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장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출처: pixabay.com/ko/ >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1)


 여기 기한과 때가 원어로 ‘젬마’와 ‘에뜨’입니다. 모두 ‘때, 시간’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זְמָן"은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시간의 개념을 말하고, "עֵת"은 특정한 시간이나 기간을 가리킵니다. 모든 일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특정한 시간, 때에 우리가 일이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2) 


 자, 그렇게 보면,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10달을 거의 채우고, 산고 후에 드디어 생명이 나타나는 순간이 있지요. 그 태어난 날을 우리는 생일로 기념하고 축하합니다. 마찬가지로 ‘죽는다’는 것도 우리는 자라서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점점 우리는 늙어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보면, 우리가 많이 늙어 있게 되지 않습니까? 팔 다리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고, 먹는 것도 예전에는 마음껏 먹었지만 지금은 소화가 잘 안 되기 시작하다가 점점 여기 저기 고장이 나고,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또, 농사일도 그렇습니다. 그냥 쉽게 씨를 땅에 뿌리기만 하면 됩니까? 씨를 뿌리기 전에 얼마나 농부들이 준비하는지 모릅니다. 겨울이 지나고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농부들은 밭을 기경하고, 고르며, 거름을 줍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제서야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리고 금방 곡식을 거둡니까? 여러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벼는 모내기를 하고 4개월 정도 지나서 추수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비를 맞고, 햇빛을 받으며 자라서 벼가 익으면, 농부들이 날을 잡아서 추수를 하지요.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3)


  3절에, 주어가 생략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왜 죽일까요? 또 왜 치료하고. 다음 구문도 무엇을 헐어 버린다는 말인지, 무엇을 세운다는 말인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실, 2절에도 정확하게 무엇이 태어난다는 것이지 무엇을 심는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절을 읽으면, 대략적으로 ‘사람’에 대한 것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4)


 울고 웃는 것은 동물이 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람이 웃고 울 수 있습니다. 슬퍼하기도 하며 기뻐서 춤을 추는 것은 사람입니다. 전도자가 사람을 두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울 때라는 것은 어느 순간을 꼭 집어서 말하기보다 그동안 울 수밖에 없었던 상당한 시간이 흘러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가 비참한 것입니다. 반대로 웃을 수 있는 것은 상당한 기간 동안 웃을 수 있도록 준비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전도자는 무심하게 말을 던지는 것 같지만, 상당히 심오하고 깊은 진리를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끝에 웃음으로 끝날 것이냐, 아니면 울면서 비참하게 슬퍼할 것이냐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지요. 어떤 주인이 종들을 불러서 달란트를 나눠 주면서, 일을 맡깁니다. 그리고 먼 곳으로 여행을 가지요.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서 회계(會計)하지 않습니까? 그 때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자기들이 받은 돈의 배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주인이 베푼 잔치에 초대받는 영광을 얻지요.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땅 속에 묻어 두고는 세월을 그냥저냥 지냈습니다. 주인이 그 종을 호되게 꾸짖으면서, 쫓아냅니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슬기로운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믿고 게으름을 피우기보다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수고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일들을 행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며,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웃고 칭찬을 받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5)


 전도자가 갑자기 ‘돌’ 이야기를 꺼냅니다. ‘돌을 던진다’는 표현은 보통 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쓰지만, 여기서는 어떤 저항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저항을 하는지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지만, 권위나 권세에 대해서 저항할 때도 있지만 반대로 받아들이고 수긍(首肯)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람들이 조물주에 대해서 저항하고 반항하고 빗나가고 어긋나게 살아온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대다수가 그렇지요. 그러나, 그 모든 죄를 그리스도에게로 돌리고,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하나님은 우리들과 관계 회복을 위해서 지금까지 일하십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서 받아들이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때는 영원한 심판만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끌어 안으시려고 하시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어느 세월이 지나면, 영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 빨리 돌아서고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것입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6)


 우리 인간들이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으시고 찾으시지만, 찾았어도 잃을 때도 있고 버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기 때문에 한 번 예수님을 믿고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여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악한 사탄의 영에 유혹이 되어서 우상숭배에 빠지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면, 반드시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용서를 받았다면, 어떻게 다시 죄 가운데로 돌아갈 것입니까? 이런 짓은 예수님을 다시 못 박으려는 행동입니다. 


 선을 넘어 행동하는 자들은 그 상당한 기간 동안 회개의 기회와 돌이킬 수 있는 충분한 권면과 징계가 있었어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버림 받기 전에 하나님께서 다시 뉘우치도록 여러 가지를 행하십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7)


 회초리와 채찍으로 범죄한 자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죄를 고하고 뉘우치면, 하나님께서는 그 상처를 꿰매시고 다시 치료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자,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찢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북왕국과 남유다 왕국을 멸망시키시기까지 하십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그 흩어져서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 것 같던 유다백성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시게도 하셨습니다. 


 그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지 않고 여전히 불만과 원망 속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고 형식적인 제사만 남았을 때,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보내셨지요. 


 “내가 너희를 사랑했노라!”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신과 원망이 가득합니다. 그 반발과 원망에 하나님께서는 그만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400년 간이나 침묵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말씀하시냐면, ‘아들’ 독생자 예수를 보내서, 말씀하십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 ” (히1:1-2)


 이 말씀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지에 대해서 깊이 침묵하시다가 아들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하신다고 십자가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구약의 내용은 성취가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응답할지를.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때입니다. 이제 곧 있으면, 전쟁할 때가 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과 하나님 간에 끝장내는 마지막 전쟁, 일명 아마겟돈 전쟁으로 계시록에는 나와 있는데, 그 뒤에 모든 심판과 저주가 끝나고, 하나님 나라가 새롭게 도래할 것입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8)

 

 그 동안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은 이 땅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할 것인데, 그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근심, 걱정, 염려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수고는 다 끝이나고, 허무할 텐데, 하나님의 주신 일에 보람과 긍지를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서 상급과 칭찬이 있는 일도 있습니다.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9-10)


 우리 인생들은 항상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저히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비밀한 일들, 섭리들을 그저, 원망과 불평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지혜와 힘과 능력을 알아 가며,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1)


 먼저는,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봄에 아름다운 꽃이 피고, 새싹이 돋고, 하늘에는 새들이, 땅에는 모든 가축과 짐승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사람이 먹이고 입히는 것도 아닌데, 저들은 각자 자기들이 있을 곳을 알아서 제 곳에서 아름답게 삽니다. 우리 인생들도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르시고 입히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파괴하지 않으면, 이 창조세계는 아름답게 유지되고, 늘 항상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2)


 전도자가 단언합니다. 우리 인생은 ‘선’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또한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3)


 그 선을 행하면서, 수고하고 일하는 것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14-15)


 하나님의 행사가 영원히 있을 것인데, 중요한 일이 다음에 언급됩니다. 그것은 세상의 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 일도 세상의 권세자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시행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6)


 전도자도 재판정, 법원에서 이뤄지는 일들이 정의와 공의를 바르게 세우는 일인데, 사람이 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서 바로잡을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최후의 심판’이 있다고 알게 됩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잘못된 것들이 모두 바로잡아 진다면, 최후의 심판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정의가 바로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시 심판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땅에서 불의가 바로잡아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전도자가 깨달은 것이 하나님께서 다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7-18)


 이 전도자가 깨달은 것을 우리도 깨달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다시 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억울한 일, 분한 일을 다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피해를 억울하게 당했다고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심판도 하나님께 맞기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뇌물이나 속임수가 통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우리 인생도 실수하고, 당하고 억울하게 죽는 일 등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축을 기를 때에 잘 먹여 놓고, 살이 찌면 잡아 먹지 않습니까? 이 세상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가축처럼, 이용하고 잡아 먹으려고 하는 권세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저마다 다 자기 욕심을 차리느라, 전쟁도 불사합니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19-20)


 이 땅에서는 억울하고 분하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권세자들은 국민들을 ‘개, 돼지’로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할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 뿐만이 아니라 교육계도 마찬가지고 요즘 보니까, 의료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잃을까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합니다. 이 땅에서 일하고 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갚으신다고 믿고 참고 선을 행해야 할 텐데, 그런 의식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공의와 정의를 위해서 손해를 보면, 하나님께서 다 보상하실 것을 믿고,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당장 굶어 죽고 어려움에 처할 것도 아닌 데, 금전적으로 조금 손해본다고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죽여야 되겠습니까?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21-22)


 이 말은 전도자가 사후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논리적으로 따져 본 결과, 하나님께서 사람은 짐승하고는 다르게 만드셨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 다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도자는 어렴풋하게 하나님께서 우리 미련한 인생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분을 보내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분석이며, 혜안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진리를 보내주시지 않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십니다. 우리는 참 감사한 것이 전도자가 살았던 시대에 살지 않고 예수님이 오시고 말씀을 증거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태어난 세대가 아닙니까?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이것을 성경으로 만들어서 우리 손에 쥐어 준 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읽어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깨닫지도 못하고 어리석게 해석하고, 잘못 읽는 사람도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늘 감사하며, 감격하며 이 복음을 우리 자녀와 형제와 이웃들에게 나누고 삶으로 증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헛되이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주님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시간을 드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메시야를 보내주셔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복음을 듣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복음을 모르고, 세상 연락에 빠져, 지옥을 향해 가는 어리석은 우리의 이웃들과 사랑하는 가족을 건져 내게 도와주시고,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낙심하며 포기하며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이 땅에 정의와 공의가 행해 지도록 우리 먼저, 주님의 말씀을 늘 순종하며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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