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도피여정>
다윗이 선지자 갓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압의 요새에서 헤렛 수풀사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헤렛 수풀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기 어렵지만, 아마도 아둘람 근처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머물던 곳에 멀지 않은 ‘그일라’에 블레셋 사람들이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곡식을 타작할 때즘에 이 블레셋이 군사를 몰고 와서 싹 뺏어 갑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군대를 피해서 숨어 있으면서, 어떻게 블레셋과 전쟁을 할 생각을 합니까? 그런데, 다윗이 도저히 그냥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그일라 백성들을 지켜주어야 하고 빼앗겼던 곡식을 되찾아 와야 하는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당연히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해야 하는데, 지금 사울은 다윗을 찾느라 정신이 없고, 왕으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고 있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고, 공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지금 사울은 사사로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지금 나랏일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1)
사람들도 문제지요. 아니, 지금 다윗이 어떤 처지에 있는데, 그일라 백성들의 일을 다윗에게 말합니까? 사울 왕에게 찾아가야지. 그런데, 다윗은 이 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경 기자가 아무런 해석을 달지 않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의 목자는 ‘다윗’이라는 것이지요. 다윗은 자기 코가 석자지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지 여호와께 묻습니다. 마음은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다시 싸워서 빼앗겼던 노략물을 되찾아 오고 싶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나라 차원에서 밀어주고 있는 상황도 아니니까요.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2)
다윗은 자기가 전쟁을 좀 할 줄 알아도 하나님께 먼저 허락을 받습니다. 승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돕고 싶고, 그럴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기도하는 이 자세를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믿고 허락을 요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는 일에도 다윗은 기도로 여쭙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3)
이번에는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이 반대를 합니다. 다윗은 “내가 기도응답을 받았다” 하면서 막무가내로 자신을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기도응답을 받았듯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4)
또, 응답을 받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에 순순히 순종하여 따릅니다. 그러니까 다윗도 중요하지만, 다윗의 곁에 있는 사람들도 믿음이 중요합니다. 다윗만 믿음이 충만해서 혼자 나가서 싸울 수 없지 않습니까? 다윗이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이 충분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도록 기다려 주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마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가면서 믿음의 싸움을 독려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충만해서 혼자 나가서 다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주변에 함께 한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독려하고 믿음을 세워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일라로 나아 갔습니다. 자세히 기술되지는 않았지만,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그일라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요? 아둘람이나 헤렛 수풀이 무슨 과수원 지역이나 농사짓는 땅은 아니잖아요? 도망다니면서, 여기 저기 숨어 있다가 유다 백성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손을 벌렸을 텐데, 그 은혜를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의 용기와 지혜로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되찾아오고 오히려 블레셋 사람들에게 있던 것들을 빼앗아 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5)
사울은 정적을 죽이기에 혈안인데, 다윗은 이스라엘의 목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소문이 되어서 사람들이 겉으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다윗이 정말 왕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일라(Keilah)는 우리말로 ‘요새’라는 뜻입니다. 말은 요새인데, 블레셋에 털리는 것 보세요!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지켜 주는 분이 없으면 다 털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영혼도 그렇습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내주하셔서 우리 마음을 지키시지 않으면, 우리는 흔들리게 되고, 신앙과 믿음도 다 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6)
이 에봇이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에게는 참 중요한 물건입니다. 에봇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물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귀에 들린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제사장의 에봇의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묻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결정합니다. 다윗 편에는 에봇이 있으나, 사울 편에는 없는 것이 되겠지요? 아비아달이 에봇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다윗이 하나님 뜻을 물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7-8)
‘그일라’가 블레셋 편에서 보면, 요새일지 몰라도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도망갈 때도 없는 그런 곳입니다. 사울도 알고, 다윗도 압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일라는 구원했다는 소식보다는 사울은 다윗의 위치를 알아냈고, 다윗을 죽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이 제 정신이라면, 다윗이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땅히 다윗을 치하하고 어떤 죄가 있더라도 용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울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왕위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9-11)
사울이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정보를 들었듯이, 다윗도 사울이 그일라를 향해 출전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첩보전이지요. 우리 나라 땅에도 간첩들이 있습니다. 북한 간첩은 물론이거니와 중국의 간첩, 러시아의 첩보원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CIA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는 첩보원을 주변 나라에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다 보냈을 것입니다. 저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몰라야 되고요. 그 기밀을 알 수 있는 사람만 알도록 되어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2가지인데, 먼저는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내려오겠는지를 묻습니다. 나머지는 만약에 그일라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될 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자기를 넘겨 줄지 묻습니다.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2-13)
다윗이 목숨을 걸고 그일라 사람들을 위해서 블레셋과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일라를 구원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물어보니, 그일라 사람들이 배은망덕하게 다윗을 사울 왕의 손에 넘길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의 군대가 오기 전에 다윗이 도망을 갑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배은망덕한 일이 다반사고, 늘 있는 일입니다. 성도님들도 누구에게 잘해줬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나 하면서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늘 있는 일입니다.
다윗이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사울 왕, 자기 장인 어른부터 배반하잖아요? 성경은 어떻게 이렇게 정직하게 기록했는지 써놨습니다. 사사 기드온이 미디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줬는데, 아비멜렉에게 붙어서 그 아들들 70명을 한 바위에서 죽이는 사건을 읽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은혜를 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 데, 죄짓고 배반할 수 있습니까? 또 우리가 부모의 은혜를 입었는데, 배은망덕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고생하고 수고하고 했는데 사람들이, 가족들이, 자녀들이 알아주지 않더라! 그런 것을 알아줄 지식이 없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당할 때, 나도 배은망덕하게 행동한 것은 없는지, 깊이 성찰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그냥 넘어가고, 따져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그일라가 다윗 편에 섭니다.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이 400명이었는데, 600명이 됩니다. 다윗이 믿을만한 사람이고 따를만 하니까, 점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지요.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4-17)
요나단이 사실은 다음의 왕이 될 사람이고, 다윗의 정치적인 라이벌인데, 요나단이 다윗을 돕습니다. 요나단이 곁에서 사울의 눈을 자꾸 가리게 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을 몰래 다윗과 내통을 하니까, 사울이 다윗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요나단의 우정이 어떤 정치적 욕심이나 야망 같은 것에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 시대는 이미 끝났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이고 자기는 그 다음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에 밑줄을 긋고, 아래 주석을 달으세요. “착각은 자유다!” */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8)
이것이 다윗과 요나단의 마지막 만남입니다. 얼마 있으면, 요나단과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전투 중에 전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 됩니다.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19-20)
참, 지역명도 이름이 좋아야지. 무슨 욕이 생각이 납니다. 어디에나 이런 간신배들이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자기들을 지켜주는 사람을 보호는 못할 망정, 이렇게 아첨하고 고자질을 해서 무슨 상이나 재물이라도 얻어볼까 하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21-23)
이런 축복은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사울의 축복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윗을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못 잡습니다. 사울이 3,000명을 풀어서 10년을 찾았는데 못 찾습니다. 하나님이 숨겨주십니다. 그래서 숨겨주시는 하나님, ‘쯔판냐후’, 구약성경에 ‘스바냐’서가 바로 “여호와는 숨겨주신다.”는 뜻입니다.
훗날, 다윗이 남긴 시들을 보면,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피할 바위시요, 요새시요 산성이시요.’ 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말이 여러 번 나오는데, 도망자 시절, 어려운 날에 나온 시입니다. 다윗의 눈에는 사울이 항상 보이는데, 사울의 눈에는 다윗이 절대 안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숨겨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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