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6장 누리며 삽시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1) 


 세상에 불행한 일, 악한 일들이 많은 데, 전도서 6장에서는 한 가지 참 무거운 주제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불행한 일’로 의역을 했는데, 원어에는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악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합니다. 원어에는 ‘큰 것’ 또는 ‘풍부한’ 이란 뜻입니다. 즉, 우리 주위에 흔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내가 해 아래에서 또 악한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2)


 여기 ‘다른 사람’은 히브리 원문에는 ‘외국인’, ‘이방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어떤 사람은 비유로 말하는 것인데,  1, 2절의 상황은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얼마나 많은 부귀와 영광과 재물을 얻었고, 만국에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는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지요. 얼마 안 있어서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어 지더니,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라는 나라에게 빼앗겼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3)


 수많은 세대가 지나갔습니다. 백성들이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많은 때도 있었지요. 이스라엘에게 100이란 숫자는 꼭 100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기원전 1000년 경에 다윗 왕조가 시작되었는데, 기원전 586년 경에 멸망했으니까, 400년 이상을 지낸 것입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왕조가 유지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옛날에 조선 왕조 600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600년 동안 왕조가 유지된 것은 세계의 역사에 참 드문 일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은 길어야 200년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조가 400년을 지났으면 대단히 오랜 역사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올 다윗 왕조의 마지막 왕, 예수 그리스도는 그 나라가 영원 무궁하며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전도자는 아마 솔로몬이라고 소개는 했지만, 다윗 왕조의 멸망을 잘 알고 있는 후대의 지혜자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서,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무덤에 안치도 못한 채, 죽어버린 어떤 사람처럼 묘사합니다. 차라기 어미 뱃속에서 낙태되어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자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으면, 그런 표현을 할까요?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4-5)


 이 전도자는 관점이 ‘이름’, 즉 명예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했데…’ 하는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이 싫은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명예를 더럽히느니, 차라리 이름 없이 왔다가 조용히 사라진 낙태된 아이가 더 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6)


  여기 행복은 무엇일까요? 원어에는 ‘토바’로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좋은 것’, ‘선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면, 재물도 될 수 있고, 즐거움으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즐거움도 기쁨도 좋지만,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가장 ‘선한 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로 말하면, ‘그리스도’요, 유대교로 말하면 ‘하나님’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재물이나 즐거움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땅의 것으로 끝나고, 마지막은 다 한 곳, 음부, 지옥 밖에 갈 곳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에 조선 말기에 선교사님들이 와서  복음을 전할 때, 한 양반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자기가 즐기던 모든 것을 그대로 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술을 계속 마셔도 되는지 물었더니, 선교사님들이 당시 조선에 복음 전할 때, 성도들에게 금주를 하게 하자고 결의한 것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낮에도 취해서, 농사 하다 말고, 나무 그늘에서 잠자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 다음으로, 자기가 첩이 있는데, 첩을 계속 데리고 살아도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자기는 기생집을 드나들면서, 노는데, 그렇게 해도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당연히 안 된다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시고 부부가 되어 한 몸이 되게 하셨는데, 이에서 벗어난 것은 간음이요 큰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노름을 하는데, 참 재미있는 오락이라면서, 예수 믿어도 노름을 해도 되는 지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펄쩍 뛰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도박도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양반이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사냐면서, 그럼 나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떠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즐거움과 행복이 바뀝니다. 그래서, 선한 것, 정의와 공의를 기뻐합니다. 가정을 기뻐하고, 자녀들을 기뻐합니다. 가정이 점점 커져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가족이 됩니다. 참 놀라운 것이, 일면식도 없는데, 주님의 일을 한다고 가끔 헌금을 해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2절에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 때문인지 살펴 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와 재산과 명예를 주셨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7)


 먼저, 우리의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는 것처럼, 우리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을 주어도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거기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그것을 ‘먹는 것’으로 은유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고,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누리겠습니까? 내가 가진 것을 남이 가진 것을 보면, 그것이 배가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오직 유일한 것을 나만이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아담때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다 관리하면서 통치하게 하셨는데, 그러면, 자기 직분에 감사하고, 늘 기뻐하면서 살아야 함에도 무엇을 더 원했습니까? ‘하나님’이 되는 것을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사람을 창조했는데, 끝까지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이것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도, 솔로몬 때에 부귀가 넘쳐서, 은은 돌같이 여길 정도로 그렇게 나라가 강성하고 부유했으면 되었지, 거기서 더 갖겠다고 우상과 다른 신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우습게 여기고 주변 나라의 모든 공주들을 자기 아내로 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만족을 모르는 식탐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을 더 가지려고 하고, 무엇이 되려고 하고, 지금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죄’이고 ‘악’입니다. 만족을 모르는 것이 하나님 때문이 아니고 전적으로 우리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지 못함을 보고, 다른 이들이 그것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녀, 아내, 집, 가족 등 많은 것들을 주셨음에도 다른 집에 없는 것 때문에 기뻐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가족 간에 불화하고 싸우고 이혼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만 년, 역사에 이렇게 많은 것을 누리고 잘 먹고 잘 산 적이 있습니까? 해외에 여행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사람들이라고 하던데, 이쯤 되면,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남보다 내가 더 잘 살아야 하고 더 누려야 하고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빚의 노예’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나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유하게 하셨는데, 아직도 우상에 매여 있는 사람, 다른 나라에 목을 매는 사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감사하면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조상 덕분이요, 부모를 잘 만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열심히 일하고 살면,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항상 다른 사람을 핑계대고,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 하고 핑계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 땅이 완벽하게 정의롭고 공의로운 사회는 아닙니다.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그 어느 시대보다, 어느 나라보다 자유가 많고, 우리 조상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잘 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치가 좀 문제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정치인들을 믿고 거기에 목 매여서 살아야 합니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너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이 불의한 것을 알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법을 실천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누릴 수 있습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행할 줄을 아는 가난한 자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는가” (8)


  여기 지혜자는 인생들이 볼 때, 모든 것을 가졌고 누린다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보면, 대단한 사람이 있고 못난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도토리 키재기에요. 다 죄인이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만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으로 공상하는 것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9)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원하는 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나도 100억즘 있는 부자였으면 좋겠다. 꼬마 빌딩에서 매달 2~3천 만원씩 월세를 받으면, 매일 놀고 먹고, 여행다니고 할 텐데…’ 한다고 합시다. 그런 생각만 품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재벌도 존재하고,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것도 헛된 것입니다.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이미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의 이름이 이미 불린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10)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그 부자의 것을 빼앗으려고 칼을 들고 위협해서 뺏을 수 있습니까? 우리 나라가 미국을 참 부러워하지요. 미국의 그 큰 군대와 항공모함 같은 것들. 큰 땅덩이. 달러를 마구마구 찍어내도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미국과 전쟁을 해서 그 모든 것들을 다 빼앗을 수 있습니까? 국제 질서를 보세요. 지금 중국이 미국이 하는 것들을 빼앗고 싶어서 계속 항공모함도 만들고 군대도 늘리고, 무기도 계속 찍어내고 있습니다. 핵무기도 계속해서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치고 패권을 차지하고 싶지요.


 그냥 되겠습니까? 지금 무역 갈등이 왜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눈치보면서, 어디에 줄 설지 왔다갔다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민주당은 중국편, 국민의 힘은 미국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골에 있는 목사도 뻔히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라고 못 볼까요? 다 알지만 미국이 그냥 쉽게 내어 줄리도 없습니다. 


 “자기보다 강한 자와는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아담 때부터, 하나님과 다투어서 그 지위를 얻으려고 한 것이지요. 마귀, 사탄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11)


 우리가 별 짓을 다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달란트도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우리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목을 맬 필요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일과 사람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12)


 세상 사람들의 ‘낙’이란 것이 별 것 없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요즘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 휴대폰에 빠져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그것만 보고 있으면 즐겁다고 합니다. 요즘은 밖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마다 즐거움이 다른데, 여기까지가 구약과 이 전도자의 한계입니다. 해 아래에 일어날 일들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시고, 미래를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를 믿는 자들은 이 땅의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안에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누리며,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을 주신 것을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바라보며,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이 땅에 것만 쌓다가 다른 이방인들, 외국인들에게 빼앗기지 말고, 땅의 것도 형제자매와 나누며 누리며, 함께 즐기며 기뻐하고, 서로 돕고 웃는 우리 하나님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를 주님과 함께 보낼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하며 간구합니다. 세상의 악한 일에 빠지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고 행한다고 따라가지 않게 하시고, 우리들은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걷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기준으로 살게 마시고,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바라보며,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이 변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를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아름다운 형제, 자매와 함께 사랑하며 교제하고, 의의 길을 걷는 것을 기뻐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변화되는 아름다운 공동체와 줄로 재어 주신 우리의 구역을 섬기며 기뻐하고 함께 나누며, 사랑하며 살게 도와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과 말씀으로 사귀며, 기도로써 소통하며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행복한 날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우리의 기쁨이 되는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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