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장 세상에서 벌어지는 헛된 일

 

<출처: pixabay.com/ko/ >


 많은 성도들이 ‘신정론’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하신 분이시며 공의로우신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고, 불의와 불법이 존재하며, 그런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기 전도서의 기자도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한 일들을 기술하며, 인생이 헛되고 허무할 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1) 


 이 땅에는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당하는 폭력과 압제가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에, 그리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 또 젊은 자식이 늙은 부모를 정서적으로, 언어적으로 학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는 학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정말 비참하고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아마도 저 이북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동포들이 기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위로할 자들이 곁에 없습니다. 탈북을 해서, 남한 땅에 들어오면 그래도 교회 안에서 섬겨 주려고 하는 분들이 좀 있는데, 이곳에서는 기도만 할 뿐, 목숨 걸고 그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구해줄 사람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 (2-3)


 이런 학대와 폭력을 곁에서 본다는 것 자체가 큰 괴로움이요 아픔입니다. 그렇게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아니, 그렇게 고통을 받으려고 태어나기보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세계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북한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남한에 태어나고 싶어서 또 태어난 사람도 없지요. 태어나고 성장해 보니까, 우리에게 주신 부모, 나라가 지금 바로 이곳입니다. 


 이 전도서가 만약 솔로몬이 쓴 것이라면, 상당한 권세와 능력과 재물이 있던 그가 으런 학대를 보고 그냥 지나치고, 그저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논평이나 할까요? 많은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그에게는 있지 않습니까? 


 이런 괴로운 현실을 보게 하시는 것도 어쩌면 하나님의 섭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그냥 바라보고 안타깝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도하는 자가 무언가 마음에 일어나는 연민과 사랑으로 행동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4)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이유가 서로 돕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면 참 좋겠는데 오히려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가까운 관계인데도, 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형제 간에도 얼마나 질투하고 시기하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남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 나갈 때, 너무 자랑하거나 남에게 보이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는 축하하며 환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속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너무 칭찬을 받으려고 자신을 포장하거나 너무 PR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5)


 이 세상에는 그냥 먹고 노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뼈빠지게 벌어서 대학까지 자녀를 공부시켜 놓았더니, 취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놀면서 백수로 그냥 저냥 사는 인생들이 참 많습니다. 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일본에는 ‘히키코모리’라고 방구석에서 나오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장실 갈 때하고 밥 먹을 때가 잠깐 나왔다가 볼 일 보고는 자기 방에 틀어 박혀 사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나중에는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일본에서 어느 70대 노인이 자기 아들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70대 노인은 아주 유명한 금융계의 인물이었는데, 어느 날 매스컴을 보다가 ‘히키코모리’ 가 가족을 죽이고, 사회에서 큰 무리를 일으키는 뉴스를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 아들을 보니까,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이 자기 아들이 사고를 치기 전에 자기 손으로 화근을 없앤다고 죽였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일본 사회에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점점 그렇게 취업도 하지 않고, 취업하려고 생각도 하지 않는, 그냥 저냥 쉬는 젊은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대학까지 나와서 무슨 힘든 육체 노동을 하느냐 하면서, 월급 100~200만원 받느니 차라리 용돈이나 타 쓰면서 놀겠다는 젊은 이들이 많습니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6)


 ‘히키코모리’ 자녀를 둔 부모는 죽을 때까지 그 자식 먹여 살리느라 허리가 휩니다.  어떤 사람은 돈 욕심이 많아서 닥치는 대로 일하려고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 데 자기 몸을 상하게 할 만큼 그렇게 과로를 합니다. 항상 돈 걱정 뿐이고. 그런 것보다 적당히 벌겠다고 욕심을 좀 덜 부리면 평온할 텐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7-8)


 어떤 사람은 물려줄 자식도 형제도 없는데, 재물을 쌓는데만 급급해 합니다. 남이 보기에는 충분히 부자고 잘 사는데, 더 가지려고 하고 베풀 줄도 모르는 그런 수전노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 스스로도 ‘내가 왜 이렇게 살지?’ 하면서 자책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물질만 탐내는 모습을 고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도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누리지도 못하고, 남에게 구제하여서 다른 이를 섬기는 기쁨도 누릴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서로 베풀기도 하고, 또 은혜를 입기도 하면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렇게 주고 받으면서 서로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눌 때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서, 받은 은혜를 자녀들에게 베풀면서 행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기만 하면, 주는 분에게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가 주면서 사랑해 보아야 하나님의 마음도 알고, 부모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열심히 돈 벌어서 다 갖다 주면서 사랑해 보고, 또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사랑해 보아야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9)


 여기 두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말합니다.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이 되어야 수고한 보람이 있습니다. 한 가정이 수고하고 땀 흘린 결과가 자녀들이고 열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혼인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혼자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는데, 그것이 인간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0)


 남편이 아내를 붙들어 주고, 아내가 남편을 붙들어 주면서, 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바로 서야 합니다. 오늘날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 경제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늙고 병을 얻는 문제까지 배우자가 없는 사람은 더 형편이 아주 어렵습니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1)


 밤에 누워 자도, 한 이불 덮고 자면 날씨가 추워도 견딜만 합니다. 요즘 독거노인들이 추운 겨울을 날 때, 쪽방촌에 사는 분들이 보일러도 없이 전기 장판 하나 깔고 사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이 더 몸에 질병이 많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체온과 질병은 아주 연관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건강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 몸의 온도가 35.5℃ 로 1도만 떨어져도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나 몸살이 오고 폐렴까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35℃ 이하를 저체온증이라고 하는데,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또, 38℃ 이상에서도 고열이라고 하고 지속되어도 건강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36.5~37.5℃ 를 유지하는 것이 면역력에 좋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래서,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거기에 자녀까지 두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됩니다. 어느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데, 살림하고 직장일까지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고 고되겠습니까? 그런데, 아이가 집 현관에서 ‘엄마!’ 하고 부르면서 달려오면, 그 순간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는다고 합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겠지요?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3-14)


 가난했다가 감옥에 갔다가 왕이 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분명, 솔로몬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윗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광야에서 약 10년 간을 도피생활하지 않았습니까? 반면에 늙고 둔하여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왕은 사울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서 이스라엘 역사나 다른 역사에서도 신하들이나 백성들의 고통과 간언을 듣지 않으면, 왕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어떠한 역경에서도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지금 전도서 배우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입니다.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5-16)

 

 이 마지막 부분은 ‘솔로몬’을 빗대어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즉, 다윗 왕이 그 아들인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 주었습니다.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많았고, 번성했으며 많은 업적들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려고 할 때,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10지파가 여로보암으로 북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많은 역사와 번영을 이뤘지만, 끝에 가서는 백성들이 솔로몬을 기뻐하지 않고, 그 아들을 섬기지 않고 다른 왕을 세우는 것을 보니까 전도자가 그 모든 왕들의 수고도 헛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었어도 그 공로를 시간이 지나면 금새 잊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 데, 그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오늘의 조그마한 불편한 사항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감사치 못하지 않습니까? 


 부모로서 자녀를 길렀는데, 다 커서 이제는 힘 없고 나이든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원수는 가슴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흘려 보내는 우리들의 자화상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의 인생이 끝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분에 넘치게 욕심을 채우려고 아웅다웅 하지는 않습니까?


 남의 성공과 부귀를 시기 질투하여 가까운 형제와 자매, 그리고 이웃을 속으로 미워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지 않으면서, 높은 곳을 바라보고 항상 원망하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살지 않습니까? 내게 주신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을 보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가족 간의 관계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것들이 허무하고 무익한 것인지 돌아보시고, 남은 여생을 어떠한 인생으로 살아갈지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헛된 일에 우리의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일과 사람들을 감사함으로 받고,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좋은 나라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학대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저 북녘의 동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우리 나라 안에도 그러한 불의가 생기지 않도록 살피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를 보내신 자리에서 우리 삶의 의미와 이유를 깨닫게 하시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며 회복하게 하옵소서! 사랑을 배우며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매한 자가 되어, 방황하고 헤매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다른 이들의 성공과 부를 질시하고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성공을 돕고, 남도 잘되고 나도 잘 되는 사회와 가정을 만들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그 큰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게 하시고, 이 복음을 전하며, 함께 교제하며, 아름다운 나라를 세우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안에 모든 지혜와 능력이 있음을 고백하오니, 우리에게도 하늘의 지혜와 만나를 허락하셔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아름다운 생의 열매들을 맺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구주되시는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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