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은 막강한 권세와 힘을 가지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이 사무엘이 있는 라마 나욧으로 잠깐 몸을 피했는데, 계속 그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 군사들이 오고, 사울 왕도 다윗을 죽이겠다고 찾아오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자신을 변호해 주었던 요나단을 찾아 갑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1)
다윗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사울 왕에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사위인 자신을 죽이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탄이나 어둠의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 근간에는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있습니다. 남보다 뛰어난 재능이나, 소유나 물질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미워하는 사람이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정말 잘 알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너무 자랑을 하면 안 되고, 또 남에게 너무 칭송을 받아도 좋지 않습니다. 애매하게 미움을 받고 고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신실하면, 사탄도 우리를 넘어뜨릴 려고 합니다.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는 행하지 아니하나니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2)
요나단은 그럴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아무려면, 자기에게 말도 없이 아버지께서 다윗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만큼 요나단이 아버지를 믿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자신에게 어떤 말없이 무슨 계획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만약에 다윗을 죽이려고 명령을 내렸다면, 나에게 먼저 알렸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3)
다윗과 요나단이 매우 가까운 사이니까, 알리면 분명히 슬퍼하면서 사울을 말릴 줄 아니까 말하지 않고 은밀히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고 다윗은 반박하지요. 정말 자기가 죽는 줄 알았다고 다윗은 말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4)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말하면, 내가 다 행하겠다고 요나단이 말합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5-6)
몇 월인지 모르겠지만, 매월 1일마다 왕과 함께 신하들이 미팅을 가졌는가 봅니다. 그 때 다윗이 자리가 비어 있으면, 왕이 무슨 말을 꺼낼 텐데, 다윗이 이런 저런 이유로 자리에 불참해야겠다고 요나단에게 다윗의 근황을 알리고 그 모임에 빠져 있으면, 사울의 계획을 요나단이 듣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울이 별 말이 없으면, 다윗을 해할 마음이 없는 것이고, 다윗에 대해서 무슨 나쁜 명령을 내리면, 다윗의 말이 진실한 것을 믿어달라고 요나단에게 다윗이 말합니다.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7-8)
사울이 만약, 이런 저런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면 요나단이 들어보고 죽을 죄면, 사울 왕이 죽이기보다는 오히려 요나단 네가 나를 죽이라고 합니다. 사울 왕이 화가 단단히 나서 말하기 때문에 요나단이 들어보고 그리 큰 잘못이 아닌 데, 이렇게 자신을 찾으면 다윗을 죽이려고 사울 왕이 마음 먹은 줄을 깨달으라는 것이지요.
“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 (9-10)
요나단은 다윗도 믿습니다. 이제까지 다윗이 무슨 잘못이나 죄를 지은 것이 없으니까, 만약 사울이 해치려고 하면, 바로 알려 주겠다고 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 마음을 가졌다고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 다윗에게 소식을 전해 줄 것인지 다윗이 또 묻지요.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11)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의 생각과 진심을 떠봐서 정말로 다윗을 해하려고 하는 건지 확실히 알게 되면 그것을 다윗에게 알게 해서 다윗이 피난을 가게 할 계획을 서로 세웁니다.
그전에, 먼저 요나단과 다윗이 언약을 맺는데, 처음에 만나서 의형제를 맺은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요나단의 아버지와 다윗이 원수가 되면, 다음에 만날 때는 다윗과 요나단이 적으로 원수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친이 다윗을 죽이려 할지라도 요나단만큼은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더 나아가 설사 자기 아버지 사울이라도 다윗을 죽이는 원수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손봐줄 것을 기도합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요나단이 가문을 배반하는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죽지않고 앞으로 살아서 하나님께서 승승장구하게 만들 때에, 다윗이 최소한 요나단을 배신하지 않고, 요나단의 자손과 후손들은 해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2-16)
사울 왕이 어찌 하든지 다윗과 요나단 사이에는 서로 해치거나 하지 아니하기로 굳게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다윗의 대적이 다 없어질 때까지 다윗이 그 대적을 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17)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울의 생각을 다윗에게 전달하는지, 그 자세한 계획을 설명합니다. 요나단이 앞에서는 사람을 통해서 알게 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편지나 밀서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활을 쏘고 그 화살을 찾으려서 보내는 심부름꾼에게 큰 소리로 ‘화살이 이쪽에 있으니까 가져와라’ 하면 다윗이 알아 듣고 안전하니까 돌아오고, 그렇지 않고 ‘화살이 네 앞에 있다.’ 라고 소리치면, 다윗의 말대로 사울이 죽이려고 하니까 피난하라는 의미인 것으로 알게 합니다.
화살을 찾아오는 종은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의미를 아는 것이지요. 꼭 암호같이 합니다. 어떤 의미를 알도록 허락된 사람들은 알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못채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성경도 그렇습니다. 구원받게 택한 사람들만 알고 이해가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성경책이 온 세상 언어도 번역되어서 누구나 다 보고 읽을 수 있지만, 이 성경의 약속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이렇게 말을 맞추고, 시간이 흘러 다음날 요나단과 군대장관 아브넬과 사울 왕이 함께 초하루 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국무회의 같은 것이지요.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이튿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25-29)
사울 왕이 다윗을 찾습니다. 며칠 전에는 자객을 보내서 죽이라 하더니, 이제는 왜 회의에 참석을 하지 않는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윗이 자기를 피하여 도망했을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조차 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0-31)
왕이라는 사람이 참 말을 천박하게 합니다. 자기 아들이자 왕자요, 앞으로 왕이 될 사람에게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합니다. 자기 아내를 경멸적으로 부르지요? 그리고 다윗을 택한 것이 요나단이 한 것처럼 말을 하는데, 아마도 다윗을 사위로 삼은 것과 천부장으로 삼을 때에 요나단이 어떤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을 욕하면서 다윗을 죽이려는 이유가 요나단, 네 나라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나라나 민족을 어떤 개인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왕이 타락한 것이지요. 나라와 민족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무리 지도자이며, 왕이라고 해도 자기 분수를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울이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 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32-34)
요나단은 다윗이 죽을 만한 죄가 있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단지 사울과 요나단이 권력을 유지하고 왕권을 지키려는 것 뿐입니다. 요나단은 이런 이유로는 다윗을 죽일 수 없지요. 그리고 다윗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역사를 보면, 권력을 갖거나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혹은 경쟁자를 죽이거나 제거하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봅니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서도 계속해서 쿠테타가 있지 않았습니까? 박정희 정권도 그랬고, 전두환 정권에서도 그랬습니다. 다 말할 수 없지만, 그 시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한 분들이 많았는지. 우리가 잘 모르니까 이 권력의 세계의 추악함을 모르고 지도자들을 칭송하고 높이는 것이지, 알면 그렇게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요나단이 다윗과 아버지 사이에서 어떻게 아버지 마음을 돌이켜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내가 쏘는 화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화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아이가 요나단이 쏜 화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이르되 화살이 네 앞쪽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35-39)
요나단이 활쏘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하고 다윗이 숨은 들판 근처에 화살을 쏩니다. 그리고는 화살을 찾으라고 한 아이를 보내지요. 그리고 ‘화살이 네 앞에 있으니 빨리 가서 찾아와라.’ 합니다. 이 말이 화살을 찾으러 간 아이에게 한 말 같지만, 사실은 다윗에게 ‘살고 싶으면 빨리 도망쳐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요나단이 그의 무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읍으로 가라 하니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39-42)
결국, 사울 왕의 의중을 알아냅니다. 요나단이 진실하게 다윗을 해칠 마음이 없고 자기 아버지 뜻을 반대하고, 다윗을 살려 보내려고 하는 진심을 다윗이 알았습니다. 다윗이 세 번 절하고 함께 크게 울었습니다.
다윗도 마음이 아프지만, 요나단도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던 다윗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그런 처지를 두고 요나단도 다윗도 많이 슬퍼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그 길로 다윗은 도망자의 처지로 최소 10년 이상을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잡으려고 수색대를 일천 명을 풀어서 샅샅이 뒤집니다.
그런데 이후의 성경을 주욱 읽어보면, 사울이 보낸 군대도, 사울 왕도 직접 다윗을 수색하러 나오는데, 다윗의 눈에는 항상 사울도 보이고 그 군대도 보입니다. 그런데 사울 눈에는 절대로 다윗이 안 보입니다. 아무리 10년을 찾아도 안 보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21장 이후로 계속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택한 다윗이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다윗의 걸어가는 길에 이렇게 험로가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성경으로 기록하셔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다윗이라 할지라도 미움과 시기를 받으며, 인간의 정욕에 끌리고 미혹되어 고난과 고통의 삶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권력욕으로 겸손과 순수함이 사라지고 변질된 사울 왕의 모습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끼어 있는 요나단의 그 신실함과 정직함을 우리가 또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역사 이야기 가운데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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