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2장 요시야의 종교개혁 (1)


<출처, https://m.blog.naver.com/esedae/221192552229>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1-2)


 아몬이 죽고 아들 요시야가 8살에 왕이 됩니다. 이름이 ‘여호와께서 지지하신다.’ 혹은 ‘여호와께서 치료하신다.’ 란 의미입니다.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을 보면, 그 어머니가 신앙심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 ‘여디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 하는 의미가 있지요. 8살짜리가 왕이 되었으니, 어머니가 신하들과 함께 섭정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통 엄머 이름에서 끝나는데, 여기는 외할아버지의 이름까지 등장합니다. ‘아다야’ 그런데, 보스갓은 유대 한 지명입니다. 보스갓 땅의 ‘아다야’. 성경에는 이 분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보스갓은 예루살렘 성 안이 아니니까, 보통 생각되는 귀족 집안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방 지역의 유력한 가문이면서, 므낫세의 우상 숭배에 가담하지 않은 경건한 가문으로 생각됩니다. 아무튼, 요시야는 어머니의 신앙을 물려 받아서인지, 우상 숭배보다는 여호와 신앙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관심을 가지고, 옛날 히스기야처럼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를 회복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릴 수 없을 정도로 성전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이 명령을 내려서 성전의 훼손된 부분들을 고치려 하지요.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숴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3-6)


 성전 수리는 옛날 요아스 때와 히스기야 때를 제외하면 별로 행해진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시야가 26살이 될 때에 요시야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돈을 들인 것도 아닌 것 같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친 헌금 중 일부를 써서 성전의 수리할 부분을 수리하도록 한 것인데, 그렇다면, 그 전에는 헌금을 어떤 용도로 섰을까요? 


 정직하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쓴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요시야’는 아주 신앙심이 깊은 왕으로 묘사되고,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릴 때, 정직하게 사용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잘 쓴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좋은 평가를 받고,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오늘날 대형 교회들이 재정을 잘 사용하면, 사회적으로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단, 세상 사람들의 인기와 칭송을 받기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참 계획적이고 전략적으로 잘 사용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당이 아름답게 꾸며지고 장식하는 것을 안 좋게 이야기를 하는데, 번듯한 성전, 깨끗하고 크고 웅장한 성전도 필요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기 집은 아름답게 꾸미면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요시야가 무슨 대단한 믿음이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성전이 부서지고 허물어진 곳이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 명령은 섭정하는 어미나 신하들의 의견이 아니라 왕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목수나 석수 같은 기술자들이지요. 사실, 일반 집을 지을 때보다 이런 종교적인 건축물들은 일당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7)


 요시야 왕이 기술자들을 믿고 일을 맡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시켜놓고, 원가를 계산하고 좀더 싸게 자재나 인건비를 줄이려고 하는데, 요시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가장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겼겠지요.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8)


 그런데, 성전 수리를 하다가 한 두루마리 성경을 발견합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보았는데, 율법책입니다. 대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율법책도 없이 일을 했던 것일까요?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서기관 사반에게 이 책을 넘겨줍니다. 아마도 학자들은 이 책이 ‘신명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서기관 사반이 그 율법책을 먼저 읽어봅니다. 그리고 충격받을 만한 내용이 있어서 왕에게 보고를 하게 되지요.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9-11)


 사반이 성전 수리가 잘 진행되고 있음을 보고하고, 덧붙여서 율법책을 발견했는데, 왕에게 전달합니다. 요시야가 처음에는 사반에게 읽도록 지시를 했는데, 그 율법책을 듣자, 갑자기 자기 옷을 찢으면서, 큰 충격을 받지요. 아마도 요시야의 아버지 아몬이 죽은 것과 할아버지 므낫세로 인해서 얼마나 남유다 왕국이 위태한 상황까지 왔는지,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므낫세 치세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흘러온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되어온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책의 내용대로라면, 곧 남유다에 큰 재앙과 심판이 닥칠 것 같은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요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좀 아는 선지자나 제사장들을 찾았습니다.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12-13)


 그래서 예루살렘에 거하는 한 여선지자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녀는 ‘훌다’라는 여인인데, 그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듣고자 합니다.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4-17)


 하나님의 응답이 참 참람하고 절망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야는 포기하지 않지요.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대로 변화를 시도합니다. 이른 바 이것이 요시야의 종교개혁입니다. 우리말로 개혁인데, 밭을 갈아엎듯이 확 뜯어 고치는 것보다 영어로 된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Reformation. 일그러졌던 폼을 원형대로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잘못되었던 예배의 대상, 형식 등을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이지요. 우상과 이방 신에 드렸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법을 하나님의 법대로 수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우리도 무엇이 바른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형태로 고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18-20)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죄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고, 앞으로 바벨론이란 나라를 들어서 남유다 왕국을 쓸어 버리고 진멸하실텐데, 요시야는 그런 심판의 참람한 모습을 보지 않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에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려 볼려고 하는 것 때문입니다. 우리도 비참한 재앙과 심판을 보면, 어떻습니까? 큰 충격을 받지요. 전쟁에 나가서 비참한 참상을 본 군인들이 혹 살아돌아와도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스트레스 외상 징후라고 하나요? 자기 전우들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파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처참하고 무기력한 자기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적들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하고, 또 자기 자신이 그런 일을 당할까 두렵고 떨리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이 뇌에 큰 충격을 주지요. 그래서 평화로운 고향 땅에 왔음에도 악몽을 꾸기도 하고, 계속 문득 문득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떤 군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요시야는 훌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3장으로 갑니다. 


 “왕이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23:1-3)


 요시야는 자기가 들은 이 재난과 징벌과 심판의 말씀을 혼자 알고 끙끙대지 않고, 백성의 장로들과 지도자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해야할 일이 그렇습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개인, 민족, 나라는 큰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구원받으니까 남들이야 망하든 말든 상관없지!’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하느냐면,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이웃, 친지들이 멸망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제시대의 ‘최권능’이란 목사님은 간단히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면서 온 조선팔도를 다녔지요. 우리가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우리가 기회가 있는데로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당장 무슨 재난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콧방귀를 끼며, 대부분은 듣지 않겠지만, 할 수만 있는대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억지로 듣게 하기 위해서 높은 위치와 자리에도 앉을 수 있으면 앉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사원으로 사장님 한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우리가 사장이 되어서 고용한 직원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억지로라도 듣게 되니까. 사원일 때는 우리가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지요. 


 이른 바, 이것을 선교학에서 ‘고지론’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아무튼 윗자리에 있으나 밑에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의 재앙을 막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부터는 다음 시간에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요시야가 선한 뜻을 품고, 성전을 수리하는 장면을 봅니다. 요시야의 명령을 받아서 성전 수리를 했던 기술자들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행동했기에 감사를 하지 말고 그들에게 재정을 주고 일을 온전히 맡긴 것을 봅니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정직하게 행하여 믿음과 신뢰는 주는 성실한 자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지만, 요시야는 율법책의 말씀을 정직하게 듣고 이 심판과 재난을 피하고자 최선을 다한 모습을 봅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을 위해서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지혜를 주시고, 주님처럼 사랑의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섬겨, 구원받는 우리의 형제, 자매, 이웃들이 많아지게 하옵소서! 용기와 믿음을 주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다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구주되시는 존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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