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2) 초대 교회의 유무상통(有無相通)

 <지거 쾨더, ‘죄인의 식사’, 출처 https://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0867737>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2)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고, 수천 명의 제자가 생겼습니다. 이들이 성전 가까이에 모여서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성령을 받았던 사도들처럼 기도하기에 힘씁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 밖의 유대인들은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유대교에서 출교했는데, 동일하게 이 수천 명의 사람들과 다른 유대인들이 더 이상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일단 유대교로부터 출교되면, 공직 사회에서 퇴출됩니다. 그리고 유대교인의 상사를 둔 직장에서는 협박과 함께 말을 듣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다가 직장에서도 쫓겨나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유대인들이 ‘나사렛 이단파’의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고 인간관계를 끊어 버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시장에 나가서는 유대인의 상점에 들러서 상거래를 할 수도 없습니다. 외부의 이방 장사꾼에게 거의 모든 물건을 구입해야 합니다. 가족들로부터 쫓겨나서 외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결국 한 곳에 모여 자리를 잡고 살게 됩니다. 그것이 초대 교회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수중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돈을 모두 공동체에 헌금을 하고 자기 삶을 의탁합니다.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는 것은 곧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이 다시 내려오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도인가요, 이장림이라고 하는 사람이 주축이 되어서 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며 믿는 사람들을 끌어 모았던 다미 선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재산을 전부 팔아서 현금으로 만든 뒤에 모두 이장림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한 건물에 모여서 매일 기도와 찬양으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맞을 준비를 한다고 했습니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카메라를 보내서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리면서 촬영을 했었는데,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지요. 여러 번 말을 바꾸어서 날짜를 옮겨 가며, 그런 공동체를 꾸렸는데, 거기에는 학생들이 학교를 자퇴하고, 직장인들은 사표를 내고 모든 경제활동을 멈추고 오직 예배와 기도와 자기들만의 교제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이런 종말론을 가지고 순진한 성도들의 재산을 빼앗고 착취하는 이단, 사이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체험을 하면, 이 현실 세상의 일은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지요. 


 직장에서는 쫓겨나, 갈대는 없어서 한 곳에 모여서, 있는 재산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런데, 이것을 아주 아름답게 보고, 이 말씀대로 살려고 시도한 이념이 바로 ‘공산주의’입니다. 혹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3-45)


 모든 사람이 재산을 함께 관리하면서,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일이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습니다. 일자리도 없고, 그렇다고 옆에 굶고 있는 형제를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후 70년,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점령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이렇게 재산을 다 허비하고 없애야, 빈털털이가 되어서 예루살렘을 떠나기 때문에 이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때로는 굉장한 어려움과 환란이 닥쳐서 고난 중일 때,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일 수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주님을 믿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있는 재산을 다 까먹고 나서야 예루살렘을 떠나 외지로 나갑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선교가 시작됩니다. 


 가만히 예루살렘에 안주하여서는 선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박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공산주의’를 언급했는데, 하나님은 초대교회처럼 그런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하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살아가는 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랬고, 우리 인간들은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는 그 공산 사회가 유토피아처럼 느껴질 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각 사람의 필요라는 것이 우선 완벽하지 않습니다. 쉽게 생각해 보면, 우리 각 사람이 필요를 느끼는 정도가 다 다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출퇴근을 위해서 꼭 필요한데, 어떤 사람은 ‘최고급 테슬라 차’를 갖고 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굴러가는 10년 된 경차라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필요를 채우려면, 하향 평준화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주의 나라들을 보세요. 일부의 특권층만 고급차를 이용하고 나머지 90% 이상의 대부분은 아주 낡은 트럭이나 차를 쓸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북한 같은 곳은 없고, 소 달구지라도 타고 다니면 다행입니다. 자동차만 그렇겠습니까? 음식도 어떤 사람은 꼭 자기 입맛에 맞어야 하는 까다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맛없으면 안 먹죠. 물론, 한 사흘 굶기면 다 먹게되긴 하겠지만, 그렇다면 누구는 호텔 조리사의 음식을 주고, 누구는 대충 만든 꿀꿀이 죽을 먹으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 욕심에 따라서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불성설입니다. ‘필요에 따른 분배’는 환상 속에나 있는 것입니다. 좀더 질적으로 좋은 재화나 상품을 사람들은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 가정이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필요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큰 사회 말고, 각 가정에서만 생각해 봅시다. 한 400만원 버는 가정이 있다고 봅시다. 4식구가 있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똑같이 100만원씩 나눠 써 보십시오. 어떤 아이는 단 몇 시간 만에 그 돈을 다쓰고 와서, 자기는 더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소비습관이나 경제관념이 또한 다릅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그러하다면 여러 가정이 모여서 재산을 하나로 합쳐서 그것을 가지고 동일하게 나눠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데, 자기는 그 재산에 기여한 바가 큰 데도 여러 사람에게 다 나눠주고 자기는 조금만 누린다고 생각되면, 그 다음부터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겠습니까?


 인간은 욕심이 크기 때문에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면, 열심히 일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공산 국가들의 상품이 점점 질적으로 하락하고, 좋은 값을 받지도 못하게 됩니다. 하향 평준화되어서 모두가 가난하게 됩니다. 이 성경에 나오는 유무상통의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그대로 본받아서 따르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명령은 구약의 율법에도 없습니다. 다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것은 필요하지요. 일률적으로 재산을 나눠 줘야 된다는 명령은 없습니다. 그렇게 나눠 줘 봐야 게으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피와 땀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배만 채울 뿐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 같이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꿈꾸면 안 되고, 진정으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다음의 말씀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6-47)


 우리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여서 하는 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서 힘써야 하는 것은 ‘떡을 떼며’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웃과 관계를 잘 맺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선 단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굶지 않도록 나눠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저들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그렇게 하는 이유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공부를 잘 하면, 부모님에게 기쁨과 즐거움일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불의를 행하지 않고, 사회에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 되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게 됩니다. 그래야 전도도 되고 선교도 됩니다. 우리들이 세상의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 어떻게 선교가 되고 전도가 되겠습니까? 진정한 이웃 사랑은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역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예화)  20세기 초 일본에 나가노 마끼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안수 받은 그는 어디에서 목회를 할까 찾다가 동서남북 100km이내 교인이 하나도 없고 미신이 판을 치는 북쪽 가나자와를 찾았습니다. 그는 가나자와(이시카와현)에서 텐트를 치고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창립 예배는 아내와 자녀 1명과 드렸습니다. 한 달, 두 달, 6개월이 지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믿었고, 그런 확신을 가지고 무려 5년을 지냈습니다. 예배 때마다 아내와 아이만 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예배 때 천막교회 안에 첫 번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청년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가노 목사는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예배가 끝난 후, 나가노 목사는 청년을 집에 초대하여 저녁을 같이 먹습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 청년이 갑자기“욱“하더니 입에서 핏덩이를 토해 내었습니다. 그 청년은 폐병 환자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폐병 환자는 불치병이었고 일반인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시절이었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순간 갈등을 느꼈습니다.


 ”내어 쫓아버릴까? 아니다. 이 청년은 주님이 내게 보내신 첫 사람이다“


 나가노 목사는 행주를 가져와 청년의 각혈을 치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상을 차리고 식사를 했습니다. 알고보니, 이 청년은 유명 정치인과 기생에게서 난 사생아였습니다. 이 사람이 복음을 접하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재학 중 폐결핵이 발병되어 완치하면 복학한다는 조건으로 강제 휴학 처분을 당했습니다. 다니던 교회로부터 병이 낫기까지는 출석을 금해 달라는 요청을 들었고, 평소 어울리던 교우들도 외면했습니다.

그는 단지 폐병 환자인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따뜻하게 맞아 주는 크리스천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서도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해 실망해서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자살 직전 우연히 나가노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가나자와의 나가노 목사는 단 한 명의 신자도 없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5년간이나 지켜오고 있는 훌륭한 분이라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가노 목사를 한 번 만나보고, 만약 그분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대해 주지 않으면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그 폐병 환자 청년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살면서 극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나가노 목사를 통해 다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가노 목사 부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청년은 폐결핵에서 완치가 되어 신학교에 복학하여 훗날 목사가 됩니다. 그가 유명한 빈민의 아버지라고 하는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입니다.


 가가와 목사는 빈민 목회를 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 몇 끼씩 연달아 굶을 경우, 변비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습니다. 때로는 차돌같이 굳어 있는 환자의 변을 항문에 자기 입을 갖다 대고 침으로 녹여 빨아냈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은 가가와 목사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지 물었습니다. 


 “저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토해 낸 폐결핵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제게 해 주신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기도하는 삶이 중요함을 알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의 모임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모여 예배에 힘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만을 사는 우리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 곳곳에 나가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저희들에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환란이 닥쳐와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믿고

서로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낙심하지 말게 하시며, 생명을 살리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의 모습에서 공산주의가 나왔음을 봅니다. 저희들이 세상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주님없이 유토피아를 꿈꾸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삼게 하소서! 세상의 환란이 닥쳐도 두려워 떨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것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베푸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감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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