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1장 다윗의 도피생활

 

<다윗의 도피여정>


 사무엘상 21장부터는 다윗의 도피생활 혹은 망명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극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왕실과 가까이 있다가는 죽을 것이 뻔하지요. 그래서, 앞장에는 사무엘을 찾아가기도 했다가 요나단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사무엘은 아주 신실한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제사장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라마에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아무리 신령해도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아끼는 요나단 곁에도 가 보지만, 요나단과도 헤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은 의지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까운 사이이고, 서로 사랑하고 목숨처럼 여겨도 역시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합니다.그렇다면 결론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은 역시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이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다윗이 도피생활을 하는데, 놉이라는 곳에 갑니다. 그 지명이 놉인데, 그곳은 베냐민지파와 유다지파의 경계에 있습니다. 그런 성읍, 우리로 말하면 도시인데 그곳에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1-2)

 ‘아히멜렉’ 이름의 뜻은 ‘왕의 형제’입니다.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지만, 왕의 가문과 아주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가니까 아히멜렉이 깜짝 놀랄 뿐 아니라 떨며, 두려워하면서 다윗을 영접합니다. 

 “어째서 당신이 홀로 있습니까? 수행원은 어찌하고?”

 저나 여러분은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다녀도 아무 일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유명한 사람은 보디가드가 있어야 되지요. 수행원이나 경호원이 함께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다윗처럼 유명한 사람이 혼자 다니다가 어느 자객에게, 킬러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혼자 못 다니지요? 적어도 대통령이나 왕이 자전거 타고 마트에 장보러 갈 정도는 되어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선진국이 되면, 왕이 누군지 모르고 대통령 이름을  모를 정도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 잘 하는 것입니다.

 안경이 내 눈에 딱 맞으면, 꼭 안경을 안 쓴 것 같지요? 정치를 잘하면 정치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호원이 따라 다닌다는 것은 정치가 아주 저급한 것입니다. 아직도 폭력정치, 압력에 의한 정치를 하니까 늘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고 안정이 안 되었다는 방증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정치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녀도 아무 일도 없고 누군지도 모릅니다. 또 국민들이 관심도 없습니다. 이 정도 되어야 정치를 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되려면 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다윗은 당대 최고의 스타입니다. “사울왕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할 정도로 여성들도 아이들도 모두 다윗을 칭송합니다. 그런 다윗인데, 수행원도 없이 경호원도 없이 혼자 다닙니까?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왕의 비밀스런 임무를 맡아서 그렇고, 이제 곧 자기 수행원들과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거짓말로 둘러 댑니다. 다윗이 악의를 가지고 이런 말은 한 것은 아니지요. 이런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성경에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살리려고 한 거짓말이나, 모세가 이집트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 길즘 떠나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한 것이나,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기가 도피 중인 것을 밝히지 않고 이런 거짓말은 한 것은 자기가 살라고 한 악의가 없는 말이었지만, 결과는 아히멜렉 대제사장과 그의 제사장 아들들이 거의 몰살당하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이란 것이 참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3-4)

 다윗이 급하게 도망을 나왔기에 식량이라든지 돈이라든지 무기라든지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매우 배고프고 지친 가운데,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렸던 진설병-누룩없는 빵이 있다고 합니다. 단, 하나님께 드렸던 것은 성물이기 때문에 원래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피곤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니까,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줄 수 있는데, 몸이 성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율법에는 하나님께 드린 성물은 제사장과 그 가족만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제사장의 딸이라도 시집을 다른 일반 사람에게 가면은 못 먹습니다. 이혼당해서 다시 아버지 집에 왔다고 하면 또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에는 까다로운 음식규정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외에는 못 먹는 음식인데, 다윗은 레위인도 아니고 제사장 가족도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이 떡을 달라고 했고 제사장도 줬습니다.

 아히멜렉이 그 떡을 줘서 다윗이 먹었습니다. 이 문제를 훗날,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시장할 때, 제사장외에 먹지 못하는 떡, 진설병을 먹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시며, 안식일에 베드로와 제자들이 밀을 비벼서 먹은 것을 변호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할 때, 못 먹어서 생명을 잃게 되기 전에 우선 먹여서 생명을 살려야 하는 것이 율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굶어서 죽을 판 되면, 우리 나라에서는  뱀이라도 잡아먹고 살아야 됩니다. 특전사나 공수부대에 가면 그런 훈련한다 합니다. “어디서 어디까지 가라 가서 모여라” 하는데, 아무것도 안주고 대검과 나침반 달린 시계 하나만 준답니다. 산속에 떨어뜨려 놓으면, 훔쳐 먹든지 얻어먹든지 하다 안 되면, 개구리, 뱀 할 거 없이 있는 데로 다 잡아먹고 목적지까지 모이는 그런 훈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형식법보다 ‘생명’이 우선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그렇습니다. 융통성 아주 없는 그런 법이 아니라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될 때는 어떤 격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생명이 우선입니다. 언제나 대원칙이 ‘생명’이 우선이고 형식은 차선입니다. 또 신약에 ‘술을 마시지 말라’ 했지만,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네 자주 나는 병(위장병)을 인하여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를 써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법’, ‘규칙’을 지켜야 하지만, 생명이 걸렸을 때는 생명이 법보다 중요합니다. 법 위에 사람이 있는 것이고 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법정신을 법조인들부터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항상 사람이 법보다 더 우선입니다. 그 정도로 우리 국민의식이 깨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5-6)

 다윗은 허기진 배를 채웠고, 얼마간의 양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그 모습을 사울 왕의 가축들을 담당하는 신하가 본 것입니다.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7)

 그 사람은 ‘도엑’이라는 사람인데, 여기에 언급된 것은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겠지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 주일에 보기로 하고, 다윗이 혹시 제사장에게 무슨 무기가 있는지 묻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8-9)

 다윗이 아히멜렉에게서 무엇을 받습니까? 예전에 자신이 골리앗을 죽이는 데 썼던 골리앗의 칼이 제사장에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왜 그 칼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참 신기한 것이 다윗이 도피생활을 하면서, 아무 것도 챙겨나오지 못했는데, 자기 몸을 지킬 무기하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골리앗을 죽였던 그 칼을 얻습니다. 이 모습을 또 도엑이 보았습니다. 

 다윗이 이번에는 자기가 무엇을 얻겠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첫번째 거짓말은 아히멜렉이 묻는 말에 대답하느라 둘러 대다가 거짓말을 했다면, 이번에는 다윗이 자신이 무엇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무기를 얻겠다고 거짓말을 통해서 얻은 것이 아히멜렉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성도 여러분, 속여서 취하지 마십시오. 자기를 위해서 속여서 취한 것이 남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다윗 자신은 자기를 방어할 무기를 하나 챙기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히멜렉과 그의 자손들에게는 큰 화가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어떤 강한 무기나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좋지 못하게 생각하십니다.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아히멜렉도 왜 그에게 골리앗의 칼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사울 왕에게 가져다 바쳤으면 자신에게 화가 되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앞으로 계속 성경을 읽어가면, 이런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0-11)

 다윗이 아마도 블레셋의 왕 앞까지 잡혀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 혼자 있었고, 다윗은 급하게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약간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고, 침을 질질 흘리며,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이런 위기의 순간에 기지(機智)를 발휘한 것이지요. 

 우리 나라 속담에 ‘호랑이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는 말이 있지요. 위기의 순간에도 살 기회가 있습니다. 다윗은 민첩하게 미친 사람 연기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까요? 미친 사람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다윗은 미친 사람도 본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일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평상시에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좋지만, 언제든지 위기는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훈련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심폐소생술 같은 것이요.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사람을 발견하면, 그 때 사용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가족이나 이웃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응급 구조대가 오기까지 시간을 벌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을 더 높이지 않습니까?

 앞으로 기후 위기가 닥쳐서, 어디서 어떤 일을 만날 지 모릅니다. 지진이나 재난에 대비하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제가 어려서는 항상 민방위 훈련을 해서, 전쟁 상황을 대비해서 여러 가지 대피 훈련을 했는데, 요즘은 그런 훈련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기에 아주 둔감해 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이런 저런 기회가 있을 때, 성실하게 훈련을 잘 해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선출하고 택할 때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덕목이 있겠지만,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도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다윗이 이런 생각을 했는지, 순간의 위기를 잘 극복해서 아기스 왕으로부터 사로잡혀서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서 나오게 되지요. 우리 성도들도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다윗이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적국으로 도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신분을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는다고 해서, 하나님 편에 있어야지, 사탄의 편에 돌아서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잊으면 안 됩니다. 다윗이 후에 또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게 되는데, 자기 민족과 싸우는 큰 죄를 범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과 교회를 배반하고 떠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사탄과 이단이 바로 그런 일을 조장(助長)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렵고 힘들어도, 이 땅이 잘되도록 해야지, 세금이나 다른 것 때문에 이 땅을 떠나고 버리면 옳지 않습니다. 유투브에 종종 세금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부자들이 세금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합니다. 상속세나 증여세가 우리는 매우 세율이 높고,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잘못된 법은 고쳐 나가도록 해야지, 세금 많이 내는 것이 아까워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회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도 배신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잘못된 법은 고치고,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옳고 바른 길로 사람들을 이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이 적국으로 몸을 피신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중에도 생을 포기하거나 자살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살겠다고 최선을 다합니다. 사실, 여기 본문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다윗은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가 얼마전까지도 세계 자살률 1등이었는데, 계속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어려울 때에도 쉽게 죽어버리겠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살려 달라” 하면서, 늘 기도하면서, 도피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다 잊어버려도 이것 한 가지는 기억해야 합니다. ‘살자!’ 다윗은 방법이 없어서 도피하지만,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기회는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 회복할 수 있고, 잃었던 것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영끌했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도, 사기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가족을 잃었거나, 신체의 일부가 잘 못되어서 장애를 가졌더라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이런 어려운 일을 겪어도 다윗이 지금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다윗을 시련을 통해서 연단시키고,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시 세울 계획 말입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요. 앞 길이 막막합니다. 그 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도움의 손길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블레셋의 아기스 왕으로부터 미친 채 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때, 쓴 시가 있습니다. 그 시를 읽고 마칩니다. 

 <제목: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이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또한, 적국에게 가서 위기를 피해 보겠다고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것도 봅니다. 그러나 그는 늘 하나님을 찾고,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들도, 어려움과 고난이 닥칠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이런 저런 무기들, 물질들, 심지어 먼 데까지 도망치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 때문에 여러 사람이 어려움을 만나고, 해를 당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들의 믿음과 승리함을 보고, 주님을 높이며,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오늘날에도 생명을 쉽게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쉽게 생명을 죽이며, 포기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주시고, 언제나 주님만 의지하며, 소망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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