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1장 구제, 봉사 그리고 리스크(Risk)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1) 


  어느 성도가 전도서 11장 1절 말씀을 읽고, 떡을 가지고 호수에 가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수많은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그 떡을 먹어치웠다고 합니다. 그 성도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시 떡을 얻게 될 지 기다렸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 다음 구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2) 


 호수에 일곱 내지 여덟 마리의 물고기에게 떡을 나누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구제’를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윤리, 도덕적으로 선한 일 가운데 하나는 ‘구제’입니다. 오늘날에는 우리 개인이 직접적으로 기부를 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구제기관을 통해서 하고 우리들은 재정적인 후원을 하지요. 


 당시에는 그런 기관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넘쳐났습니다. 오늘날에는 국가가 이런 사람들에게 집도 제공하고, 먹을 것도 주고, 심지어 취업 교육과 알선을 합니다. 일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토지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땅을 가진 사람이 농사나 목축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 땅이 없는 사람들은 굶어 죽는 일이 많거나, 아니면 땅을 가진 사람의 품꾼이 되거나 농노가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먹고 살면서 여유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구제’를 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땅을 가진 소수만 살아 남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 버리면, 그 사회와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수의 사람만이 땅을 차지하고 있다면, 외부에서 강한 군대가 침략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동체가 있는 사회는 그에 맞설 힘이 있겠지만, 전부 병약하고 나약하고 굶주린 사람만 있으면, 땅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기꺼이 싸워 주겠습니까? 


 그래서 내 주위에 공동체가 함께 어려운 일을 극복해 가야 합니다. 내게 있는 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생각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내게 모든 재물이 쌓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여유가 있으면 기부를 많이 하는 것이 사회가 건전해 지고 발전합니다. 기부하고 나누면, 부자들이 존경을 받고, 자신이 쌓은 재물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3)


 구름이 가득하면, 곧 비가 내리겠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물론 어떤 구름은 수증기를 많이 품고 있지 않아서 그냥 구름만 많은 경우도 있지만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구름들이 계속해서 커지지만 하지 않고 곧 땅에 비를 내리듯이, 많이 가진 재물이 계속 쌓을 수 만은 없습니다. 곧 땅에 떨어지고 흩어지게 되듯이 물질도 쌓다가 갑자기 빠져나갈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고, 개인도 그렇습니다. 어떤 나라에 금은 보화가 많은 것을 알면, 그 나라의 보물들을 빼앗기 위해서 노리는 또 다른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 이상의 금은 보화를 쌓지 말도록 율법에서도 교훈합니다(신 17:17).

 

 ‘나무’는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비유한 것인데,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 보면, 항상 남쪽에는 이집트가 위협이 되었습니다. 북쪽에는 아람 나라라든지, 앗시리아나 바벨론이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변에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남쪽 유다왕국이 멸망한 후로, 이스라엘이나 유대 나라가 독립국가로 홀로 서기를 하기까지는 수 백년, 그리고 로마 제국 이후로는 약 2000년의 세월(현대 이스라엘은 1948. 5. 14에 독립을 선언함)이 흘렀습니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4)


 농사를 짓는 사람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씨를 뿌리기 어렵습니다. 우리 나라는 비교적 음력 날짜에 따라서 농사를 지으면 거의 틀림이 없지만, 팔레스타인 땅은 매우 건조하고 비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땅을 갈기도 어렵고 그에 맞춰서 씨를 뿌리기도 어렵습니다. 고대 팔레스타인 땅은 비가 내릴 때, 급하게 씨를 뿌리고 또 땅을 갋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씨를 뿌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가 오지 않아도 너무 늦기 전에 땅이 딱딱해도 갈아야 하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잘 못하다가는 영영 씨를 뿌리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씨를 뿌려서 곡식이 자랐습니다.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냥 계속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추수도 못하면 안 되겠지요? 추수 시기에 해가 쨍쨍해야 잘 건조되어서 거둘텐데, 계속 비가 온다고 내버려두면 그것도 곡식이 썩게 되어 추수를 못하게 됩니다. 계속 비가 오면, 더 늦기 전에 곡식을 베어 추수를 하고 집안에서라도 곡식을 말려야 하지요. 상황이 좋지 못하더라도 시기에 맞추어서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5) 


 비단 농사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결혼해서 자녀를 출생하지 않습니까? 그 아이가 어떻게 엄마 뱃속에서 자랍니까? 그냥 엄마가 밥을 먹는데, 그 영양분이 태아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지금이야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 초음파니 뭐니 하면서 이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지 관찰하려고 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이 어디있습니까? 그냥 태아는 잘 자라서 여기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아기로 태어나고 잘 자라지 않았습니까?


 돌아보면,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먹고 싸고 즐긴 것 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생명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땅에 곡식도 자라게 하시고, 적당한 비와 적당한 햇빛을 내려 주십니다.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이라, 하나님 앞에 감사함도 없고, 경외함도 없지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깨우칩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6)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은 할 일이 없느냐?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그림을 그리시면, 그 안에서 성실하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은 우리가 하는 노력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똑같이 농사를 지어도 어떤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거둬들이지만, 어떤 게으른 농사꾼은 겨우 먹고 살만큼만 거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비유에서 어떤 것은 30배, 어떤 것은 60배, 어떤 것은 100배의 결실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째든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잘 되고 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여러 가지 제반 환경을 마련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성실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스라엘 랍비들을 국비로 초청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랍비들이 우리 나라를 다 둘러 보면서,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이렇게 못 사는 것도 기적이다!” 


 그 뒤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이 부지런히 집과 마을을 가꾸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상을 주고, 혜택을 주니까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무렵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요. 산에는 나무를 심고, 논과 밭은 토지 구획을 잘 하고, 시골 마을마다 저수지를 만들고 우물을 파고 논밭에 물을 잘 공급하도록 했습니다. 또, 산과 산 사이에 골짜기를 잘 조사해서 큰 댐을 만들고,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 공업과 농업이 발전하게 만들었습니다. 


 1950년대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영토는 똑같지만, 그 때와 지금은 20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한 50년 만에 200배나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환경을 감사함으로 받고, 열심히 땀을 흘린 덕분입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고생과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해야 할 차례입니다. 이만큼 발전시켜서  나라를 물려 주셨는데,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때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 속에서 우리가 사는데…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6-7)


 ‘빛’은 밝은 날을 말합니다. 즐겁고 행복하고 잘 나갈 때, 늘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부모님께, 어른들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려운 시절과 고통스러운 나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것보다는 늘 감사한 것을 기억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유투브를 보다가 본 기사입니다. 한 가난한 청년이 20대 초반에 노가다를 해서 겨우 생계를 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어른이 제안을 합니다.  


 “젊은 사람이 기술을 배워야지, 이렇게 몸만 축내면 되겠나? 너 나 따라다니면서 기술을 배워라.” 


 하더랍니다. 숙식도 제공해 주고 기술도 가르쳐 준다기에 알겠다고 하면서 그 사장님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얼마나 호되게 야단을 치면서 일을 시키는지, 하루는 ‘그냥 여기서 나가 버릴까’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꾹 참고 1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사장님이 그 청년을 불러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기 일이란 게 한 순간의 실수로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너를 매우 호되게 야단치면서 기술을 가르쳤다. 나는 이제 사업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네게 맡기려고 한다.”


 그렇게 그 사장은 자기 사업을 그 사람에게 넘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30대 초반에 전기시설 설비를 설치 관리하는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억대 연봉을 받는 나름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기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9-10)


 우리에게 힘과 젊음, 그리고 건강한 몸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요절한다고 하지요. 그런 부류에 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감사해야 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젊을 때 도적질 말고는 다 해보라고 충고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유가 있고, 건강이 있고 시간이 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죄와 악으로 규정된 것은 피해야 합니다. 자칫 하다가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이 헛된 것으로 낭비되고 쓸모없게 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면, 지금은 별볼일 없는데, 한 때, 왕년에는 잘 나갔다면서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 속에 사는 사람들을 봅니다. 한 때 인기가 많았고 자기를 좋아한다고 쫓아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면서, 아쉬워 하는 그런 여성도 있습니다. 좋은 남자 못 만나고 너무 쉽게 거절하고 거부했던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후회가 가득하더라도, 우리 성도들 만큼은 인생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는 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를 참 잘 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 제일 잘한 일이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전도서를 통해서 우리의 인생 길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인색하게 내 욕심만을 차렸다면 용서하여 주시고 이후로는 주님 나라와 이웃을 위해서 손을 펼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마냥 놀리고 있지 않은 지 또 살펴 봅니다. 최선을 다해서 개발하고 사용케 하셔서, 자신과 이웃, 가정과 사회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복을 받고 누리게 하시고, 우리도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도움의 손길을 얻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것들을 보며, 기뻐합니다.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꽃과 나무, 오곡이 풍성하게 자라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선한 사역에 동참하여서 생명 살리기에 앞장서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주님의 백성이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평가받을 때, 주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을 받는 보람된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항상 따르기 원하옵고,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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