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0장] 기름부음 받은 사울

기름부음 받은 사울

 


< 출처: 모닝선데이, 기름병 >

 하룻밤을 사울과 함께 보낸 사무엘이 사환을 먼저 보내고, 사울과 단 둘이 있을 때에 기름병을 취해서 기름을 머리에 붓습니다. 여기 처음으로 사람에게 기름을 붓고 왕을 세운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탐탁치 않게 여기셨지만, 인간들이 요구하는데로, 한 사람을 세워서 이스라엘의 왕을 삼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서 행해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울을 따로 불러 세워서 기름을 붓는 행위를 합니다. 여기서, 마샤 혹은 메시야가 나오는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 말로 바뀌어서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1)

 그림을 보세요. 기름병은 소뿔을 깎고, 안 쪽은 긁어내어서 액체를 담을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것을 잔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 안에 올리브 기름을 담아서 사울 머리에 붓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말하지요.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도다!” 

 사무엘이 기름을 부었는데, '하나님께서 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이고, 사무엘은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사울이 깨닫도록 예언을 합니다.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2)

 우선, 베냐민 땅 셀사에서 지인들을 만날 텐데, 그 사람들에게서 사울이 찾던 암나귀들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 나귀들은 못 찾고, 하룻 동안 사무엘 곁에 있었으니까 어쩌면, 사울이 시간낭비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 흘려 듣기 쉽지요. 마음에 계속 ‘나귀를 찾아야 할 텐데…’ 이런 생각과 염려로 가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암나귀 잃어버린 걸 염려하지 마라.” 하는 뜻이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붙들려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개인적인 일이나 가정적인 일이 마음에 계속 근심과 걱정거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을 염려하면, 하나님의 일을 잘 못하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내 가정적인 문제와 걱정 근심을 맡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심하게 우리의 형편을 살펴 주십니다. 신약에서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뵈오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의 손에서 받으리라.” (3-4)

 또, 예언이 있습니다. 지금 사환과 사울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데, 그들에게 있었던 은 ¼ 세겔의 돈은 예물로 사무엘에게 주었고, 사무엘을 만나러 올라가기 전에 이미 3일 동안 나귀찾다가 준비했던 양식은 모두 떨어졌습니다. 하루는 사무엘과 더불어 제사 드리고 밥을 먹었는데, 또 며칠 길을 가야 합니다. 아마도 사무엘이 여비나 도시락을 챙겨 준 것 같지 않은데, 돌아갈 길도 걱정이지요.

 그런데,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떡 두 덩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덩이는 사환의 몫이고 다른 한 덩이는 사울의 몫이지요. 사울이 한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십니다. 먹을 양식도 얻고, 자기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다 해결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의 복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사울이 그저 한 것이라고는 사무엘을 만난 것 밖에 없지만,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역사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통해서 집 안의 문제도 해결하게 하시고, 전혀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사람을 통해서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놀라운 은혜요, 기적입니다.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 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5-6)

 여기 나오는 산이 ‘기브아(언덕이란 뜻) 산’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고 다볼산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그 산에 도달하면, 선지자의 무리를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성령을 받아서 예언도 하고, 사람이 아주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 사무엘 시대에도 신학생 같은 그런 선지자의 생도가 있어서 훈련도 받고 공부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잘하는 재주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찬양하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젊은 사람들이 찬양을 잘하고 악기 연주를 잘 하지 않습니까? 이들은 심지어 예언까지 합니다. 이들 무리와 섞여서 함께 예언도 하고 찬양도 하면서, 사람이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함께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눌 때, 성령께서 역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아셔야 되는 것은 이렇게 한 번 변화되었다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 번 성령을 받았다고 영원히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기도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세상에 나가 맡겨진 일을 할 때, 세상의 욕심과 허영과 죄악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럴 때마다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살피고, 함께 찬양과 예배 가운데,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7)

 “기회를 따라 행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이지요? 이 선지자의 생도 무리가 항상 사울과 함께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들도, 한 주간 동안 매일 모이고 매일 기도하고 예배합니까? 그럴 수 없지요. 각자 자기 일들이 다르고, 사람도 다릅니다. 그러나 주일이 기회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주일에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함도 흐지부지 됩니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8)

 사무엘을 아무 때나 만나는 것이 아니라, 꼭 7일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사무엘을 만나서 사울은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습니까?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최소한 7일에 한 번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은 없는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9)

 여기 ‘새 마음’이라고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원어에는 ‘다른 마음’을 주셨다고 나옵니다. ‘아헤르 레브’ 라는 말을 의역한 것입니다. 다른 마음인데, 새로운 마음이었다는 것이지요. 사무엘이 전한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 날 그 징조도 그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날 것이며, 먹을 것도 받고, 나귀도 찾는 일도 다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10-12)

 사울이 예언을 하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고, 사울도 선지자였냐고 반문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언제 신학교를 가서 ‘안수’를 받았느냐 하는 뜻입니다. 조금은 의아스럽지요. 무인으로서 장수의 길을 걸을 줄 알았는데, ‘납득할 수 없다’, ‘놀랍다’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 때만 해도 거의 아버지가 하는 일을 그대로 자녀들이 물려 받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사울의 아버지가 누군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지요.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14-15)

 사울이 이제 집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사울 가문에는 집안의 어른이 큰 아버지였는데, 몇 일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니까 어디가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귀를 찾다가 못 찾아서, 사무엘에게 가서 물었다고 대답을 합니다.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16)

 사무엘이 나귀 이야기만 합니다. 사울이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 하고 말한 부분은 이야기도 꺼내지도 않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다 이뤄졌는데, 정작 자신이 왕이 될 것이란 예언 만은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자기가 신학생들 하고 어울려서 예언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이뤄지는 예언은 잘도 믿으면서, 정작 자신에게 이뤄질 예언은 잘 믿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믿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실은 잘 안 받아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은 믿는데, ‘나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 하는 사실은 못 믿을 때가 많습니다. 사울도 사무엘이 말하는데, 믿지 않은 것입니다. 말 해 봐야 숙부도 믿지 않을 것 같으니까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이뤄집니다.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17-19)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세우신 왕을 선출하는데, 그 방식이 제비를 뽑는 것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뜻을 묻는 형식이 이렇게 제비를 뽑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렇게 제비를 뽑아서 대통령을 뽑자고 하면, 어떻게 사람들이 생각할까요? 전부 무시하고 말겠지요. 복권 당첨하듯이 우연히 뽑힌 사람을 인정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대로 따릅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는 우연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만큼의 수준이 안 되니까, 제비뽑는 형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20-21)

 정확하게 사울이 뽑힙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입니다. 분명히 왔으니까 제비뽑기를 했겠지요. 그래서 찾습니다. 좀 전까지 있었는데, 사라졌습니다. 찾아도 안 보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22-23)

 하나님께서 사울이 짐 사이에 숨어있다고 알려 주시니, 금새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제비까지 뽑혀도 사울은 여전히 ‘나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비뽑가 뽑혔는데도, 짐 사이에 숨어서 안 나오는 것이지요. 아무리 숨어 있어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찾아내시는데, 어디 숨을 데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사울을 데려왔더니, 사람들이 생각하던 늠름한 장수의 모습입니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겼고, 마음에 듭니다.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매,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갔느니라. ” (24-26)

 분명히 사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왕으로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서를 계속 읽어보면, 하나님이 택하여 왕으로 세운 사람이라도 변질될 수 있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목사가 된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 뿐만 아니라 장로나 권사도 일 잘하고 믿음이 좋고 신실하다가도 어떤 사건에 미혹을 받거나 유혹 때문에 넘어져서,  타락하거나 변질되거나, 더 나아가서 사울 같이 나중에 악신에게 조종을 당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성령을 받았던 사람인데, 성령이 떠나가니까, 악령이 들어와서 사람이 아주 이상하게 변하는 그런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왠만하면 잘 안 변합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변할 수는 있는데, 조금씩 바뀌는 것은 있지만, 갑자기 이렇게 변할 때는 그것이 그냥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기보다 영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러나, 귀신의 영을 받으면 갑자기 악독해 지고, 사람이 이상하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고 그냥 안주할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옛날 사극에 보면, 우리 나라도 왕을 세우고 만세를 외치지 않았습니까! 우리 나라와 일본이나 중국도 그런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은 참 비슷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니까 그를 돕는 일군들이 그와 함께 따라 나섰는데, 사울이 이들을 모아서 왕궁부터 짓자고 하거나, 어떤 국가적인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나라의 일이 있을 때에 모여서, 왕을 따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이 있었습니다. 어디나 그렇지요! 아마도 자기가 왕이 될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같은데, 이런 사람들은 어느 사회나 조직에나 있습니다.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27)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권위와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지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세운 사람과 함께 공감하고 동역하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이고, 어떤 불량배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베네 벨리알’, 마귀자식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대적합니다. 사람들 중에도 마귀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 마귀자식은 하나님이 세운 사울 왕을 따르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고 예물도 드리고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울이 겸손하게 참고 왕으로 인정하고 존경할 때까지 기다리고 잠잠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울이 다른 말은 다 믿고 순종해도, 자신이 정작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그를 돕지만, 여전히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저희들도, 아버지의 귀한 사랑과 선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거룩한 성도가 되었는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늘 겸손하게 바르게 하나님의 손발이 되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들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시고, 지혜롭게 행동하고 처신할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세상에는 우리를 비방하고 방해하는 악한 영들과 그의 종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너무 분노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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