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7장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

 


< 출처: 크리스찬 타임즈 >

16장에서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울 왕이 있는 곳에 가서 수금을 타며, 무기고에서 일하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블레셋이 유다의 ‘소고’ 성읍 쪽으로 군사를 몰고 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적을 막기 위해서 진을 치게 됩니다.  



 블레셋 진영은 에베스담밈(피의 지역)이고, 이스라엘 진영은 엘라 골짜기(상수리나무-테레빈나무-의 골짜기) 쪽입니다. 골짜기가 우리 나라의 산골짜기처럼 깊이 푹 파인 곳이 아닙니다. 산과 산 사이에 길게 들판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골짜기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골짜기하고 많이 다릅니다.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블레셋 군사들은 아랫쪽 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쪽 산에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4-7)

 싸워보자고 한 사람이 나오는데, '골리앗'입니다. 1규빗 하면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의미합니다. 그리스어로는 한 '페키스'라고 하는데 규빗이나 페키스나 같습니다. 45센티에서 50센티미터입니다. 그러면 6규빗은 3미터입니다. 골리앗의 키가 3미터가 넘는다고 합니다. 성경에 아낙 자손 혹은 삼숨밈 하면서, 나오는 거인족 사람들입니다.

 갑옷의 무게는 대략 60kg쯤 되고, 창 자루가 베틀채 같다고 하는데, 4X4 인치 약 가로세로 10cm, 창날의 무게가 7.5~8kg 나 나갑니다. 그리고 그 골리앗 곁에는 그를 보호하려고 방패든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8-9)

 전쟁사에서 '일기토(一騎討)'라고 하지요.  장수들이 말 위에서 또는 도보로 서로 1대1로 대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거나, 불필요한 병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장수대결을 펼쳤습니다.  골리앗이 일기토를 겁니다. 

 이스라엘 군대 장수 중에서, 이 거인 골리앗과 그 무기를 보고 겁을 내서, 40일이나 나와서 싸움을 돋우고 이스라엘을 모욕하는데도 대응을 하지 못합니다. 그 때 다윗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첫째부터 셋째까지 3명이 이 전쟁에 참전합니다. 다윗은 막내이고 아직 어려서 전쟁에 나가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 식량 같은 것을 전해 주기 위해서 전장에 가게 됩니다.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19-23)

 “이 겁쟁이들아! 그래 나와 겨룰만한 장수가 아무도 없느냐! 그럼, 빨리 항복하고 사울의 목을 갖다 바쳐라~!” 

 40일 동안, 아침 저녁으로 골리앗이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을 주는데도 한 사람도 나가서 맞서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40일 정도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형들을 면회와서 이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분노가 솟아 오르는 것이지요. 이제까지 왜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까? 전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용감하게 블레셋의 수비대에게 접근했는데, 사울도 요나단도 그들의 곁에 있는 아브넬도, 다른 장수들도 나서는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24-25)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 골리앗만 나오면 다 도망하여 숨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임자’가 따로 있지요~ 사울이 이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은 사위로 삼고, 왕에게 내는 세금도 면제해 주고, 나라의 세금 국세와 부역과 재산세 등 모든 것을 제하여 주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군사 중에 단 한 사람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다윗이 나서는 것입니다. 아직 소년인데…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이르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26-27)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슴에 놀라운 용기와 담대함과 힘을 주셨습니다. 그가 가진 재능이라고는 물매 던질 줄 아는 것과 수금을 타는 정도인데, 이런 소년이 나서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합니다. 옆에서 듣던, 큰 형이 말립니다. 전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가슴에 남아 있는지, 다윗에게 막말을 합니다.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 (28-30)

 다윗은 용감하게 말하는데, 큰 형은 네가 교만하고 완악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것인지, 젊은 객기를 부리는 것인지 형이 구분도 못합니다. 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구분을 잘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간에 옥신각신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가서 싸우겠다고 사울 왕에게 전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아직 어린 소년이 싸우겠다고 한다면, 엘리압처럼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을 누가 보고했을까요?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1-33)

 그래도 왕쯤 되면, 사리 분별을 잘 하지 않겠습니까? 사울이 또 말립니다. 자기가 그래도 아끼는 음악가인데, 전쟁터에 객기를 부리고 나가서 싸우다 죽으면, 참 골란하지 않겠습니까? 사울이 다윗을 부른 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넌 아니라고 왕의 이름으로 권고를 해 주려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래도 제법 많은 전쟁을 치루었는데, 딱 보고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사울 왕을 권면합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연상하면, 어린 소년이 백전노장(百戰老將)에게 한 수 가르쳐 들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신학자는 다윗이 그 때, 17살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때가 가장 겁없을 나이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4-36)

 사울이 다윗의 말을 들으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양을 치는데 어떤 사자나 곰이 와서 양 새끼를 하나 물고 가는 일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저 같으면 뭐 나머지 양이라도 안 뺏기기 위해서 나머지 양떼를 데리고 집으로 오든지 했을 텐데,  다윗은 사자나 곰을 따라 갔다고 합니다. 따라가서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 사자나 곰을 쳐 죽이고 양 새끼를 찾아 왔다고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다윗의 그런 모습을 보시고, ‘이 아이에게 내 백성을 맡길 수 있겠다! 양 새끼 한 마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가서 기지를 발휘해서 사자나 곰을 쳐 죽이고 그 양 새끼를 되찾아 오는 것을 볼 때, 내 백성을 이 소년에게 맡길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37-40)

 다윗이 나가서 싸우겠다니까, 사울이 자기 군복을 내어 줍니다. 사울이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큰 사람인데, 사울의 옷이 맞겠습니까? 그래도 다윗의 안위를 생각해서 놋 투구와 갑옷을 입혀 보는 것이지요. 역시나 다윗이 그런 것을 쓰면 몸이 불편하고 그 무게 때문에 민첩성이 떨어지게 되지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벗고 그냥 나가서 싸우겠다고 합니다. 

 양치기 할 때, 목자의 주머니에 매끄러운 돌을 넣고 다녔던 모양인데, 한 5개를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자신의 무기, 물매를 챙깁니다. 어느 무기 전문가가 이 다윗의 물매를 재현해 보았습니다. 정말 이런 것이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살상력은 있는지 만들어서 동영상에 올렸습니다. 홈페이지에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 번 시청해 보세요!

<물맷돌을 보셨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eJHK7Pn-7fY ,   https://www.youtube.com/watch?v=WHyK6r1Jbng>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1)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가니까, 골리앗도 나옵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자기 손으로 방패를 잡은 것이 아니고 방패 든 사람이 골리앗을 따라 다니니까 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2-44)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무슨 장수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아직 어린 소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이없어 하고, 다윗을 저주하면서, 죽이려고 하지요. 여기서 분명히 골리앗이 자기 신들의 이름을 다윗을 저주했다고 합니다. 고대 전쟁은 ‘신들의 전쟁’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5-47)

 다윗도 하나님으로 나갑니다. 그렇죠? 만약, 다윗이 지면, 하나님 입장이 곤란해질텐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다윗이 참 당찹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을 술술 잘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전쟁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고백하면서도, 신무기를 만들고 개발하는데 많은 예산과 시간을 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돌맹이 가지고도 골리앗을 때려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아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다윗처럼, 나가지 못합니다. 

 다윗이 담대하게 골리앗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어떤 젊은 혈기나 무모함이 아니고, 성령의 감동과 충만함으로 나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혀 두려움 없이 이렇게 나가는 것을 보면, 참 우리가 본받을 만한 신앙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48-50)

 만약, 다윗이 골리앗하고 맞붙어서 백병전(白兵戰, 근접 전투용 무기를 이용한 전투) 하면 패하겠지요? 이런 싸움은 붙으면 안 되고 멀리서 처리해야 합니다. 골리앗이 작고 민첩하다면 물매로 맞추기 어려웠을텐데, 골리앗이 매우 크기 때문에 눈감고 던져도 맞습니다. 그리고 돌맹이로 급소를 맞춰야지 팔, 다리에 맞으면 골리앗이 더 달려들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한 발 던졌는데, 골리앗의 미간(眉間)을 맞춥니다.  눈썹과 눈썹 사이가  급소입니다. 살짝 맞으면 튕겨나오는데, 세게 맞았기 때문에 돌이 박힙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습니까? 다윗이 물매의 명수라서 그렇습니까? 돌이 총알처럼 날아가서 골리앗의 미간에 박히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윗이 말한 대로 칼도 없이 물매 하나만 가지고 골리앗을 끝장을 냈습니다.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1-52)

 블레셋 군대는 골리앗 하나만 믿고 전쟁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골리앗이 무너지니까 나머지는 기대할 것도 없고 두려워서 다 도망갑니다. 그전까지 두려워서 떨고 숨었던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가 충천해서,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가서 잡아 죽이고, 전리품을 챙깁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53-54)

 참고로,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잘라서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표시해 놓으세요. 아직, 예루살렘은 여부스 사람의 도시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머리를 자기 동네 베들레헴으로 가져왔다고 하거나 기브아 사울 왕에게 전달했다고 해야 말이 됩니다. 

 이것을 보면, 사무엘서가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수도가 된 후에 기록하여서 성경 기록자가 습관적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고 해서 실수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이스라엘이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소고전투 혹은 엘라골짜기 전투가 다윗에게 (登龍門)이 되었습니다.  반면, 사울에게는 몰락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한 사람에게는 등용문인데 , 다른 사람에게는 멸망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못하겠다’ 하고 포기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하는 사례가 나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못하겠다고 피하고 도망갈 것이 아니라 목표가 있으면, 길이 있습니다. 또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고 그런 사람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될까?’ 하면서 계속 길을 찾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기상을 아주 짓뭉개버리는 아주 못된 속담이 있습니다.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라’ 합니다. 너무 분에 넘치는 걸 기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가 어디있습니까? 우리는 올라가지도 못할 나무 이야기 할 때, 미국 사람들은 달에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될까 하면서, 계속 길을 찾아서 결국에는 달에 가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다른 사람 다 할 수 없다고 할 때,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익숙한 것, 물맷돌로 해 내지 않습니까? 자기 양떼를 지켜 내기 위해서  여러 수백 번 정도가 아니고 여러 수천 번, 수만 번을 하지 않았겠어요? 한 가지라도, 다윗의 물맷돌처럼, 세계 일인자가 될 만큼 갈고 닦으니까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골리앗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골리앗을 자기 발등상으로 밟고 왕위에 올라가는 그런 계단이 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이라는 사람이 자기 모교 대학교에 가서 졸업 축사를 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Never give up)’ 같은 말을 3번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학교가 세워진 이래로 가장 명연설이었다고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세우신 한 소년, 다윗이 아무도 나설 수 없고, 두려움에 떨며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골리앗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용감히 나아가 싸워 승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주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이 곤경에 처했을 때,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힘입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나타나는 큰 장애물 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능히 우리를 승리케 하실 수 있음 알고,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 인생의 문제에 너무 쉽게 포기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끝까지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