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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47절부터는 15장의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성경을 학자들이 장과 절을 나눈 것이 아니라, 통으로 되어 있는 문서를 인쇄공들이 조판짜기 좋게 배열을 해서 장과 절을 나눴는데, 문맥에 맞지 않게 구분된 것이 있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14장에서 사울이 전투에서 승리는 했지만, 전쟁을 끝내지는 못했고 어정쩡한 승리를 얻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사울이 경솔하게 기다리지 못했고, 잘못된 명령을 내려서, 군사들이 잘 먹으면서 싸울 수 있도록 했어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이스라엘 군사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자기 아들 요나단도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지도자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해야 하고, 독단에 빠져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무엘의 역할도 왕이 나서서 해 버리니까, 할 일 없는 사무엘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는 이제 사람들의 힘과 자기 꾀를 앞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믹마스 전투 이후에 계속되는 전쟁이 발생하고 또 전쟁에서 승리에 도취되어 싸움을 걸었는지 몰라도, 사울이 승리를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더 사울이 교만해지고, 자신의 판단을 믿게 되는 것이지요. 사울이 계속 승리를 할 때에는 일반 성도들이 볼 때,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별로 기뻐하지 않는 사울이 점점 되어가는데, 어떻게 계속, 세상 말로, 잘나갈 수 있는지 참 의아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더 돈도 잘 벌고 사업도 잘 되고, 아프지도 않고 잘 사는 것을 보면, 우리가 굳이 주일마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옆 나라 일본을 보세요. 얼마나 우상이 가득하고, ‘신사’에는 전범들의 위패가 있고, 집집마다 가신(家神)이 있습니다. 예배당도 없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극히 적은데 어떻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지금은 중국에 밀려 3위라고 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나라를 점령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압제하고 그렇게 악한 일을 많이 했는데, 망했다가도 다시 금방 일어서지 않았습니까? 우리 눈으로 보기에도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세계가 이렇게 부조리한가?’ 하면서 낙심하고 신앙을 버립니다.
14장 47절-48절의 말씀 가운데,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이긴 이야기가 15장에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 15장의 말씀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우리가 고민하는 그런 실마리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15:1-3)
사울이 왕이 된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맡기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을 통해서 아말렉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 왕 주위에 힘 있는 자들, 싸움에 능숙한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 사람 중에는 ‘아브넬’ 같은 군대장관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습니다. 어느 개인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재벌이 되는 것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언가 하실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부자는 근면하게 일하면 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역과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쓰시는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앗시리아나 바벨론이 강성해 진 것은 그 나라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본이 세계를 제패할 만큼 키우는 것도 어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중국도 그렇고요. 지금은 미국이 온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서 벗어나면, 그런 나라와 민족은 갑자기 멸망합니다. 너무 단 기간으로 우리의 좁은 시야로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나올 때, 그 긴 이주 행렬에서 뒤쳐지고 소외된 사람들을 노략하고 죽이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싸운 것이 아니라 도적떼처럼 급습해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재산과 재물을 노략했기 때문에 그 죄를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만 보아도 참,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가 벌써 350년에서 400년이 흘렀습니다. 한 100년 전도 아니고, 그 때의 일을 지금에 와서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지간히 심판을 미루시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에 죽자고 덤빌텐데, 400년 가까이 참으신 하나님의 인내를 우리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문제 가지고 한참을 씨름 했습니다. 죄를 지은 당사자들은 벌써 죽은 지가 300년도 넘었는데, 그 아들도 아니요, 아들의 아들이나 손자의 손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은 또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또 살펴보니까, 하나님께서 그 당대에 심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자손들이 부모나 조상들의 죄에서 떠나서 회개하고 돌이키는지 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도저히 교화가 안 되고, 점점 더 악해져만 가니까, 끝장을 내겠다고 400년이 지난 사울 시대에 와서 이스라엘을 강하게 한 뒤에 복수를 하게 만드십니다.
만약에 그 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말렉이 회개했으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4대를 참으시는 하나님! 그 용서와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계속 저렇게 회개하지 않으면, 갑자기 그 땅이고 사람이고 한 순간에 다 멸절되고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우리가 어떻게 계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면, 그 죄를 자자손손 계속 짓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이제 아말렉은 그 때가 찼습니다.
“사울이 백성을 소집하고 그들을 들라임에서 세어 보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라. 사울이 아말렉 성에 이르러 골짜기에 복병시키니라.” (4-5)
얼마 전에는 사울과 요나단 곁에 겨우 600명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더니, 어느 새 이스라엘 군대가 20만 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왕의 친위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유다 지파에서 많았는데, 그 군사가 1만 명이나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정도로 이스라엘이 전쟁을 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시키고, 부강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 개인의 감정으로 하면, 사울에게 이런 일을 맡기지 않겠지만, 사울 보다 아말렉을 심판하는 것이 지금 공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시각에서 더 우선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 (6)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에게 속한 족속인데, 모세5경에 보면, 이들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산이나 미디안 땅을 지나는 길에 길잡이가 되어 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모세와 인척 간이라서 은혜를 베풀려고 하는지, 사울이 겐 사람들을 만나서, 아말렉 곁에 있지 말 것을 말합니다. 큰 군대를 보고, 겐 사람들이 아말렉 지역을 떠나지요.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7-9)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헤렘’ 명령을 내렸는데, 사울이 불순종합니다. ‘헤렘’이라는 것은 완전한 파괴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가축과 사람들,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모조리 죽였어야 하는데, 살찌고 좋은 가축들을 사울이 전리품으로 챙깁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10-11)
하나님께서 보시고,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곧 사울을 왕좌에서 내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무엘은 근심하면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왜 간구했을까요? 단지 사울이 폐위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군사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멸망할 것을 두려워해서 철야를 하면서 간구하는 것이지요.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12)
사무엘은 기도하다가 아침을 맞이한 것이지요. 일찍 나가서, 사울을 만나 그의 잘못을 돌이키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려고 하는데, 사울이 기브아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하들에게 물었겠지요? 사울이 길갈로 갔다고 합니다. 길갈에 가서 무엇하느냐면,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웁니다. ‘전승기념비’ 같은 것이겠지요.
사람이 사람을 높여서 기념비를 세우면 안 됩니다. 그 길갈에는 ‘돌무더기’ 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단을 건널 때, 물이 갈라져서 맨 땅에 건너게 하셨다는 뜻인데, 즉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에 안전히 들이게 하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돌무더기로 해 놓으니까,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백성의 지도자인 왕 사울도 모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큰 업적을 세웠다!’ 하면서 자기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월권’입니다.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데, 사람이 잘 나가면, 교만해 지고, 교만이 넘치면, 하나님도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유서 깊은 곳, 길갈에서 하나님의 기념비가 아니라 자기 기념비를 세운 사울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사울이 언제 폐위가 되어도 될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3)
사울 자신은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했다고 뿌듯해 합니다. 엄청난 착각이지요. 또 사무엘에게 칭찬을 받을 줄 알고, 먼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사무엘에게 전합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사무엘은 지금, 철야를 하면서, 사울의 폐위를 막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군사들의 생명을 위해서 간구하고 왔는데,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는 사울의 말과 행동을 듣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4)
“여호와의 명령을 행했다고요? 그럼, 이 양과 소의 울음소리는 무엇이요?”
사울도 ‘헤렘’ 명령이 무슨 명령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알면서도 본인이 판단하고 본인의 뜻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행했다고 합니다.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15)
이 말은 이런 것입니다.
“저는 다 죽이고 헤렘 명령을 순종했습니다. 다만, 일부 병사들이 가장 좋은 양과 소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남겨야 하지 않습니까 하면서 제게 가져왔기에 그러자고 한 것 뿐입니다. 나머지는 다 진멸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착복하려는 것을 좋게 신앙으로 포장했을 뿐, 전쟁에서 피를 보았는데, 전리품을 조금 챙긴 것에 대해서 자신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16-19)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 어떻게 그 은혜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수가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사울의 마음 속에는 지금 아말렉이 왜 심판을 받는지는 관심이 없고, 아멜렉이 가지고 있는 온갖 금은 보화와 가축들을 얻을 생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중심을 찌르는 말을 하니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 보다, 잡아 떼기에 급급합니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0-21)
사울은 “저는 정말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순종했거든요!” 라고 항변합니다. 가축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2-23)
사무엘이 당신의 왕위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까 그제야 사울이 잘못했다고 시인합니다. 여기서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곧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종교나 불상 같은 데에 절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우상숭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도 우상숭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새겨 들어야 합니다.
이미 이때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위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은 정해졌습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 모르는 것 뿐입니다. 이 후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아닌 다른 왕을 세우려고 준비시킵니다. 그것이 앞으로 보게 될 ‘다윗’이지요.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4-25)
사울이 잘못했다고 립서비스를 합니다. 백성을 두려워해서 그러했다면서, 이 전쟁에서 승리했는데,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테니까 함께 백성 앞에 나가자고 합니다. 이 사울의 모습이 어떤 면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 참 두렵습니다. 말로는 언제나 참회의 기도를 드리지요. 그러면서 행실은 안 고치지 않습니까? 여전히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앉아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까요?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6-27)
사무엘이 할 말을 다 했으니 돌아가려고 하니까, 사울이 붙잡습니다. 사무엘의 겉옷이 찟어집니다. 보통 겉옷이 잘 안 찢어지는데, 가죽이라서, 이 옷이 찢어진 것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예표가 되는 것이지요.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28-29)
“이미 정해졌어, 이 사람아!” 하면서 사무엘이 그냥 가려고 하니까, 사울은 그래도 사무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붙잡아 둡니다. 사무엘이 같이 있는 것을 백성들이 보면,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도우신다는 것을 백성들이 믿게 될 테니까요.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0)
사무엘은 돌아갈까 하다가 한 가지 퍼포먼스가 남아 있음을 알고 사울의 요구를 들어 줍니다. 그것은 아말렉의 왕, 아각을 죽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심판하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울을 따라갑니다.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31-34)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종결되었습니다. 아말렉의 죄를 묻고 심판을 했지만, 이제 다음 차례는 누가 되겠습니까? ‘사울’이지요. 사무엘은 그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35)
이스라엘 역사를 보아도, 북왕국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해 앗시리아를 사용해 쓰시다가도 그 앗시리아도 하나님의 성호를 비방하고 까부니까 바벨론을 들어서 앗시리아를 영원히 멸망하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는 일을 행하십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인내와 또 징계와 심판의 준엄함도 알게 됩니다. 지금 당장 우리의 눈에 불의해 보이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안아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선하게 이 땅을 돌보고 계시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모든 사람이 돌아오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입과 발과 손이 되어서 완악한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말렉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사울을 강성하게 하시고 많은 군사들과 장교들을 붙여 주셨지만, 사울은 그것이 자기가 잘 정치해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인줄 알고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불순종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세상 역사나 나라를 볼 때에도 하나님의 통치는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주님! 그렇지만, 언제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겸손하여서 사울과 같이 버림을 받는 일이 없게 도와 주옵소서!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귀하게 여겨서, 거역하는 죄, 우상숭배와 같은 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랑받는 자녀와 하나님의 권속이 다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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