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4장 믹마스 전투 (2)

 


< 출처: https://tvstory82.tistory.com/111 >

13장에서 사울은 사무엘이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으나, 책망을 들었습니다. ‘부득이 하여 제사’를 드렸다고 변명을 했지만, 사울이 제사를 드렸다고 해서 흩어졌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다시 되돌아 왔다던지, 군사들의 사기가 올라간 일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의 제사는 그냥 드린 제사였을 뿐,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았고, 사무엘을 통해서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군사들 일부와 블레셋 군사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2)

 초기에 사울 왕 곁에 있었던 군사들은 이 천 명이었고, 아들 요나단에게는 1천 명의 군사가 있었는데, 믹마스에서 군사들이 제대로 한 번 붙어보지 못하고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600명의 군사만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요나단은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과 함께 블레셋의 진영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1)

 여전히 요나단은 천방지축의 모습입니다. 군대의 통수권자인 아버지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치더니, 이제는 단 두 사람이 블레셋의 진영으로 가 보겠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무모해 보이기도 합니다. 좋게 평가하면, 담력과 용기가 일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 출처: 라이프성경사전 >

 또, 얼마나 민첩하고 조용하게 움직였는지, 함께 있던 군사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3)

 요나단은 단 한 사람만 데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가는데,  지형 지물을 잘 활용합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4-5)

 험한 바위에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이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이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서 특별한 이름을 붙였습니다. ‘보세스’ 는 ‘빛나다’라는 의미인데, 빛에 반사되어서 반짝이는 암석들이 많은 곳 같습니다.  ‘세네’는 ‘가시’라는 의미입니다. 험하고 경사가 큰 곳이겠지요. 좀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험준한 가시 울타리를 넘으면, 영광이 찬란한 곳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6)

 요나단이 겁도 없이 단지 자기의 부관 한 사람만 거느리고 적진으로 간 것은 신앙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보통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하면서, 자기 부하에게 함께 가자고 합니다. 그 상관 밑에 그 부하입니다.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7)

 그의 부하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적군이 숫자를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단 둘이 가면 죽으러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왕자님이 가면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다 아주 대범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 같으면, “왕자님! 제발 참으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지파에서 다른 증원군을 보낼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앞서 가시는데, 우리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모든 적들보다 뛰어나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의 무기를 들고 따라갈 뿐입니다. 우리가 무슨 칼이나 다른 무기를 쓸 수 있겠습니까? 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검으로 모든 대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를 뿐입니다. 그러면, 승리는 예비되어 있습니다.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그들이 만일 우리에
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8-10)

 요나단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긴 했는가 봅니다. 블레셋 군사에게 자기를 좀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보일 텐데, 자기들에게 오라 하면, 하나님께서 저 군대를 우리 손에 붙인 것으로 알고 나가서 싸우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블레셋 군대 자기들이 요나단 쪽으로 가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떨어진 곳에서 그냥 대치만 하지 싸우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봐도 20대 초반인 요나단이 굉장히 하나님을 많이 의식합니다. 그의 믿음이 정말, 하나님이 싸우셔야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1-12) 

 요나단이 자기 말대로 해서 블레셋 군인들에게 모습을 보입니다. 블레셋 군인들이 요나단과 무기든 자를 보고 ‘이리로 올라 오라!’ 합니다. 무슨 싸인입니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싸인이지요. 그래서 요나단이 무기든 자기 부하와 올라갑니다.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3-14) 

 블레셋 군사들도 높은 지형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나단이 자기 부하와 기어 올라갈 정도면, 아마도 고지대이고, 이스라엘 군사들을 관찰하기 위한 곳 같습니다. 놀랍게도 요나단이 다 올라가서 상대를 죽이는 것도 아닌 데, 갑자기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죽습니다. 요나단이 장풍을 쓰거나 엄청난 무술을 발휘한 것도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그냥 나갑니다. 가면 블레셋 군사들이 엎어 집니다. 그리고 요나단의 부하가 쓰러진 적을 확인 사살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반나절, 아침부터 저녁까지가 한 나절이니까, 한 6시간 정도 지나니까 블레셋 군사가 약 20명 정도 죽습니다.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15)

 갑자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옵니다. 마치 오늘날 ‘공황장애’ 같은 것이 와서, 3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나와서 싸울 엄두를 못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도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니까 블레셋이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진영에서 다 보고 있습니다.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6-17)

 멀리서 보니, 블레셋의 군사들이 대오가 막 무너지고 있는 것이, 꼭 다른 군사들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우리 군사 중에 블레셋 군대와 싸우는 부대가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딱 2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요나단과 그의 부관이지요.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18-19)

 사울 왕이 제사장을 불러서 언약궤를 통해서 하나님께 이 전투에 합세를 해야 하는지 물으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언약궤를 사용했는지 잘 모르지만, 물으려고 하는 그 때 더 블레셋 진영의 내분이 커지고 소요가 심한 것을 봅니다. 이쯤되면, 그냥 나가서 노략(擄略)만 하면 될 것 같으니까, 묻지 않습니다.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0)

 요나단이 가면 엎드려 지던 블레셋 군사가 이제는 자기들끼리 죽이고 죽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환영(幻影)을 보이게 하셨는지 몰라도, 내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1-22)

 가만 전쟁의 판세를 보던, 히브리 사람들(아마도, 출애굽 때 함께 나왔던 잡족들의 후예들로, 이스라엘 곁에 살다가 블레셋이 강하니까 그쪽 편에 붙어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했던 자들)이 갑자기 이스라엘 군대와 합세하여서 블레셋을 칩니다. 또 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합류하지 않았던 다른 지파들도 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으니까 돌아갔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또 합세합니다. 

 이렇게 몇 일을 싸웠는지 자세히 기록은 되지 않았지만, 아마 2~3일은 지났던 것 같습니다. 물들어 올 때 노 젖는다고 사울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모든 블레셋 군사들을 다 죽이거나 사로잡을 때까지 음식을 먹지 못하게 군령을 내립니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23-25)

 하나님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는데, 사울은 이스라엘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계속해서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고, 율법을 어기며,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묻지 않는 교만함으로 어리석은 군령을 내립니다. 사울이 어떻게 이렇게 변질이 되었을까요? 그런 군령만 내리지 않았어도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었고, 군사들이 율법을 어기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들도 다 같이 범죄하게 됩니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리더가 범죄하고 타락하면,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죄를 짓게 만들고 고난과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요나단은 아주 믿음이 크고 담력이 있고, 준수한데, 아버지 때문에 망합니다. 사울이 말을 함부로 하고, 조급하고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앞으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큼 준수한 인재를 망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반대로 아들 때문에 망한 엘리 제사장의 이야기도 보지 않았습니까?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그 때에 백성 중 한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당신의 부친이 백성에게 맹세하여 엄히 말씀하시기를 오늘 음식물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백성이 피곤하였나이다 하니” (26-28)

 요나단은 남은 잔당들을 치기 위해 수풀에도 들어갔는데, 체력이 떨어져서 음식을 구하다가 수풀에 있는 꿀을 발견하고 지팡이로 조금 찍어 먹습니다. 왕자가 먹으니까 백성들이 다 따라서 먹게 되지요. 

 “요나단이 이르되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 조금을 맛보고도 내 눈이 이렇게 밝아졌거든 하물며 백성이 오늘 그 대적에게서 탈취하여 얻은 것을 임의로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살륙함이 더욱 많지 아니하였겠느냐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29-31)

 사울이 경솔한 맹세를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면 잘 먹어야 나가서 싸울텐데, 전쟁을 하면서, 금식을 하자고 하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지도자가 엉뚱한 소리하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니까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그치게 됩니다. 나중에 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하고 죽게 됩니다. 헛된 맹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군령, 명령은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 (32-35)

 계속 굶고 전쟁을 할 수 있습니까? 피곤하고 배고프니까 산 짐승을 막 잡아서 피 채 먹습니다. 자기가 죽을 판이면, 왕의 명령이든지, 율법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요. 이성을 잃고 짐승을 피 채 먹는 것을 보고 사울이 음식 먹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제 먹지 않으면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게 되니까, 먹고 기력을 회복하고 계속 전쟁을 하려고 하지요.  

 소, 양 잡아 먹다가 도망가는 군대를 다 놓쳤습니다. 사울은 음식을 다 먹고 다시 재정비하고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으려고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지 않습니다. 사울은 또 그 잘잘못을 따져서 군령을 어긴 자를 처벌하고 다시 기강을 세우려고 합니다. 사실, 모든 잘못은 사울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쟁의 전술과 전략을 세웠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또 모를 일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39-40)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시는 이유를 꼭 찾아내서, 죄를 묻겠다고 합니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사울과 요나단) 중에 누가 잘못인가 제비를 뽑습니다. 그런데 사울과 요나단이 뽑히지요. 여기서 벌써 지도자들의 책임이 드러납니다. 사울이 또 실수를 해서 자기와 요나단을 제비뽑게 합니다. 그래서 요나단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자기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율법을 어긴 것과 잘못된 명령과 군령을 내렸다는 것을 전혀 반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을 세운 요나단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 땅에서 그 어떤 권력자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합니까? 다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서라도 자기는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하지요. 

 아무튼, 요나단까지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모습에서 권력에는 부자지간도 없는 아주 냉혹한 세계임을 보여 줍니다. 백성들이 말려서, 더 이상 블레셋과 전쟁을 계속하는 일도 멈추고, 믹마스 전투에서 승리를 가져온 요나단의 죽음도 막게 됩니다. 

 지도자가 부족하면, 백성들이라도 깨어서 계속 잘못된 결정과 잘못을 실행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 전쟁은 요나단과 그의 부하의 믿음과 용기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믹마스 전투에서는 승리를 얻었으나, 사울의 교만과 잘못된 판단과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독립과 승리는 쟁취할 수 없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6)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요나단과 그의 수하의 용맹함과 믿음을 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숫자나 어떤 군대의 힘에 있지 않음을 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요나단의 수하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옵소서! 

 사울의 교만함과 오만함으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따를 수 없는 잘못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의 곁에 사무엘이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좀더 지혜로운 일처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독단과 오만으로 자기 뿐만 아니라 아들의 앞길과 나라의 운명까지 어려움에 처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께서 승리를 주셨지만, 오히려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사울과 같은 실수를 합니다. 늘 말씀을 읽으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게 하옵소서!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하옵소서! 부활의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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