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람원에서 야영 (21:37-38)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실 때, 저녁에는 감람원에서 쉬셨다고 합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올리브 과수원’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기후가 변화되어, 우리 나라 제주도에서도 올리브 나무를 심어서 열매를 수확하는 농원이 여러 군데 생겼다고 합니다. 올리브는 기름을 짜듯이 온 몸을 희생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 가룟 유다의 배반 (22:1-6)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22:1-2)
유월절은 유대 달력으로 1월 14일 저녁입니다. 그리고 1월 15일부터 7일간 무교절인데, 우리의 입장에서는 유월절과 무교절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그저 유월절로 부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유월절이 오기 전에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여간 애를 씁니다. 유월절이 지나면, 다른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을 떠날 테니까 그 전에 어떻게든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모의하는데, 여기에 예수님의 제자였던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큰 역할을 하지요. 일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예수님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예수님 곁에 있을 때는 어떤 명분으로도 예수님을 체포할 수가 없습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3-6)
‘가룟인’은 ‘가리옷 사람’이란 의미인데, 정확히 어디 지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유대 남쪽 지역 중 하나라고 학자들은 생각하는데, 예수님도 유다 지파 아닙니까? 그러니까 고향 사람이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연, 지연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누가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우리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느냐 하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둠의 영에게 지배를 받으면, 한 순간에 범죄를 저지릅니다. 반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생명을 살리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늘 우리는 말씀을 읽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룟 유다가 제자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니까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에는 스스로 갈라져 나가는 자는 자기 욕심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이단이 그렇게 해서 생깁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잠 18:1)
우리 성도들은 특별한 사명이나 선교 파송을 위해서 세움을 받기 전에는 스스로 갈라져 나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원칙은 한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교회를 옮기게 될 때, 이명증서를 써서 이사한 곳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가 문제가 많고, 혹 목회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득이하게 교회공동체를 떠나게 되어도 가능한 빨리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사탄’이나 어둠의 권세들의 먹이감이 되지 않으려면, 신앙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성도들-(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 있는 성도)이 참 문제입니다.
* 유월절 준비 (7-13)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7-8)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유월절을 준비하게 합니다. 고기로 먹을 양도 빵도 나물도 준비하라고 하는데, 이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친척이 곁에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묵을 장소가 있을지 예수님께 다시 묻습니다.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9-13)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치 예루살렘의 어떤 집주인과 하루밤을 묵을 약속이나 하신 것처럼 생각했는데, 그 당시 엣세네파 사람들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안에 거쳐를 마련하고 광야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동료가 유월절을 지키거나 절기를 지키러 성전에 나올 때, 그들을 위해서 객실을 제공했었던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세례 요한도 역시 엣세네파였고, 아마 예수님도 어린 시절 그 분파의 사람들과 교류를 하신 것이 아닌 지 생각이 됩니다. 보통 물을 길러서 손님이 오실 때, 발을 씻을 물을 내어 오는 것을 여성이 했는데, 엣세네파 사람들은 금욕주의로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남성이 물을 길러올 수밖에 없고, 그런 남자를 보면, 곧 엣세네파 사람인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당시 관습대로 엣세네파는 같은 일파의 사람들에게 유월절을 지킬 장소를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집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맞이하게 됩니다.
* 마지막 만찬 (14-23)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4-18)
일단, 예수님께서 잔을 나누시면서 식사를 하십니다. 제자들에게도 나눠주십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저녁 식사인데, 이 다음부터가 특별한 퍼포먼스를 하시면서, 이것을 기념해서 따라하도록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는 ‘성만찬’이지요.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19-20)
포도주가 붉은데, 예수님이 이 포도주처럼 피를 흘려서 제자들의 죄를 씻을 것이라 상징적으로 보여 주십니다. 이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자 복인지, 이 성찬을 먹고 마시는 자라야 진짜 예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입니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만 이 성찬식에 참여하여 포도주와 떡을 먹을 수 있게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언약을 맺은 사람에게만 유효한 것이지, 아무에게나 죄용서함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참 성도는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21-23)
참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고 해서 모두 예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천사도 창조하셨지만, 그 천사 가운데 타락하여 사탄이 된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진짜가 아닙니다. 신실하게 언약을 지켜야 참 성도인 것입니다.
* 베드로의 부인 (24-34)
예수님의 수제자로 여겼졌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수님은 아십니다. 수제자가 그랬다면, 나머지는 어떻겠습니까? 사실, 모두 넘어지지요.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부인하고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연약한 인간이지요.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4-27)
만찬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곧 왕이 되시면 누가 큰 자리를 차지할 지 자기들끼리 다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인데, 전혀 예수님은 안중에 없고,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까 염려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지요.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다고 하시며, 세상의 가치와 관념을 따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반대로 섬기는 자로서 주님을 보필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28-30)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단, 이 세상 나라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나라이고 곧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14-19)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나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이 부인한 댓가로 영원히 버림받지 않고,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의 기도’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에서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언약을 파기하는 듯한 실수와 말과 행동을 하지만,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용서와 긍휼과 기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께서 항상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십니다(롬 8:32).
* 전대와 검 (35-38)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35-38)
예수님은 앞으로 남겨질 제자들에게 돈주머니(전대)와 배낭, 신발 등 칼까지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여행을 상정한 준비물입니다. 앞으로 제자들은 주의 복음을 들고 전 세계로 파송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검은 주님의 말씀의 검(구약과 신약)을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팔아넘기고,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붙드시고 기도하신 베드로는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들도 다 베드로보다 못한 사람들인데, 주님께서 끝까지 붙드시어, 믿음의 길을 완주하게 하옵소서!
죄와 허물로 주님의 언약을 배반치 말게 하시고, 깊이 새기어 말씀으로 늘 승리하게 하옵소서! 주님은 우리 곁에 성령으로 계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항상 주의 보혜사 성령을 모시며 인도 받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갈 때, 주님의 제자로서 말씀의 검을 항상 지니게 하시고, 어둠의 세력을 성령의 검으로 싸워 이기게 하시고, 영적 싸움과 전투를 위해 훈련되고, 준비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붙드시고, 이기게 하실 존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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