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s://blog.naver.com/projectju/189742308 >
17장 마지막 부분은 지난 주에 다루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이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라합니다. 그리고, 누구냐고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전공을 세웠냐고 묻습니다. 17장 중간부분에 사울이 다윗을 만나서 자기 군장을 주기도 하고, 그 앞 16장에는 수금을 타고 자기 곁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17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다윗이 누구며, 누구 아들이냐고 묻는 것을 보면, 참 이상하게 보입니다.
이를 두고, 학자들과 성경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 참 난감해 하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묻기도 합니다. 아브넬이야 다윗이 자기 직속 부하도 아니고,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느라 바쁘면, 왕 곁에서 수금을 누가 타는지 알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마치 다윗을 처음 보듯이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울이 다윗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집안이나 그 부모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묻고 자기 곁으로 데려왔다 라고 봅니다. 왕이 아주 높은 사람인데, 일반 평민집 자녀, 그것도 20살도 안 된 소년을 어떻게 잘 알겠습니까? 수금을 탈 때도 멀지 감이 떨어져 있으면, 다윗의 얼굴을 잘 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울이 악령에게 자주 시달렸기 때문에, 치매 비슷하게 정신병을 앓고 있었을 경우입니다. 앞으로 계속 보겠지만, 사울이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합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다윗이 도망을 다니게 되는데, 사울 자신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말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을 두 번씩이나 살려 주고, 사울이 다윗에게 네가 내 다음에 왕이 될 것이다 라고 인정하고 돌아갔다가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볼 때,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18장은 다윗과 요나단이 언약을 맺은 내용과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주목하여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우정’의 표본처럼 유대인들은 인식합니다. 그만큼 형제같이 사랑한 사이였습니다.
사울이 자기 왕권을 지키고, 세습하기 위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애를 쓰는데, 요나단은 다윗을 두둔하고 다윗이 왕이 되어도 좋다고 합니다. 사람이 권력욕심에 빠지면, 친구도 부모도 안중에 없는데, 요나단이 양보를 할 만큼 다윗을 사랑합니다. 왜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서 골리앗을 무찔렀고, 요나단도 역시 신앙으로 블레셋의 수비대를 치면서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에 신앙적인 면에서 많이 동질감을 느꼈을 것으로 봅니다.
그야말고, 신앙 안에서 진실하게 언약을 맺고, 형제지간이 된 것입니다. 중국 고전, 삼국지의 관우, 유비, 장비가 도원결의라고 해서 의형제를 맺었다면, 성경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이 의형제를 맺은 것이지요. 이를 참 아름답게 보아서, 복음성가 그룹 중에 ‘다윗과 요나단’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1980년대 아주 유명한 곡들을 쓰고 불렀는데, 저도 어릴 적에 부모님과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듣는 것을 함께 듣기도 했는데, 아주 화음을 아름답게 잘 부릅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3)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이런 말이 2번이나 반복이 됩니다. 너무 너무 사랑해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해서, 자기 생명으로 우리를 대신하시고,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께 생명을 다해서 사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요나단이 다윗에게 자기 옷과 무기와 띠까지 전부 주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왕자고 군대 지휘관인데, 자기 것을 주는 것은 다윗이 나와 같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지위를 대신 할 사람’처럼 다윗을 여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5)
사울이 다윗을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고 했지만, 임명장만 준 것이고, 실제적으로는 요나단이 아버지를 충동해서 그렇게 다윗을 임명하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 된 것은 아닌 것 같고 더 읽어보면, '천부장을 삼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튼 천부장을 삼았다고 해도 아직 장가도 안 간,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다윗에게 군대의 높은 지휘관을 삼았어도 백성이 당연하게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이견(異見)이 없었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것도 그렇고, 어느 곳에 놔 두어도 다윗이 아주 지혜롭게 처신을 해서 다른 장교들이 반발하지 않은 것입니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6-9)
다윗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승리하여서 행진을 합니다. 물론 사울이 맨 앞에서 군사들을 이끌며, 칭송을 받지요. 그런데,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하면서 사울 왕보다 다윗을 더 높인 것입니다. ‘저렇게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가는 나라를 통째로 다윗에게 빼앗기겠다’ 사울이 이런 위기감을 느끼면서 불안해 하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 하나를 죽였는데, 이렇게 왕보다 영광을 더 받은 것이지요.
비교당하는 것은 누구든지 즐겁지 않지요. 사람을 비교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다’ 그 정도만 비교할 수 있답니다. 아버지보다 훌륭한 아들이 나면, 영광이지 않습니까? 그 외는 다른 누구와 사람 대 사람을 놓고 비교하고 말하는 것은 다툼이나 시기 질투를 유발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사람들의 인기가 높아지면, 곧 내 왕위를 노리지 않겠느냐 하며 경계를 하는 것이지요. 항상 사람을 높이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만약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윗이 그렇게 미움을 받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나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신경을 쓰느라, 자기의 인기가 사라지면, 왕위도 위태해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울이 다윗만 죽이면, 자신의 왕위가 안전해질 것으로 착각하지요.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 (10-11)
사탄이 이렇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 속에 역사합니다. 더구나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시니, 마음놓고 사탄이 그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 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알 수 없는 말을 마구 지껄이는 것이 사탄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도 알 수 없이 떠드는 것 아닙니까?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대다수가 귀신의 방언으로 봅니다. 극단적 신비주의에 빠지면, 사람이 이상한 짓을 하면서 성령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영은 사람을 헤치고 죽이는 영입니다. 성령이나 예수님은 고치고 생명을 살립니다. 그리고 성령은 정신없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울 왕이 귀신에 충만해져서 미쳐 날뛰니까 다윗이 그것을 가라앉히려고 수금을 연주를 하는데, 사울이 짧은 창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던집니다. 귀신의 영은 언제나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사울이 한 번만 창을 던진 것이 아니고 다윗이 피하니까 또 던진 것입니다. 평상시 같으면 다윗이 창에 맞아 죽었을텐데, 하나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다윗이 두 번다 피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2)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다윗을 해쳤다가는 사울 왕도 온전치 못하게 될 것같이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14-15)
사울이 다윗을 자기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게 합니다. 함께 있기가 거북스러운 것입니다. 사울은 사탄의 영에 의해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다윗은 사울 자신 외에는 경계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없고 또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 주시니 그 꼴을 보기 싫은 것이지요.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15-16)
다윗이 국민들의 마음을 얻습니다. 다윗이 양을 돌보듯이 세심하게 살피니까, 백성들이 좋아할 수밖에. 사울의 생각에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뒤짚여서 왕권을 빼앗기게 되지 않겠는가 하면서 그렇게 불안에 떨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17)
사울이 잔꾀를 냅니다. 그것도 자기 딸을 걸고. 사울이 다윗을 직접 죽이면 백성들의 원망을 사게 되고, 신뢰를 잃어서, 왕위가 위태로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울이 머리를 써서 ‘자기 딸을 주겠다’, ‘사위로 삼겠다’ 하면서 블레셋과 싸우게 만듭니다. 많이 전쟁하다보면, 늘 이기기만 못하고 언젠가 질 수도 있으니까, 그때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 전쟁에서 죽게 하려고 다윗에게는 자꾸 싸우라고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울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역사를 보아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장군이 외국에 가서 싸워 승리하여 공을 크게 세우면, 개선문을 통해 백마를 타고 들어옵니다. 온 로마 시민들은 또 꽃을 던지면서 대환영을 합니다. 그러면 원로원도 술렁거리고 왕도 불안해 합니다. 승리를 축하하고, 잔치를 베풀고 하면서 왕이 격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마냥 기쁠 수만은 없습니다. 자기 자리가 불안해지니까. 그래서 또 다른 곳에 전쟁을 벌여서 그 장군을 내쫓습니다. 로마에 그런 인기 있는 장군이 들어오면 왕이 자리가 불안해지니까 또 전쟁을 저질러서 내보냅니다.
왕의 마음은 ‘죽어도 나가 죽어라!’ 하지만, 말은 “잘 싸우고 이기고 돌아오라!” 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오면, 로마 황제는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로마 장군은 전쟁에 승리하고 어떤 공로가 있어야 정치적으로 나중에 원로원의 신임을 받든지 자기 출세길이 열리니까 열심히 싸웁니다. 로마가 좋은 정치를 해가지고 그렇게 세력이 커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식으로 왕이나 원로들이 자꾸 장군들을 내모니까, 장군들은 나가서 싸우고, 또 인기가 생기니까 그런 식으로 팽창하게 되었된 것입니다.
사울도 다윗을 블레셋과의 전쟁에 내보내서, 열심히 싸우고, 많이 싸우고 하다 보면 거기서 제발 죽어라 그런 심보인 거예요. 얼마나 이게 정치라는 게 악한 건지요. 그리고 대개 내부가 불안해지만 바깥에 전쟁을 만들어가지고 백성의 시선과 관심을 그쪽에 돌리게 하는 그 수법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다 하던 짓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다윗이 사울의 속셈을 모르지만, 다윗은 겸손한 사람이라서, 어떻게 자신이 왕의 사위가 되겠느냐며 사양하듯 하지만, 다윗도 마음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과 만남을 가질 때에 그 여동생들도 보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니까, 여동생하고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사울은 딸이 혼기가 차니까, 전혀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또 있지요. ‘미갈’이라고. 이 미갈이 다윗을 좋아하고 해서 언니가 다윗에게 시집가지 않을 거라면, 자기가 결혼하고 싶다고 아마 요나단에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20-21)
사울이 자기 딸을 이용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계획합니다. 결혼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지 어떤 수단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대게 어른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혼인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요즘 드라마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드라마의 대부분이 여자는 좀 가난하고 당차고 예뻐서, 재벌집 남자와 눈이 맞아서 사랑하고 결혼하는 그런 시나리오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환상에 빠져서, 자기 하고 비슷한 사람하고는 결혼하려고 하지 않고, 최소한 아파트 한 채는 가진 사람이라야 만나줄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이 세속화 되었고, 서울에 아파트 한 채가 10억즘 하니까, 젊은 남성들이 다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여성들의 눈이 너무 높아졌어요. 그래서 본인들도 불행해 지고, 남자들은 외국여성을 찾게 되는 것 아닙니까? 또 K-드라마라고 해서 전 세계로 한류문화가 퍼지는 바람에 요즘은 외국 여성들도 다 타락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남성들이 결혼하기 힘들 것입니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명령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의 귀에 전하매 다윗이 이르되 왕의 사위 되는 것을 너희는 작은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라 한지라.” (22-23)
사울이 부하들을 시켜서, 다윗을 한 번 마음을 떠 본 뒤에, 자꾸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 싸우게 만듭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더이다 하니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왕이 아무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의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 하라 하였으니 이는 사울의 생각에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리라 함이라.” (24-25)
사울 왕이 참 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이 발생해서 싸우면 나가서 싸울 수 있지만, 다윗을 어떻게 죽일까 궁리하는 중에 ‘블레셋 사람들 남자를 일백 명을 잡아가지고 그 성기의 껍질을 일백 개를 벗겨 오라.’ 이런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을 시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에게 아뢰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결혼할 날이 차기 전에 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26-27)
다윗이 미갈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사랑을 얻기 위해서 사람 200명을 죽이고 그것을 결혼지참금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다윗도 사실 옳은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젊을 때는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나중에 가서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이 아무리 이방 나라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신 것도 아닌데, 왕의 명령이고 자기 사랑을 얻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28-29)
이렇게 얻은 아내 미갈과 다윗이 끝이 좋으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 다윗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윗도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남성들이 한 여자를 얻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댓가가 너무 큰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30)
어떻게 사울 왕의 요구 조건을 다 이행 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아무튼 다윗이 이런 일까지도 한 것을 보면, 번뜩이는 재치와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런지.
아무튼, 다윗이 아름다운 우정의 관계를 맺었고, 사랑하는 아내도 얻었지만, 아주 큰 적이 가까이에 있었고, 그 때문에 실수도 했음을 봅니다.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얻으면 좋은 줄 알지만, 때로는 이렇게 무지하게 이용당해서, 죄를 짓게 만드는 그런 악이 있음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왕의 아들, 요나단과는 아름다운 언약을 맺고, 우정을 쌓게 되었으며, 사울의 딸 미갈과는 결혼을 하는 일도 있었지만,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견제하며, 죽이려고 권모술수를 쓰는 것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세상을 살아갈 때 참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특히 우리 주님 예수님과는 사랑의 언약을 맺고, 평생을 사랑하며,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게 하옵소서! 주님은 우리를 형제로 대하여 주시니 황송할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아 겸손하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이용하지 않게 하옵소서!
사울은 그러했지만, 우리들은 거룩하고 순결하게 주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아름다운 가정 이루고, 친척관계와 친구관계 모두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친구삼아 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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