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연세중앙교회 인터넷 신문 >
15장에서 사울 왕이 하나님의 눈 밖에 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에게 신임을 잃고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다른 왕을 준비시킵니다. 우리들은, ‘구관이 명관인데, 사울 왕이 부족한 면이 있다 할지라도 교육을 시키든지 변화시켜서 어떻게 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게 다 실수하고, 잘못을 하니까, 한 두 번은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넘어가고 바르게 판단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잘못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딱 한 번 실수로 끝장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 사울도 한두 번 잘못하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사무엘의 입장에서는 사울이 자기가 잘못했다고 입으로 시인하기도 하니까, 못내 아쉬운 것입니다. 사무엘이 울면서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어떻게 다시 쓰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무엘이 슬퍼하는 그 마음을 헤아려서 어느 정도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사무엘이 사울을 포기 못 하고 슬퍼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일이 진행이 안 되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 일을 하려고 하실 때 사람과 함께 일을 하시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책망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1)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하시며, 바꿀 것은 바꾸고 갈아치울 것은 갈아치우고 해야지 안 되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오랫동안 슬퍼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하십니다.
뿔에 기름을 채우다니,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수양의 뿔을 잘라서, 속에 구멍을 크게 파냅니다. 양쪽을 다 뚫어서 피리처럼 불 수 있게 만들면 양각나팔(왕상 1:39)이 되고 한 쪽만 뚫어서 기름을 담으면, ‘잔’이 됩니다. 이 구멍에 올리브기름을 채워서 제사장이나 예언자나 왕에게 기름을 부으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직 이스라엘 땅에 성지순례를 가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런 기름 뿔을 하나 구해 오면, 시각적 자료가 되고, 말씀 전할 때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구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제게 하나만 선물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하~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집에서 한 사람을 왕으로 선택했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읽게 되지만, 그것이 다윗입니다. 이새 가문이 대단한 가문은 아닙니다. 다윗이 아버지 양들 몇 마리를 키우는 목동이었는데, 큰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선택했다고 하십니다. 참, 놀라운 일이죠. 우리 같으면, 사울 왕가에서 어디 인물이 없는지 볼 것이고, 사울 가문이 아니면, 사울의 신하들 중에 인물이 있는가 살필 텐데,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집안에서 미리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는 것을 보면.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특한 선택 기준으로 사람을 택하시는데, 신분이나 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택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2)
사무엘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부을 수 있겠느냐고 하나님께 반문합니다. “소문이 나면, 그 사람도 죽고, 자기도 반역으로 몰려서 죽을 것 아니겠습니까? 버젓이 하나님이 세운 왕, 사울이 있는데 다른 왕을 세운도고 하면, 또 백성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까?” 하는 의미도 담겨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왕이 되기까지 극비의 일을 진행하게 하십니다. 그 모략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베들레헴 땅에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제사를 집례하는데, 이새의 가문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3)
하나님께서 좋은 명분을 주십니다. 사무엘이 더 이상 반론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가라 하면 가야 합니다.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4)
사무엘이 놀러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인데, 거물이 여기에 ‘왜 왔을까?’ 두려워하면서 그 성읍 장로들이 떨면서 영접합니다. 그리고 ‘평강의 일’로 오셨는지 묻습니다. 사무엘이 사사로서 재판을 하고 다니면, 죄인들이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장로들은 혹시 불미스러운 사건이 그 지역에 일어났을까 싶은 것이지요. 무슨 사건이 발생했는지 걱정이 되었겠지요. 도둑질이나 작은 일 같으면, 사무엘이 오겠습니까? 무슨 강력사건이나 큰 심판을 받을 만한 일이 있었는지,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5)
장로들의 걱정을 알았는지, ‘무슨 사건 사고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하는 뜻으로 ‘평강’을 위해서 왔다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려고 온 것이다 합니다. 그리고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참여하는데,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함께 청하라고 합니다. ‘성결하게 하는 것’은 옷을 빨고, 목욕을 한 뒤에 제사에 예물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한편으론 안심을 하면서, 왜 여기에 제사를 하러 왔는지, 또 이새와 그 아들들은 초대를 하는지 의아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있는 라마 라든지, 벧엘이라든지, 길갈이라든지 큰 곳에서 제사를 하고 필요한 사람만 사람을 통해서 기별해서 오게 하면 될 텐데, 사무엘이 직접 송아지를 가지고 왔고, 아무도 대동한 사람이 없거든요? 사무엘이라면, 왕과 함께 기브아에서 제사를 드려도 될 텐데, 왜 이 촌구석에 와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을 부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6-7)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장자 엘리압을 보니까 키도 훤칠하고 남자답게 생겨서 이를 하나님이 세우실 왕인가 보다 하고 기름뿔을 가지고 기름을 부으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고 의역을 했습니다. 직역하면 마음을 보신다고 합니다. ‘레바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의역하면 중심을 보신답니다.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중심, 심지, 마음씨, 레바브를 보십니다. ‘속내를 본다. 속마음을 본다’ 뜻입니다.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8-9)
이새의 둘째 아들, 아비나답을 사무엘 앞으로 보내 보니까, 이 사람도 아니라고 합니다. 셋째 아들 삼마도 사무엘 앞을 지나갔는데,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니랍니다. ‘이새’라는 사람에게 아들 여덟 명이 있었는데, 사무엘이 제사를 초대할 때, 이새는 자기와 7명의 아들만 데리고 간 것입니다. 일곱 째까지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해 보았는데, 하나님의 감동이 안 온 것이지요.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0-11)
이새가 데리고 온 아들들은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갔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모두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묻는 것이죠. “당신의 아들들이 7명이 전부입니까? 다 데리고 왔습니까?”
“아뇨, 막내가 있는데, 들에서 양을 돌보고 있을 것입니다. ”
이새가 말하니까, 사무엘이 당장에 데려오라고 그 애가 오기까지 식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새가 보기에 막내는 그냥 양이나 보게 해야지 데리고 오면, 냄새가 나고 이스라엘의 큰 어른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놔 두고 온 것입니다.
다윗이 이 때의 일을 기억합니다. 얼마나 아버지에게 섭섭했던지, 시편에는 부모가 나를 버렸다고까지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 27:10)
이새는 다윗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제사는 다 드렸고, 식사만 남았는데, 다들 배고프게 기다립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2)
가장 어린 사람을 기다립니다. 어른들이.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모와 키, 무슨 가문인지, 돈은 얼마나 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많은 지, 적은 지 따지지만, 하나님께서 보시는 서열은 달랐습니다. 다윗은 막내인데, 하나님께서 다른 형제들보다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냥 높이 평가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의 왕을 삼겠다고 하십니다. 장로들이나 이새나 이 무엇하는 짓인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3)
참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장자나 장자에게 영 무슨 결함이 있으면 차자 정도에게 권위를 주시는 데, 여덟 아들 중에 말째, 막내라도 너무 어려서 얼굴이 아직 홍조를 띄고 있는데, 그 아이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십니다. 이런 것은 아무리 봐도 인간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또 막내인데, 그 아이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시니 사무엘은 그저 순종할 따름입니다. 사무엘도 자기 생각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지시하는 대로 막내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식사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고향으로 가버립니다. 식사를 하면, 장로들이나 이새가 왜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붓는지 계속 물어보고 따지지 않겠습니까? 다윗의 형들은 또 어떻겠습니까? 이 때부터 다윗이 형들에게 미운털이 박히지 않겠어요?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왕이나 제사장이나 예언자에게 하는 일인데, 사실 이전까지 제사장이나 사울 왕에게 기름을 부었지,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기름을 부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아닙니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올리브 기름 자체가 무슨 능력이나 힘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징적인 행위인데, 여기 다윗에게는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시아흐’, 즉 메시아라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 하면, ‘크리스토스’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 할 때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임재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4)
다윗이라는 소년에게는 ‘성령’이 임하고, 그 시각, 사울 왕에게는 성령이 떠나고 악신이 임합니다. 사울에게 있던 성령께서 옮겨 가셨는지 몰라도, 사울은 성령이 떠나고 나니 바로 악령이 사울 속에 들어갑니다. 여기 ‘번뇌하게 한지라’도 의역입니다. 히브리어를 직역을 하면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로 하면 ‘공황장애’ 같은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는데 괜히 두려워서 밖에 나가지고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문제가 어쩌면, 영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악령. 악령이 사람에게 덮어 씌우면 두려워할 것도 없는데 두려워하게 합니다. 벌벌벌벌 떨면서 사람도 두려워하고 그냥 뭐든지 온 세상을 두려워해서 문 밖에도 못 나가고 그런 일이 있습니다.
성도님들 중에서 괜히 아무 두려워할 것도 없는데, 두려워지면 그것이 악령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한 사람은 담대하고, 용기가 충만합니다. 다음 장에 가면, 다윗이 골리앗을 보고도 겁을 내지 않습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겁을 내고, 두려워 떨 만 한 데, 전혀 겁을 내지 않고, 물매들고 돌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딤전 1:7-8)
특히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나 전도자나 담대하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공중 앞에서 마이크 잡고 담대하게 복음을 외치는 분들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앞에 나가서 다른 것을 발표해도 벌벌 떨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복음 전하다가 맞아 죽는 일도 있었는데, 공중 앞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외치는 분들을 시끄럽다고 타박할 것만 아니라, ‘아 나도 저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외쳐야 하겠다!’ 도전을 받고, 믿음이 담력을 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꼭 시끄럽게 떠드는 것만이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고 믿음을 드러내는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5-16)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이미 ‘음악치료’라는 것이 있었네요? 여기 ‘수금’으로 번역한 악기가 정확하게 어떤 악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로는 ‘하프’로 번역했는데, 손가락으로 튕기면서 연주를 했는지, 바이올린 처럼 활줄 같은 것으로 연주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을 진정시키고,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요즘 유투브에 보면, 여러 가지 소리로 잠을 재우게 한다든지, 정신적인 피로를 감소시키고 평안하게 한다든지 하는 음악이 있습니다. 아마도 특정 주파수의 소리가 긴장을 이완시키든지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7-18)
어떻게 이렇게 다윗이 사울과 연결이 됩니까? 베들레헴의 작은 동네에서 양이나 치는 목동이 어떻게 이렇게 음악적인 재능이 있었을까요? 지금이야, 유투브라는 것이 있어서 기타나 다른 악기들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 연주하는 것이 많이 나와 있어서, 재능있는 아이들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무튼 다윗이 악기를 잘 연주한다는 소문이 왕실에까지 들어갑니다.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19)
사울의 어떤 신하가 소개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윗이 사울과 인연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0-22)
다윗이 사울의 ‘하우스 보이’가 됩니다.
1951년 경상북도 경산에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거드는 ‘하우스 보이’ 한 아이를 미군 칼 파워스 상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냅니다. 뱃삯은 물론 학비, 기숙사비에 모든 서류까지 모든 것을 준비시켜 유학을 보냅니다. 그리고 기숙사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신학대학과 대학원까지 8년 동안 재정을 지원하지요.
사실, 파워스는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참전한 것도 사립대에 진학할 학비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이 소년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자신의 꿈은 포기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교사로 지냈습니다. 칼 파워스의 도움으로 이 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바로 ‘김장환 목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23)
다른 사람의 연주한 것 가지고 안 되고, 다윗이 수금을 타니까, 사울이 머리 아픈 것이 사라지고, 상쾌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설명이 안 됩니다.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게 되면 사울의 불안 심리가 가라앉고, 마침 악령이 떠나든지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울을 버리시고, 아직 소년이며, 가정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다윗을 택하시어, 기름부음을 받게 하시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봅니다. 우리도 우리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도 주님처럼,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중심을 볼 수 있는 마음과 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께 영광돌리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주목하고 계심을 믿고, 늘 주님을 의식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하며, 우리의 참 모범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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