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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1)
남유다 왕 요아스가 47세에 죽자 그 뒤를 이어 아들 아마샤가 25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름의 뜻은 ‘주께서 강하게 하신다.’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머니 여호앗단은 ‘여호와의 기쁨’이란 뜻인데,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참 이름대로 여호와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지요.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2)
역대기 기자는 아마샤가 여호와의 눈으로 볼 때, 옳게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지만,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고 결론을 짓습니다. 이것이 전체적인 아마샤에 대한 평가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런 평가를 받으면 안 좋지요. 일단 예수님을 믿었으면, 평생에 신실하게 믿음생활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3)
요아스가 무슨 병이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신하들에게 살해를 당했기 때문에 그 아들인 아마샤는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찾아서 그 죄를 묻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원수를 찾아서 율법대로 처형했지만, 자손들에게까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참 잘한 것입니다. 감정대로 하면, 자손 뿐만 아니라 친인척까지 모조리 도륙하고 죽일 수 있는 권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4)
만약, 아마샤가 율법대로 하지 않고, 자기 기분대로 했다면, 남유다 왕국이 항상 보복과 복수에 의해서 분열되었을 것이고, 민심이 다윗 왕조를 떠났을 것입니다. 요아스가 죽임을 당한 것도 그의 잘못이 있었기 때문인데, 어째든 왕을 배신한 신하를 처단하는 것까지는 백성들이 인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조상들의 잘못한 것 때문에, 후손인 우리 모두 책임을 묻겠다고 해 보세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율법도 자세히 보면, 죄인을 심판하기는 하지만, 살리는 법입니다. 죄인의 후손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5-6)
아마샤는 ‘에돔’ 족속을 다시 식민지로 삼고자 강한 군대를 조직합니다. 남유다 5대 왕 여호람 때에 립나와 에돔이 유다로부터 독립했는데, 다윗 시대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군사력을 강화한 것이지요. 그래서 30만 명의 대군을 조직합니다. 거기에 북이스라엘에서 10만 명의 용병을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출정(出征)을 하려고 하지요.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7-8)
그런데, 이름모를 선견자 혹은 선지자가 아마샤에게 나아와 북이스라엘 용병 군대와 함께 연합해서 에돔과 싸우러 나가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 군대와는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에돔과 전쟁 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아마샤가 결국 원하는 것이 북이스라엘도 점령하여 예전 다윗 시대와 같은 통일 이스라엘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과도 다시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용병이 남유다의 속 사정을 다 알게 되면, 이들과 과연 싸울 수 있을까요? 남유다의 군대의 약점이나 아킬레스 같은 것을 다 파악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연합훈련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9)
아마샤는 이 용병들에게 지불한 큰 비용 때문에 좀 머뭇거립니다. 그러나 그 선견자가 하나님께서 전쟁을 승리케 하셔서, 이미 지출된 비용보다 더 많은 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설득하지요. 아마샤가 생각하기에 이 용병과 함께 승리하면, 전리품을 나눌 때 자기 몫이 줄어들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 용병을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10)
이 용병들은 더 크게 한몫 챙기지 못한 마음에 분을 품고 돌아가는데, 다른 구절에 보면(13), 남유다 땅에 성읍에 들어가서 약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샤가 괜히 이들을 불러가지고 백성들이 피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면 그에 맞는 보상을 해 줘야 하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이나 판단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튼 이 아마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여러 가지 도움을 줍니다. 그렇게 에돔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게 되었지요. 이름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강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11-12)
소금골짜기에서 아주 치열한 접전 끝에 적군 1만 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고, 1만명 정도는 전쟁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큰 승리를 거둔 아마샤입니다. 그런데, 이 아마샤가 엉뚱한 짓을 합니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4)
아마샤가 에돔족속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에돔의 우상을 깨뜨려 버리고 불살라 버렸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신이 에돔을 유다의 군대로부터 구하여 내지 못했는데, 어째서 아마샤는 그 우상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까? 정신 나간 짓이지요. 고대 사람들의 생각에 이 신 저 신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믿고, 불처도 믿고, 이슬람도 믿고.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 다른 신이나 우상을 겸해서 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15-16)
선지자가 아마샤에게 나아가 우상 숭배한 일에 대해서 책망을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에돔을 정벌했는데, 그 에돔의 신을 섬기는 것은 배반행위, 하나님께 대한 반역 아닙니까 하고 크게 나무라니까, 이 아마샤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더니 선지자를 무시하고 내칩니다. 화장실 가기 전과 화장실에서 나온 후의 모습이 전혀 다르듯이 아쉬울 때는 아마샤가 하나님을 찾더니, 이제는 필요없어서 버립니다. 만약, 여호와의 율법대로 모든 에돔의 주상을 깨뜨리고 제거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영광을 돌렸다면, 이제 곧 있을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주셨을지도 모릅니다.
13절에, 용병들이 남유다의 고을에 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이를 명분삼아서 이스라엘을 침략할 수도 있었는데, 이제 작은 승리를 거둔 아마샤가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에게 도발(挑發)합니다.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7)
요즘 신조어로 ‘근자감’이란 말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의 약자라고 합니다. 이 아마샤가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제 통일 대업을 이루겠다는 큰 야망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승리한 소금골짜기 전투를 마치 자기가 뛰어난 전술과 지혜로 이긴 것처럼 아마샤는 생각합니다. 착각은 자유입니다만, 그런 왕이나 지도자를 따르는 백성들이나 군사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8-19)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는 점잖게 비유를 들어서 타이릅니다.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뜻이지요. 가시나무가 백향목에게 딸을 바치라고 하니(일종의 신하국이 되라는 뜻), 들짐승에게 가시나무가 짓밟혔다고 합니다. 같잖은 사람이 격에 안 맞게 까불다가는 죽는다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아마샤가 근자감이 가득해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와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0-22)
교만해진 아마샤 왕은 자기 뜻대로 고집하여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입니다. 벧세메스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합니다. 그 많던 30만의 군사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왕을 지키는 군사들도 별로 남지 않게 됩니다. 한 순간에 모든 부귀 영화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23-25)
조선 시대에 인조가 남한 산성에서 공성전을 하다가 끝내 청나라에게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한 사건처럼, 아마샤가 완전히 굴욕을 당하지요. 왕실 사람들이 인질로 끌려가고, 왕궁의 금은보화도 다 빼앗깁니다. 얼마 전 에돔에게 빼앗았던 전리품도 모두 요아스의 것이 되고 말지요. 심지어 북이스라엘의 요아스는 얼마 안 있어 죽었는데, 아마샤는 젊어서 15년 동안 더 생존했으니까, 약 39살 때까지 요아스의 직접적인 식민통치를 받게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백성들도 아마샤를 재앙을 불러온 군주이기 때문에 반역하고 배반하여서 아마샤의 끝도 그의 아버지처럼 비참하게 살해당합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아마샤의 이 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26-28)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남유다의 아마샤 왕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교만하다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고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나라까지 큰 심판을 받게 된 것을 읽었습니다. 우리들은 아마샤를 반면 교훈삼아, 일평생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정직하게 행할 뿐만 아니라, 온전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거룩한 성도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제자매와 가족들과 이웃들과 우리 나라와 민족이 주님의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온 세상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임을 잊지 말고, 거룩한 예배 드리며,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우리 모든 믿음의 가정들, 교회되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우리를 지도하시는 존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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