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0장 겸손과 성실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1) 

  값비싼 향수, 냄새가 아주 좋더라도 거기에 파리 한 마리가 빠져 죽으면 그 향수를 쓸 수 있습니까? 그런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 하나 때문에 지혜로 얻은 영광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후임자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교회가 시험에 들고 어려워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평생 목회를 잘 하고, 교회를 성장시켰는데, 어느 목사님은 자기가 데리고 있던 부목사를 후임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오래지 않아서 여러 개의 교회로 쪼개지고, 그 은퇴하신 목사님도 원로로서 받을 예우도 받지 못하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온 교회를 움켜 쥐고 수많은 교회를 거느렸던 교회가 담임목사님이 새로 바뀐 후에 각 지교가 독립하도록 해서 곳곳의 지역교회가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연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더 잘 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 (2)

 지혜와 어리석음의 그 간격은 엄청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말씀하셨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고, 설사 방해할지라도 하나님은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매한 자는 길을 갈 때에도 지혜가 부족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가 우매함을 말하느니라.” (3)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입만 열면, 어리석음을 드러낸다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쓸데없이 재잘거리는 말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우리 동양적인 사고는 ‘침묵’이 미덕이고, 서양은 의견을 드러내는 것이 미덕인데, 우리 성도들은 지식과 지혜를 쌓고, 하나님을 범사에 경외하고 인정하는 언사를 해야 하겠습니다.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손함이 큰 허물을 용서 받게 하느니라.” (4)

 번역이 약간 이상하게 되어 있는데, ‘임금’이 네게 화가 나 있을 때, 급하게 모면하려고 하면 안 되고, 침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가 시작되지 전에 ‘궁예’라고 하는 자가 후고구려를 세워서 한반도 땅의 약 1/3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런 자가 무슨 관심법(觀心法)-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니 하면서 자기 신하들을 마구 숙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왕건도 그 곁에 있다가 궁예가 왕건이 반역을 꾸미고 있다고 관심법으로 다 그 속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을 때, 왕건이 다른 신하들처럼 극구 부인하다기보다는 죽을 죄를 지었다면서 궁예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습니다. 

 왕건이 그렇게 함으로써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왕건이 궁예를 죽일 마음이 없었어도, 그 때는 그렇게 처신을 함으로써 궁예가 신의 능력이 있다고 선전하는 꼴이 되어서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상에는 왕이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은 항상 겸손하게 언행을 해야 합니다. 죄를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할 길을 얻지만, 세상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면서, 만왕의 왕 앞에 교만하고 무례히 행하다가는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재난을 보았노니 곧 주권자에게서 나오는 허물이라.” (5) 

 이 땅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완벽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다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전혀 실수하지 않고 허물이 없는 분은 하나님과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거부를 하니까 하나님도 손을 놓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너무 악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간간히 개입하시기도 하지만, 대개는 인간들이 원하지 않아서 놔 두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신다’고 쉽게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다 주관하시면, 그 결과의 책임을 하나님이 다 지셔야 합니다. 인간들이 잘못해 놓고 왜 하나님께 뒤집어 씌울 생각만 합니까? 대통령을 누가 뽑았습니까? 국민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것도 아닌데, 책임을 하나님이 지라고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고통도 우리가 감내해야 합니다.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6)

 세상 권력자들이 그 지위에 알맞은 사람을 관리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잘 할 사람, 뇌물을 받치고, 아부를 떨면서 자기들에게 잘할 사람을 관리로 세우니까, 오히려 실력있고, 인품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 관리들 밑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꼭 공직사회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정치, 문화, 종교, 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그렇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챤이라고 해서 높은 자리에 앉히면, 그 사람도 이상하게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반되게 ‘사람들의 인기와 눈치’를 살핍니다.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7)

 이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한 아버지와 아들이 나귀를 하나를 끌고, 시장에 갑니다.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아들이 나귀를 끌고 가니까, 동네 여인들이 수군거립니다. 

 “에고, 아들이 고생하네…. 아버지가 나귀를 끌고 아들을 나귀에 태워야지… 쯧쯧.” 

 하니까,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나귀에서 내리고 아들을 태웁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데, 이번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아들을 나무랍니다. 

 “위아래도 없는 자식이네… 아버지를 나귀에 태우고 어린 아들이 나귀를 끌어야지…”

 이렇게 해서 아버지도 아들도 나귀에 타지 못하고 그냥 다 걸어가니까 딴 동네 사람들은 

 “나귀는 뭐하러 끌고 가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흉을 보더랍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귀에 아버지와 아들이 다 타고 가니까, 또 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에구~ 저 나귀 주인 잘못만나서 고생하네… 얼마나 무거울꼬…” 

 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완전할 수 없고, 불의하고 불합리적인 곳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그런 세상일 수록, 우리 성도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바라며,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함정을 파는 자는 거기에 빠질 것이요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리라.” (8)

 ‘제 꾀에 제가 속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씀이지요. 우리는 언제나 다른 이에 대해서 ‘선의’를 품어야지 악한 일을 꾸미면 안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해(害)가 되기 때문입니다. 담을 좋은 뜻으로 해석하면, 서로 소통하고 교통하기 위해서 마음을 여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면서, 마음을 열어야 하겠지만, 모두에게 마음을 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해야 하겠지만, 이단(異端)과 소통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노리는 적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생각에도 어느 정도 자신을 보호하는 담이 필요합니다. 컴퓨터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고 인터넷에 연결을 하지만, 컴퓨터 안에 보안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어야 해킹(hacking)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듯이 말입니다. 

 “돌들을 떠내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상할 것이요 나무들을 쪼개는 자는 그로 말미암아 위험을 당하리라.” (9) 

 광산업자들은 항상 돌에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벌목하는 사람들도 나무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익을 취하고 얻는 곳이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철 연장이 무디어졌는데도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10) 

 이 9-10절은 어느 분야나 직업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이런 비유를 들까요? ‘지혜’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성취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주술을 베풀기 전에 뱀에게 물렸으면 술객은 소용이 없느니라.” (11)

 쉽게 말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과 같습니다. 어떤 결론에 이르기 전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려면, 미리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기 전에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지혜란 다른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말씀과 기도로 자라는 것 참 중요합니다. 큰 복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보호받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2-13)

 평탄한 인생길은 주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말을 따라가다가는 인생을 망칠 뿐만 아니라, 그 끝은 지옥에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것만큼 큰 복은 없는 것입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14)

 우리는 내일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항상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말을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늘 기도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아뢸 것이 많은 기도를 드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루의 일과 속에서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묻고 듣는 개인기도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15)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는 것은 결국에는 다 없어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여기 성읍은 ‘하나님의 성’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갈 줄도 모릅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자녀됨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자녀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어야 합니다.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6-17)

 사치하고 향락을 즐기는 문화 속에서는 결국 망하고 가난해 질 뿐입니다. 반면에 17절 에서 보면, 귀족 중에서 왕이 된다는 것은 누구라도 나라를 다스릴 만큼 실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나라가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역사를 보아도 로마가 공화정 시기에 계속 발전을 이루었지, 황제 제도가 생기면서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절제가 있고, 규모와 법도가 있는 나라가 올바르게 섭니다. 세상 법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법이 잘 세워지고 그 법대로 통치했던 나라가 오래갑니다. 우리 나라가 점점 서민의 자식들에게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법고시 제도가 있어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실력만 있다면 법관이 되고, 변호사가 되는 길이 있었는데, 이제는 법학대학원을 나와야 하기에 집 안에 재력이 없으면 법조계에 들어서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계층의 사람들은 이미 서로 혈연관계나 인맥으로 얽혀 있어서 특정한 가문이나 배경이 없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 낄 수 없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경제분야에서 재벌들이 손을 안 댄 곳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자수성가 해서 부자가 되기는 거의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런 사회는 사실 발전이 없습니다. 실력있는 사람들이 혁신을 일으켜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그것이 사회발전에 이바지 해야 하는데, 상류층으로 갈 수록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 정신은 없고,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없도록 누르고, 빼앗고 착취하면 사회는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혁신이 없이 10년 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지금 선진국에 올라왔더라도, 3류 국가로 도태될 수 있습니다.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8) 

 부지런하게 지식과 지혜를 쌓고,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한 개인도 그렇고, 민족이나 사회,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하는 문화가 꽃을 피워야지 놀고 즐기거 먹고 싸는 문화가 발전하면, 결국에는 그런 사회는 점점 쇠퇴하게 됩니다. 물론, 열심히 일한 후에 여가를 즐기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은 성실하고 부지런히 하고 그 다음에 즐기라는 것입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19)

 유대인들의 경제 관념은 참 대단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다음으로 ‘돈’을 의지할 정도로 돈을 잘 관리하고 잘 모으고, 잘 법니다. 잔치도 돈이 필요합니다. 즐기는 것도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잘 놀고 잘 즐기기 위해서라도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 가지를 덧붙여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돈’을 잘 벌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돌들이 유대인들보다 돈을 버는 것에 있어서 뛰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유대인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들은 놀로 즐기는데 쓰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데, 요긴하게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 나라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을 배반하여 일어났던, 비그리의 아들 세바 사람이 온 이스라엘 백성을 선동해서 세력을 얻었는데, 그 본거지를 아벨이라는 성으로 삼았습니다. 군대장관 요압이 군사들을 이끌고 그 아벨 성을 에워싸고 치려고 합니다. 그 때, 한 지혜로운 여성이 이 ‘세바’를 내어 주고, 그 성 사람들을 안전하게 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이 누구인지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고, 사람들도 세월이 흘러서 잊게 되었습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20)

 우리가 대통령 욕을 예사로 하는데, 이것이 습관이 되면, 하나님도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뽑은 지도자니까, 되도록이면 욕하지 말고, 잘못된 것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자를 욕한다고 해서, 그들의 가진 ‘부’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것조차 빼앗길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그들의 부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겸손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우리가 권면할 것은 권면하고, 바른 행실과 친절로써 누구에게든지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성도로서 살아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리를 통해서 퍼져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한 마리 파리가 향수를 악취나게 함 같이 우리가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지 않게 하옵소서! 

 이 땅에는 불의한 일과 불합리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냥,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행실로 하나님께나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한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지혜로운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항상 함께 계셔서, 우리를 지도하시고, 세상의 말을 듣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이 땅에 원망과 불평이 넘치지만, 우리는 늘 주님의 은혜만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쁨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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