자랍니다.
지구의 모든 생물들이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전도자는 한 마디로 ‘피곤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 (8)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이고, 아무리 근원을 파악해도 또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발견이 됩니다. 이제까지 이 지구상에서 발견된 식물과 동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생태를 다 알 수 없고, 여전히 경이로움으로 보고, 또 아는 사람으로부터 듣고 배워야 합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9-10)
우리가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끝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밥상을 차리고 식사를 하고 다시 설거지를 합니다. 점심에도 밥을 차리고 식사를 하고 또 설거지를 합니다. 저녁에도 똑같고, 그 다음날도 똑같지요. 끝이 있습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 일은 계속 됩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이지요. 안 할 수도 없고, 하자니 매번 반복하니까 지겹고, 지루하고. 세상 일이 다 그렇습니다. 오늘 장사하는 사람이 내일도 장사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팔던 고기, 내일도 팔아야 하고. 정육점 가게 주인은 오늘도 내일도 고기를 자르고 용기에 담고 계속 반복됩니다.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했고, 또 앞으로 우리 자녀들도 계속 할 것입니다. 이런 거 하기 싫어서 돈 벌어가지고 다른 사람을 시켜 먹겠다고 우리가 꿈꾸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돈 벌어서 사람 시켜 보세요. 또 시키는 것만 한다고 좀 ‘알아서 내 비위에 맞게 맞춰 주면 안 되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11)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아십니까? 어떤 중요한 일을 해서, 후세들을 위해서 많은 유익을 끼쳤는데, 전혀 감사하는 것도 없고, 고마운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도 역대 수많은 대통령이 있었는데, 잘한 것은 별로 칭찬하거나 존경하거나 감사하는 일이 없고, 잘못한 것만 이야기 하고 욕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부모님에게 고마워하거나 감사하는 일이 점점 드물게 되었습니다. 늙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봉양하지 않는 일이 왜 생기겠습니까? 이제까지 수고하신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자가 늙고 병들어서, 이제는 권위와 권세가 떨어져서, 옆에서 자녀들과 후배들을 지켜 보니까, 참 안타깝고 아쉽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재산을 물려주고, 지위도 넘겨 주었는데, 고작 하는 일이란 것이 선배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부모에게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아 보세요. 그 꼴을 보고서, ‘그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가?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오래살았는가?’ 하고 후회합니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고, 그렇게 무시를 당하고 원망을 들어도, 이제는 손쓸 방도가 없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1-12)
전도자는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왕보다 더 높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가졌는데, 거기에 지혜까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쌓고 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단지, 육체적 쾌락만을 일삼던 다른 왕들과는 달랐다고 자부합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런데도 자신의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이 주셨다고 표현할까요? 이 전도자는 성경에 대해서 지식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7~19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아담과 하와가 먹고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7-19)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죽음이 아담과 그의 자손들, 즉 우리 인간들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원래, 사람은 나무의 열매와 땅의 곡식들을 일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는데, 이후로는 밭을 일구면서 양식을 얻기 위해 수고로움이 끝이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도자는 이 말씀을 염두해 두고, 괴로움과 수고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4)
전도자는 왕이었기 때문에 직접 밭을 일구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으로서 여러 가지 소송의 문제나, 외교의 일이나 내정과 안보와 여러 가지 경제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했습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솔로몬이 이집트에서 말을 사와서 아람과 아라비아 여러 나라들에게 다시 되파는 무역을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금융이라고 할 수 있는 금도 얼마나 최상급으로 ‘오빌’이란 곳으로부터 가져와서 이스라엘 나라 안에는 ‘은’은 가치가 없을 정도로 부유하고 돈이 많게 만들었습니다. 오죽하면, 왕을 지키는 호위병들의 방패를 금으로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모든 부위 영화를 영원히 소유할 수 없고, 다 두고 떠나는 죽음을 본 것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도 그 죽음을 이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역시 죽음 앞에서는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5)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간청하고 애원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죽음을 면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들도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해 아래서 하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일들이 사실 무가치한 것이며, 헛된 것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실 것이요, 또 우리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이 소망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부족한 인생들이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채웠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이 비록 솔로몬처럼,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했고, 지금도 그런 처지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인생은 예수님 때문에 더 이상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아름답고 가치있는 인생을 만들것인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그런 낭비하고 허비하는 인생을 살 것이고, 정말 마음이 옥토 같아서 많은 열매를 맺는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이 전도자, 솔로몬은 아직 메시야를 만나지 못했고, 구원의 소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아무리 지혜를 가지고 찾고 연구를 해 보아도 도무지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이 1장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16-18)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하시지 않으면, 제 아무리 지혜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보다 오히려 수많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죽은 후에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묶이고 엮여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고,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을 소중히 여기고, 헛된 일에 분주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소명을 깨달아, 성실하게 일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총명하고, 가진 것이 많으며, 큰 지혜를 갖고 있을지라도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그저 헛될 뿐입니다. 머리로는 주님을 알고, 예배 가운데, 큰 지혜와 능력과 부귀를 누렸던 솔로몬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탄식했습니다. 저희들도 동일한 과오를 범하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기술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사명은 무엇인지 소명은 무엇인지 바른 방향을 찾게 하시고, 주님과 늘 동행하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소망과 기쁨을 주옵소서!
교회를 통해 헛된 길을 가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힙입고 살아가며, "의미 있고, 보람되며, 영광이 있고, 소망이 있는 아름답고 복된 삶"이 되게 인도하옵소서!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시는 거룩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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