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성경에는 4장 17절까지 있는데,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는 4장 17절을 5장 1절 말씀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래야 문맥에 맞기 때문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1)
하나님의 집이 성전이요, 예배당에 올 때, ‘발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할 때 신중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를 다니는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과 태도,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이 땅의 사람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부귀 영화나 자식들이 잘 되는 것들이지요. 그것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그 끝을 쾌락과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데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사업을 하는 것도, 세상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갖는 것도,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에게 재물을 많이 갖다 바치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소원 성취를 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혹시 성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재물을 들고 들어가 바치지 않아도,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면, 그냥 기도응답을 해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해 주시면, 제가 무엇(?)을 바치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 인간들의 수준에 맞추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성경을 잘 들여다 보고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운 성품을 알면, 우리가 간구하는 것들도 많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정욕으로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보시고, 많은 부분을 거절하십니다. 또 우리가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좋은 것으로 주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인내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 (2)
우리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부르짖는 기도에 익숙해 있습니다. 제가 그리 오래 살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1980년대부터 오순절 교단의 영향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전에 장로교 전통에는 이렇게 통성기도, ‘주여 3창’ 이런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보다는 조용하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시끄러우나 조용하거나 요즘은 기도들을 잘 하지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오히려 이슬람식의 절하는 기도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편하게 앉아서 졸다가 자다가 예배드리면, 정말 ‘신’을 섬겼다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심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는 기도나 무릎을 꿇는 것이 더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렸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더 중요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4절 이하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겠다’고 성급하게 조급하게 말하지 말라고 의역을 했습니다. 3절 이후에 다시 좀더 깊이 살펴 보겠습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חֲלוֹם)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3)
뇌신경 과학자들에 따르면, 보통 사람이 밤에 잘 때 꿈을 2, 3번 정도 꾼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깊은 잠을 잘 자면 모릅니다. 그런데,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은 그 꿈이 보이고, 심지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기 번역에는 ‘걱정’으로 나왔는데, 영어 성경으로는 ‘우울함’을 말합니다. 걱정이나 우울함이 있으면 잠을 깊이 못 드는 것이지요. 근심, 걱정은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밤에 잠을 푹 자야 건강에 좋고, 우리 몸과 마음이 쉽니다. 결국에는 자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몸과 정신도 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상태에서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해 보아야 더 큰 걱정거리만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뵈옵는 것은 이 세상을 우리 힘으로만 살아갈 수 없기에 주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특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술로 마음을 달래고, 운에 맡기고, 헛된 우상에게 점을 보며, 행운이 오기를 바랍니다만, 성도들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천국까지 이끌어 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기도할 때, 근심과 걱정, 염려를 털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그 짐들을 내려놓았다가 성전 문을 나서면서 다시 짊어 지고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맡기면,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분명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절과 연결된 결론은 7절에 나옵니다.
“꿈(חֲלוֹם)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7)
꿈에 너무 얽매이거나, 꿈에 근거하여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4)
우리가 다급할 때는 그저 ‘무엇만 해 주시면, 집을 받치겠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받치겠습니다.’ 그런 기도가 나옵니다. 사업하는 성도는 사업이 어려울 때, ‘이 부도만 막아주시면,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이조를 받치겠습니다.’ 하고 성급하게 기도하거나 서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어려움이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서원기도를 했는지 잊어버리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서원하지 않아도, 선한 목적과 뜻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어려울 때나 평온할 때나 항상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습니다.
대개, 하나님과 관계가 요원한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하나님이 꼭 무언가를 바쳐야만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내 소원을 들어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에 아들과 딸들이 필요한 것과 유익한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녀가 간구하면 인간의 부모도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천지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못 들어 주시고 안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런 서원기도를 하지 않아도, 마땅히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십일조와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꼭 하나님께서 물질이나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할 줄 아는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5)
했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했으면, 하나님의 응답에 마땅히 감사하고 드릴 것은 드려야 합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어기면, 관계가 나빠집니다. 하나님과 자신만이 아는 그런 서원을 갚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이뤄 주신 은혜들을 간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듣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원이 꼭 잘못이고,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자녀들이 부모와 아주 끈끈하고 깊은 사랑의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것이 아니듯이 하나님과 성도 간에도 사랑의 관계로만 맺어진 것은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아쉽게도 ‘계약’ 관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예배당에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내가 예배당에 다니고, 교회를 다니면,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단 사이비 같은 목사들은 ‘서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 1천 만원, 2천 만원 이렇게 작은 것을 원해서 서원하지 마세요! 큰 것을 구하세요! 큰 것을 달라고 간구하면서 서원하세요!”
참,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목사 딸이라는 어느 20살짜리 청년의 간구도 들어 보았습니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만 주세요!” 참, 맹랑한 기도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참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6)
우리가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로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어리석은 서원을 하는 것보다 그냥 잠잠히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입으로 뱉은 말 때문에 범죄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서원을 들어 주셨는데, 내가 잊거나 말을 바꿈으로 해서, 하나님의 분노를 살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까지 빼앗기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8)
왜 갑자기 서원이야기를 하다가 권력자의 학대와 압제의 이야기가 나옵니까? 우리가 성경을 전체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징계하시고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나라의 관리와 관원들이 백성을 다스리는데, 그 백성이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 같지 않은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을 했다던가, 서원을 했는데 갚지 않으면, 권력자들과 권세자들을 통해 그 사람을 다른 이유로 학대하거나 탄압을 받게 합니다.
꼭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백성의 관리들에게 ‘저 인간을 잡아서 옥에 넣어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인생사는 진행이 됩니다. 우리 눈에는 인과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데, 이집트나 앗시리아나 바벨론을 자꾸 섬깁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런 나라들에게 학대를 받게 하고 나중에는 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큰 나라를 잘 섬기면 잘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라는 더 어려워 지고 자신들의 권력은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징계고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사람이 다른 인간들은 얼마나 우습게 알겠습니까? 또 이런 사람들이 결국에는 그 훔친 것으로 잘 살고 부자가 되지 못하고 ‘빈민’이 됩니다. 가난해 질 뿐입니다. 현실의 모습에서는 돈이 많고 누리고 잘 사는 듯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하늘에 쌓은 것이 없는 빈민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하고 지각이 있어야 합니다.
“땅의 소산물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나니 왕도 밭의 소산을 받느니라.” (9)
이 땅의 왕이라고 가장 높은 사람일지라도, 그 식물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왕일지라도 굶어 죽을 수 있습니다. 그 자리의 위엄도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그냥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높은 분, 존귀하신 분이며, 만왕의 왕으로 알고 믿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10)
우리 인간은 물질로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함으로만 해갈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생수만이 우리를 참 만족하게 하며, 목마르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목마름을 착각해서, 돈을 많이 쌓으면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줄 알고, 평생을 돈을 쌓는데 급급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은 이미 가질 만큼 가졌으니, 권력을 가져 보겠다고 애를 씁니다. 그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만족을 하느냐, 만족을 못합니다. 이 권세, 권력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서, 그 다음은 ‘영생’을 얻겠다고 발버둥을 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건강’이지요.
그러나, 사람은 영원히 건강할 수 없고, 영원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영원히 왕 노릇 하겠다고 ‘진시황’ 같은 사람은 여러 사람 죽였지 않습니까?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11-12)
부자가 근심하고 두려워 하는 것은 그 재산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자기 일군들에게 주는 봉급이 아까워서 바들바들 떱니다. 어떻게는 안 주려고 하고 떼 먹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더 한다.’ 하는 말까지 생겨 났겠습니까?
/* 최목사님 이민 간 이유 - 자녀들 때문 만일까? */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13)
부자들은 돈이 많아질 수록, 신변에 위험이 생깁니다. 부자가 있다는 것은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똑같이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재산에 양극화가 벌어지는데, 이것이 심해질 수록, 인간들은 다 죄인이라서 시기와 질투를 피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이 내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하고 믿게 되면, ‘공산주의’는 급속하게 퍼지고,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서 다시 평등하게 하자고 외치고 실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어느 정도 부가 쌓이면, 베풀어야 합니다. 적어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 하고,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았다고 여기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아주 조심해야 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와 제도를 갖춰야 합니다. ‘기부’도 많이 하고 해서, 사람들이 ‘부자’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들의 생명도 안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14)
‘재난’이 언제 발생할 지 모릅니다. 사회가 한 번 뒤집어 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역사를 살펴보면, 뒤집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쿠테타로 왕이 바뀐다 든지, 정권이 바뀐다든지, 갑자기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든지, 병자호란, 임진왜란 같은 ‘난’이 계속 발생합니다. 이런 때는 평생을 쌓아 이룩한 부가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 인심을 잃지 않은 부자들은 주변 사람들이 도와 줍니다. 그러나 인색하게 굴면, 오히려 이 때 더 학대를 당하고,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함부로 말도 꺼내지 못했던 종들이나 아랫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하면, 그동안의 설움을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피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15-16)
우리가 ‘공수레 공수거’란 말을 들었는데, 이 말도 사실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부모나 형제나 이웃들이 도와 주고 살피고 해서 우리가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이들을 살피고 도와 줘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것도 이 땅에서 가져갈 수 없고 다 놓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빈 손들고 와서 빈손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17)
한 사람이 가난에서 부자가 되기까지 얼마나 큰 수고와 노력과 땀과 눈물과 걱정이 있었고, 때로는 병도 얻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부자가 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18)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일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19)
말씀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십시오. 우리의 몫을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빼앗기지 않고 받고, 누리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많든 적든 늘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고 누리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20)
걱정, 근심 속에서 재물이나 건강을 잃을까봐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면서, 하루 하루 즐겁고 감사하게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난 날은 알아도 죽을 날을 모르게 하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이 시간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면서, 아침에 눈을 떠서 오늘 하루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겁고 보람차게 일하면서, 하루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생명을 허락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이 자리에 나와 예배와 기도와 찬양을 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헛된 근심과 염려 속에서 걱정하며 살게 마시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맡기며,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앞에 잘못된 서원을 드리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까지 내어 주신 사랑을 믿고, 우리도 주님을 더 사랑하고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오니,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자족할 수 있는 믿음과 겸손을 배우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되시는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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