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는 헛된 인생일지라도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이것 저것 많은 것들을 경험합니다. 그 첫 번째로, ‘즐거움’, ‘쾌락’을 찾아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1)
사람들이 웃을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웃기는 짓은 다 해 봅니다. 농담을 할 때도, 유머를 즐기기도 해 봅니다. 내가 웃기도 하고, 남을 웃기기도 해 봅니다. 그런데, 웃을 때는 기쁘고 행복한 것 같지만, 계속 웃다 보면, 배가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2)
웃음(לשחוק, 리스호크) 치료라는 말이 있고, 웃으면 복이 온다고 일부러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속 웃기만 해 보세요. 계속 웃는 것만 보고 있으면, 미친 사람처럼 보입니다. 희락(ולשמחה,울레심하), 또는 기쁨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쓸모가 있는지 보니까 그다지 사용할 데는 없습니다.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 ” (3)
번역이 어렵게 되어 있는데, 공동번역 성경이 좀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술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붙잡고 늘어져보았다. 하늘 아래 이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내려고 하였다.” (공동번역 전도서 2:3)
전도자가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것 저것 시도하는데, 술에 찌들어 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에 파묻혀서 살아도 보았습니다. 그 내용들은 4절부터 나옵니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4-6)
전도사는 집을 많이 지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는 것지이요. 도시 계획을 세워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도록 하는데, 살기 좋도록 녹지도 만들고, 공원도 만들고, 연못도 만들고, 분수대도 만들고, 도시 가까이에는 쉽게 채소나 과일을 얻을 수 있게 정말 완벽하게 살기 좋은 도시를 건설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하는 신도시 만들고, 새로운 뉴타운을 만드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수 천년 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수많은 일꾼들도 필요하겠지요?
“남녀 노비(奴婢)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7-8)
전도자가 이런 힘든 일들은 노예를 사서 했고, 자기가 데리고 있던 종들도 있어서 많은 종들을 낳도록 해서 이런 일들을 다 하게 했습니다. 이 당시에 유목하는 시절이었으니까 모든 재산은 가축들입니다. 가축도 상당해서 더 많아 지도록 소 떼나 양 떼를 잘 목축했습니다. 이 소와 양들을 팔고, 해서 은과 금을 상당히 모았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재벌이 된 것입니다. 이 부귀를 가지고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유흥까지 한 것입니다.
이 전도자는 자기 밑에 둔 신하면서 왕도 두었습니다. 옛날 봉건제처럼, 영주들까지 거느린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도 많이 해서, 한 두명도 아니고, 본처, 후처, 첩들해서 수많은 여인들에게 둘러 쌓인 왕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9)
이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왕이었던 솔로몬을 떠올리게 하는데, 모든 왕들보다 더 부귀영화가 가득했고, 지혜까지 있었으니까 모든 것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0)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 깊이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경 속의 화자가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이 꼭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전도자가 하는 말이 전부 다 옳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깊이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돌을 나르고, 나무를 나르고 자르고 깎아서 집을 지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름 없는 무수한 종들이 이 예루살렘 왕을 위해서 엄청난 수고와 고통을 감내하면서 일했을 텐데, 여기 전도자가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만약에 전도자가 매를 맞으면서, 아주 혹독하게 짐을 나르면서,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었다면, 아마 ‘내 인생이 허무하다’ 하고 생각할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입에 단 내가 나도록 고생하면, 우리 머릿 속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뭘 경험을 하고 말을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 놓고서 자기가 이 모든 수고를 했다니… 교만도 이런 교만과 오만함이 없습니다.
자기가 시켜서 말 만 하고선 모든 것을 다 누렸으니까 기쁘지… 안 그렇습니까? 저는 목회하기 전에 한 3년간 회사 생활을 했는데, 어떤 회사 프로그램 계발을 위해서 약 한 달을 야근하고, 주일도 없이 매일 회사를 나온 것이 있습니다. 거의 회사에서 살다가 집에 가서 잠깐 자고 씻고 옷만 갈아 입고 다닐 정도였을 때, 정말 피곤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가!’
그렇게 고생해서 수많은 돈을 번다고 한들, 몸이 죽을 것 같으면, 그런 기쁨조차 없다는 것을 저는 그때 경험을 했습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11)
이런 고백은 건강을 잃고, 죽음을 앞두고 나옵니다.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2)
여기 이 구절을 보면, 이 전도자가 ‘솔로몬’이라고 단정할 수 없게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솔로몬 왕 뒤에 누가 옵니까? 르호보암이 왕이 되는데, 북쪽의 10지파는 여로보암을 택하여서 왕을 세우니까, 나라가 나뉩니다. 솔로몬이 했던 그 모든 일들이 다 남의 것이 됩니다. 이 부분을 보면, 마치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아는 것처럼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도서의 말씀이 꼭 솔로몬이 썼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이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 된 것입니다. 아마도 다시 예루살렘에서 왕이 될 사람은 솔로몬이 하듯이 다시 도시를 건설해야 했고, 솔로몬 때처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온갖 사업을 다시 해야 했을 것입니다.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3)
다시 전도자는 지혜를 논합니다. 지혜가 우매함보다 훨씬 좋다고 합니다. 빛과 어두움을 놓고 비교한 것처럼 그렇다는 것이지요. 갑자기 지혜에 관한 예찬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4)
옛날 사람들은 사물을 볼 수 있는 이유가 눈에서 빛이 나서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과학적으로 틀리지요. 햇빛이 사물에 비쳐서, 그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전도자는 그래도 무엇을 좀 압니다. 전도자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머리 속에서 이해가 되는 것을 알고 머리 속에 지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조차도 일시적인 것은 인간이란 모두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지혜자와 우매자가 동일하다고 봅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5)
전도자가 스스로 지혜가 있었지만, 자신도 곧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가진 것도 잠시 누릴 것이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16-17)
우리들은 이 전도서를 읽으면서, 영원한 생명이 없는 자들의 탄식과 헛된 인생을 봅니다. 사실, 우리들도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괴로움과 수고만 있는 삶. 그 가운데 어떤 인생들은 부모를 잘 만난 덕에, 어떤 이들은 재수가 좋은 덕에 덜 수고롭고 덜 피곤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 혹 있지만, 그러나 그런 사람들조차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 땅이 끝이 아님을 알고 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전도자의 탄식이 별로 와닿지는 않지요.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참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전도서를 읽고 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을 모르고 죽음과 사망에 이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저들의 현 상황과 상태를 잘 파악하고 혹시나 하나님의 은혜로 저들을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시지만, 우리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 땅의 사람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17-19)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죽음이 아담과 그의 자손들, 즉 우리 인간들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원래, 사람은 나무의 열매와 땅의 곡식들을 일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는데, 이후로는 밭을 일구면서 양식을 얻기 위해 수고로움이 끝이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18)
여전히 전도자는 ‘내가’ 주인공이지요. 우리는 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 우리가 수고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마을 우물에서 매일 물을 길러 와서 밥을 하고, 씻고 했습니다. 그런 일 하나만 줄여도 옛날 사람들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은 우리가 하지 않았는데, 가정마다 집집마다 다 수도가 있어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얼마나 편한지요. 또 우리가 빨래를 하지 않아도 세탁기가 다 해 주고, 로봇 청소기가 방 청소, 거실 청소 다 해 주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뒤에 오는 세대는 점점 더 수고하는 일들이 줄어들지 모릅니다. 아니면, 우리 세대가 타락을 해서 핵전쟁 같은 것으로 완전히 지구를 쓰레기와 오염 물질로 가득채울지 모를 일입니다.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에서 내 지혜를 다하여 수고한 모든 결과를 그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19)
전도자가 무수한 사업을 했고, 그것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 주어도 그 사람이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다 필요없다고 싹 버릴 지 누가 압니까? 성경에 보면 그런 일들이 아주 많이 일어납니다. 모든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자고 했는데, 이집트 땅에 들어가서 거기 모든 신들을 섬기는 일이 생겼고, 이집트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또 모든 우상을 버리자고 했는데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엉뚱한 짓 하는 것을 보세요.
부모가 뼈 빠지게 고생해서 많은 재산을 물려 주었는데, 자식 세대에서 다 쓰고, 땅이나 재산을 다 팔아 먹고, 그 다음 세대에서는 거의 노예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사는 그런 가문도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 (20)
여전히, 전도자는 강조하는 것이 ‘나’입니다. 내가 수고 했고, 내가 한 것이 영원토록 기념이 되지 않고, 그 뒤 사람에 의해서 허무하게 부서지고 파괴되는 것 때문에 실망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 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1-23)
전도자가 괘변(卦變)을 늘어 놓지요. 자기가 악을 행했으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자기의 몫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고 하소연 합니다. 사실, 전도자가 수고한 것이 아니지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우리는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고, 받았습니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4)
사람이 태어나서 갖고 있는 재능도 능력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수고하는 영역이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면, 늘 감사와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수고에 보태더 좀더 나아진다면 그것도 역시 보람되고 기쁜 일입니다.
먼저는 배움의 기쁨이 있습니다. 모르던 것을 알았을 때, 기쁨이 있기 때문에 연구하고 고민하고 일합니다. 나보다 먼저 안 사람 때문에 나는 그만큼 더 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허무한 인생을 살았을 텐데,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도를 깨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신이 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보장도 없는 길이요, 속아서 가는 길입니다. 성철 스님도 ‘수많은 중생들을 속여서 지옥에 보낸 죄를 어떻게 할꼬?’ 하면서, ‘나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배웠지 않았습니까? 이 땅의 삶도 예수님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이것이 영원히 반복되는 일도 아니고, 또 이 일을 통해서 감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 우리 부모님께 감사, 우리 선조들과 선배들에게 감사, 선생님께 감사! 은혜로 이 모든 것들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감사. 또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일을 허락하시니 감사. 우리가 한 것 보다 많은 것을 누리니 감사!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26)
결론은,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모든 것을 주심을 감사합시다. 우리에게 일을 주신 것도 감사, 건강과 능력을 주셔서, 일할 수 있게 하심도 감사입니다. 주신 삶에 그리고 일에 즐거움을 누리고, 보람을 누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전도자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소명과 사명을 외면한 채, 나의 만족과 즐거움과 유익을 위해서 헛된 일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셨는데, 이 땅의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살지 않게 하시고, 영원히 남을 것을 위해서 수고하게 하옵소서! 내가 하는 일보다 언제나 많은 것을 누리게 하시고, 작은 일에도 기쁨과 칭찬과 상급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교만하지 않고, 언제나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는 사랑을 실천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 안에서 참 기쁨과 평안과 만족과 보람을 느끼고, 행복한 삶이 되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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