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과 랍사게의 교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군대를 하룻밤 만에 제거하셨습니다. 이후로 앗시리아는 군사력이 약화되어 점점 제국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지요. 이 시기에 바벨론의 브로닥발라단은 히스기야와 연대하여 앗시리아를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사실, 남유다가 앗시리아의 군대를 막아내었다는 소식이 어떻게 바벨론 왕에게 들어갔는지, 히스기야와 군사적 동맹을 맺으려고 사신을 보냈습니다.
앗시리아의 군대와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당한 줄 알았는데, 사절단을 보내니, 이미 벌써 앗수르의 군대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사절단의 스탠스를 바꾸어서, 질병에서 회복된 히스기야에게 축하와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왕의 서신을 꾸미지요. 히스기야는 먼 나라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방 왕이 있다는 것에 그만 마음이 녹아 내립니다. 사절단의 임무 중의 하나는 어떻게 유다 왕국이 앗시리아의 군대를 막아낼 수 있었는지, 그 역량을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신무기나 특별히 훈련된 군사들이 있는지. 파악하고자 했지요.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의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 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그에게 보낸지라.” (12)
히스기야는 그러한 바벨론의 심중을 알지 못하고, 쉽게 앗수르 군사들의 전리품을 챙겨서 자기 창고에 넣어 두었는데, 그런 모든 재산이나 보물이나 전리품들을 사신들에게 보여 줍니다.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13)
이런, 히스기야의 교만과 자랑은 큰 화를 불러옵니다. 사절단이 히스기야의 재력을 보았기 때문에 훗날 바벨론이 힘이 생기면, 예루살렘을 정복하러 오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는 것이 가난하다가 돈이 좀 생기면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 바, 졸부들이 갑자기 땅이나 부동산 가격이 올라서 부자가 되면, 자기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에게 돈 벌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랑해 봐야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진짜 대대로 내려온 부자들은 돈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돈 없어서 괄시를 받았던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자기 위신을 세우려고 하는데, 재앙만 불러올 따름입니다.
히스기야의 군대를 보아도 뭐 별거 없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은 남유다와 동맹을 맺지 않지요. 히스기야는 자기가 잘나서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친 것이 아닌데, 엉뚱한 짓만 합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기회가 좋지 않습니까? 이 모든 역사는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주님만 높였으면 될 것을, 뭐가 좀 있는 것처럼 거들먹 거리다가 후손들이 아주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만약,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면, 바벨론의 사신들은 감히 남유다를 침략할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땅도 그리 비옥하지 않습니다. 농사도 별거 없고, 목축 규모도 적은데, 바벨론의 사신들이 그냥 대충 둘러보고 돌아갔다면, 훗날 바벨론이 굳이 남유다를 차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이르되 먼 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그들이 다 보았나니 나의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하더라.” (14-15)
선지자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이 한 짓을 책망합니다. 바벨론의 사신들이 왜 왔는지 그 진의(眞意)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하나님께 묻거나 최소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라도 물어보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왕같습니다. 이런 지도자를 만나면, 참 골치아픕니다. 능력과 실력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행동을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지요. 그러면 나라꼴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냥 평범한 서민들이나 격의 없이 행하는 것이지, 한 나라의 임금쯤 되면, 외교 사절이 아무 이유없이 찾고 방문하겠습니까? 정치행위에는 다 의미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한 마디만 하면, 언론에서 이렇게 저렇게 분석하고 여러가지 해석들을 늘어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저 숨은 의도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는데, 히스기야 왕은 너무 경솔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16-18)
이사야가 참 어이없게 행동하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핵심은 그렇게 자랑하던 왕궁의 금은 보석들이 바벨론 왕에게 모두 빼앗기고, 히스기야의 후손도 사로잡혀서 노예가 될 것이란 무시무시한 저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히스기야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성경 중에 다니엘서가 있습니다. 이 다니엘이 바로 히스기야의 후손인데, 바벨론 느부갓네살 때에 포로로 잡혀 가지요. 그리고 그 바벨론 왕을 위한 환관이 됩니다. 물론, 다니엘이 경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는 신실한 사람이지만, 다니엘의 잘못이 아니라 히스기야의 교만과 무지 때문에 이런 실력자가 남의 나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가 경솔했다고 하나님께 빌거나 죄를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이런 일이 자기 때에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합니다. 참 어이없는 반응을 보이지요.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이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 하고 또 이르되 만일 내가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19)
히스기야는 자기만 당하지 않으면, 그 뒤의 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여호와의 말씀이 어찌 선한 것입니까? 자신의 실수 때문에 온 저주이지. 제대로 된 부모 같으면, 선지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으니, 이런 저주가 임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간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참 왕으로서도 부모로서도 빵점짜리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으니, 히스기야가 참 패역한 아들 므낫세를 자신의 뒤를 이를 왕으로 지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차라리 히스기야가 15년 생명을 더 연장하지 않고, 인생을 정리하는 것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단지 오래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곁에도 훌륭한 목회자나 리더였는데, 연세가 점점 들면서, 이상하게 변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지 않습니까? 어떤 면에서는 일찍 생을 마감하면,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훌륭하고 멋지고 위대한 인물로 남았을 텐데, 노욕(老慾)으로 추태를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0-21)
성서 고고학자들이 1880년 예루살렘 지하 터널에서 실로암 비문을 발견했습니다. 이 비문에 히스기야의 수로공사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 있었지요. 기회가 되신다면, 예루살렘 성 안에 발견된 히스기야 터널(수로)을 직접 가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강근 선교사님의 영상을 통해서 본 적이 있는데, 약 500미터가 넘는 길이를 양쪽에서 지하를 파서 중간에 만나게 공사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터널을 가장 잘 뚫는다고 알려졌는데, 지금부터 약 2,600여 년 전 공사에서 무슨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 없이 오직 사람의 인력으로만 이것을 감당했으니까, 이 당시 기술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요? 참 대단한 일입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인장이 새겨진 점토나 항아리들을 발견했습니다. 앗수르의 군대에 맞서서 보급로를 잘 만들고, 왕의 명령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행정체계를 만들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의 행정력도 굉장히 뛰어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으로 히스기야가 참 뛰어난 왕이면서 행정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교만하다가 스스로 제 꾀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유능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안타까운 점은 히스기야가 자기 사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후계자를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므낫세는 15년 생명연장을 받은 후에 얻은 아들입니다. 므낫세가 즉위하며 그의 어머니에 대해서 짧게 소개됩니다. 21장에서 므낫세의 어머니가 ‘헵시바’로 이름만 언급됩니다. 그 뜻은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 인데, 이 이름은 이사야 62장 4절에서 회복된 예루살렘(시온)을 일컫는 상징적인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유대전승에는 헵시바에 대해 좀더 소개합니다.
랍비의 문헌에는 이 헵시바가 선지자 이사야의 딸로 소개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지요. 이사야가 찾아와 "당신은 죽고 살지 못하리니 집을 정리하라"고 했을 때, 히스기야가 자녀가 없음을 이유로 들며 슬퍼하자, 이사야는 히스기야가 자녀를 두지 않은 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라고 지적합니다. 히스기야는 미래 자녀가 악할 것을 예견했기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사야는 "하나님의 비밀에 관여하지 말고 계명을 따르라"고 답합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딸과 결혼하여 므낫세를 낳았다는 것이 랍비들의 전승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보겠지만, 남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이 누구냐 하면,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와 이사야의 딸 사이에 낳은 아들이 어째서 가장 사악하고 나쁜 왕이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아무튼, 므낫세 왕의 이야기는 새해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히스기야가 기사회생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죽을 병에서도 고침을 받았고, 앗수르의 군대로부터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마땅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텐데, 자기에게 오는 사신들에게 자신의 부귀영화를 자랑하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조금만 잘 되면, 그것이 모두 내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라고 착각하며 오만하고 방자하게 행동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항상 말에나 행동에 신중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주옵소서!
히스기야 때문에 후손들이 저주를 받고, 유다 왕국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너무 안일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잘못된 길을 본받지 않게 하시고, 좋은 부모와 믿음의 조상이 되도록 우리를 인도하옵소서! 축복의 통로가 되시는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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