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9장 예후의 반역

<이미지 출처: https://cafe.daum.net/waitingforjesus/IjUP/13695>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1-4)


 유다 왕 여호람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 곧 북이스라엘에도 여호람이 예후의 반역에 의해서 죽게 됩니다. 그 전에 이스라엘 남북의 왕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때,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은 부상을 당해서 치료하기 위해서 잠시 후방인 이스르엘로 내려갔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장수였던 예후에게 여호람을 제거하고 왕이 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리하여 신분이 들어나지 않은 엘리사의 한 제자를 아람과 전쟁 중이었던 지역, 길르앗 라못으로 파송합니다. 당시에 전쟁 지휘부의 총사령관이 ‘예후’였습니다. 그 제자는 올리브 기름을 담은 병 하나 준비해서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아가지요.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하는지라.” (5)


  아람과의 전쟁은 매우 큰 전투이기 때문에 한 두 명의 장군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전쟁 지휘부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총사령관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하니, 무슨 기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몰라 예후가 엘리사의 제자와 독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후도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듣습니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6-10) 


 예후의 머리에 올리브 기름을 부으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하셨다고 외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그것은 전에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셨는데, 지금 그 일을 ‘예후’에게 맡긴다는 것입니다. 예후는 이 사건을 왠 미친놈이 찾아와서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떠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하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요.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11-12)


 처음에는 예후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엘리사의 제자가 한 말을 전합니다. 사실, 굉장히 조심했어야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짓껄이는 헛소리라고 해도, 여호와께서 자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는 말을 하면, 여호람을 따르는 장군이나 그의 신하가 누명을 씌워서 ‘예후’를 반역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던 장수들이 선지자의 말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들었는지, 예후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반역에 동참하겠다고 나섭니다.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13-15)


 예후의 주변 장수들이 예후를 왕으로 세우고 나팔을 불자, 예후는 자신의 반역에 대한 소식이 여호람이 있는 이스르엘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단속합니다. 그리고 신속하게 자신을 따르지 않을 사람들을 추려 제거하고 반역하는 일을 신속하게 진행시킵니다. 반역을 모의하고 준비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까, 예후의 주변에서 목숨을 걸고 반역하는 일에 동참하는 군사들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동안 여러 기적과 이사를 통해서,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 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아합의 사람들은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16)


 예후는 직접 자신이 주군으로 섬겼던 여호람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스르엘로 내려오고 있는데, 그 시각에 남유다의 왕이 된 아하시아는 여호람을 문병하기 위해서 이스르엘로 올라갑니다. 유다 왕 아하시야도 아합 가문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심판하시기 위해서 날을 잡으신 것입니다. 장소는 예전에 나봇이 피흘리고 죽었던 이스르엘 평원입니다.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7-18)


 예후가 병거를 타고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이스르엘로 오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이스르엘 망대에서 지켜보면 병사가 그것을 여호람에게 보고하지요. 그래서 아무래도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여호람이 병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예후를 만나서 긴급한 소식을 가져올 줄 알았는데, 보낸 병사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병사를 보냅니다.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19-20)


 분명 멀리서 보면, 예후가 말을 몰아서 오는 것 같은데, 여호람 왕이 보낸 통신병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예후를 만나기만 하면, 예후의 군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1-22)


 여호람이 궁금해서 미칠지경입니다. 그래서 직접 왕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만나보기로 합니다. 여호람이 나서자, 남유다 왕인 아하시야도 함께 자신의 말을 몰고 예후에게로 가서 만났습니다. 하필이면, 만난 장소가 나봇이 베임을 당해서 피를 흘린 그 자리입니다. 여호람 왕이 어떤 좋은 소식이기에 총사령관이 예후가 직접 이렇게 오는지 물으나, 예후는 왕의 어머니, 이세벨을 농락합니다. 이것을 들은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급하게 말머리를 돌려 이스르엘 성으로 도망치려고 합니다.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3-25)


 예후가 활을 들어서 여호람을 조준하여 쏘았는데, 정확하게 갈빗대 사이를 지나 그의 심장을 맞추었고, 여호람은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여호람의 시체를 가져다가 나봇의 밭이었던 곳에 던져 버리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26)


 예후는 자신의 이 모든 반역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왕을 배반하는 혁명은 명분이 참 중요합니다. 이 명분이 없으면, 예후의 신하들도 얼마 안 있으면 예후를 죽이고 배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실 것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자신이 그 일을 수행한 것이라고 예후는 혁명의 정당성을 부하들에게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7-28)


  예후의 반역에 문병을 왔던 아하시야도 도망을 쳤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므깃도라는 곳에서 사로잡혀서 함께 예후에게 죽인을 당합니다. 아하시야와 여호람의 차이는 여호람은 그의 시체를 수습해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반면에 아하시야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 같으나, 열조의 묘실, 다윗과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묻힌 무덤에 안치되는 은혜를 입지요.


  우리 성도들은 평상시에도 잘 살아야 하겠지만, 죽을 때도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모두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고, 그 조상의 죄악의 업보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배반으로 죽임을 당하고, 시체는 수습되지 못하고 들개들의 밥이 되는 끔찍한 죽음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아하시야도 그리 잘한 것은 없지만, 아합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왕노릇을 단 1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 가문의 배경이 있어서 여호람처럼 되지 않고, 그의 시신은 잘 수습해서 예루살렘에서 장례가 치뤄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29)


 8장 후반부에 아버지 요람이 예루살렘에서 8년을 통치하고 죽고 난 뒤에 왕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더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8:25-27)


 그에 대한 평가도 역시 칭찬은 없고 잘못된 것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본받아야 하겠습니까? 가장 인생의 황금기인 20대에 가장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기간은 채 1년이 못되고, 그에 대한 평가는 악평만 남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면, 조상에게 물려받은 영광스러운 자리도 누리지 못하며,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끝을 맞이합니다. 


 22세 되기까지 그가 무슨 악을 많이 행할 수 있었을까요? 금수저로 태어난 아하시야는 성경에서 많은 것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자신이 물려받은 그 고귀한 신분을 악을 행하기에만 사용한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어리고 철이 들기도 전이라도, 억지로라도 율법을 붙잡고 행동하고 살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잘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끌려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이고, 우리의 수명을 누리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지 말고, 말씀을 읽고 배우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겸손과 성실과 인애와 자비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명과 앞날을 위해서라도 회초리를 들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훈육해야 할 것입니다. 참 어렵지만, 때로는 마음 아픈 일일수도 있지만,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후를 세우셔서, 아합의 집안을 심판하시는 사건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시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우리들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우리의 자녀들을 바르게 길러 내게 도와주옵소서! 


 아하시야는 인생의 황금기 같은 순간 최고의 권력을 가졌으나 누리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짧은 20년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것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행하는 불의한 삶이 되지 않게 하시고, 거룩하고 성실하게 살아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게 인도하옵소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항상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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