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장 기독교 총회와 안디옥 교회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1)


 고넬료 가정의 구원 역사는 초기 기독교 유대공동체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유대인들 대다수는 아직도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 잘못된 생각이며, 처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목적과도 정면으로 반대된 생각입니다(출 19:5-6). 그런 편견과 오만한 마음을 가지고 베드로 사도를 자기들의 관습과 문화적 판단으로 정죄합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2-3)


 우리도 이 장면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를 정죄하는 이들이 다른 이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유대인’들이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자기의 오만과 고집과 편견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베드로는 그냥 일반 성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사도입니다. 그런 그를 비난했다면,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목회자나 교회 직분자들을 비난할까요?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4-7)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일을 변론하는 것은 그냥 개인적인 사석에서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 총회에서 많은 사도들과 성도들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 사건을 10장에서 한 번 기록했는데, 11장에서도 다시 언급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부정한 짐승들처럼 여겼던 베드로나 다른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이방인 고넬료를 비롯한 그 집안의 사람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8-10)


 베드로가 환상 가운데, 주님과 3번이나 실랑이를 벌였다는 것을 보면, 베드로 역시 철저하게 율법적으로 살았음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율법은 변하는 것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법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마 9:17).


 “마침 세 사람이 내가 유숙한 집 앞에 서 있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11-12)


 10장에는 베드로와 같이 고넬료 집에 방문한 사람이 한 두 명으로 생각될 정도로 몇 사람이 같이 갔다고 했는데, 11장에는 정확하게 6형제가 함께 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넬료가 보낸 3사람과 6명, 베드로까지 총 10명이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함께 이동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무슨 경제적 이유나 어떤 신변보호 요청 같은 개인적인 일로 이방인을 만난 것이 아님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성령의 명령으로 주님의 뜻을 위한 일이었음을 은연 중에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 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3-15)


 그래서 고넬료를 만나러 갔는데, 그가 성령께서 자기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신 대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게 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독단적으로 유대인의 관습과 문화를 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고넬료 가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사실, 우리가 믿고 싶어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베드로는 단지 자기가 할 도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심을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중에 성령이 고넬료 가정에 임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다 들어보고 고넬료 보고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겠느냐 물어 본 것도 아닌데, 강권적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어려운 신학용어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보면, 연예인을 하다가 갑자기 TV나 방송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신내림’을 받았다면, 갑자기 무당이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참 불행한 것이고, 우리 같은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세상의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된 것보다 큰 복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실감이 잘 안 나실  수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 받은 성도들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편지에 자꾸 강조하면서 반복하지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13-14)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6-17)


 베드로가 한 일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누가 막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런 저런 개인적인 판단이나 생각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하다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비난하는 큰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오묘한 섭리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8)


 처음에는 비난으로 시작했는데, 잘 들어보니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말했던 입을 다물어야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지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은 우리들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교만이나 편견이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수를 구원하시고, 주님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들은 할 수 없지만, 주님은 일하십니다. 우리들이 겸손히 주님의 음성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고, 잘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 할렐루야!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9-21)


 초대교회 공동체가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박해로 시작되어 여러 지방으로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수리아(시리아) 지역에 안디옥이라는 도시에서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스(헬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서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섞여 있는 교회가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2-23)


 이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보다 어쩌면 이방인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을 정말 바르게 알고 믿고 있는지 확인하고 교회공동체로 인정합니다. 마치 오늘날 노회에서 지교회를 방문하듯이. 이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바나바가 오게 됩니다. 앞에서 아나니아-삽비라 사건이 있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 앞에 드렸던 그 바나바가 이제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바나바의 가르침은 단순합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박해가 있고, 믿음을 지키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복음을 간직하며 말씀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4-26)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섬기다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길리기아 다소에 있는 바울을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둘이 힘을 합해 안디옥 교회를 섬기니까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니까 별명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리 좋은 뜻은 아니었겠지만, 오늘 우리들에게는 영광의 명칭입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27-30)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복음의 빚을 진 이방 교회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돕고 섬기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온 세계에 선교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미국이나 서방의 교회들을 역으로 다시 섬기는 것은 참 좋은 일이고 잘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도움을 받는 교회에서 도와주는 교회로 성장하고 부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교회가 아버지의 뜻을 찾아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오해와 비난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봅니다. 우리들도 제 생각에 사로잡혀 말씀을 오해하고 곡해하지 않았는지 겸손히 돌아보게 하시고, 편견이나 아집과 고집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항상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을 잘 수용하고 받들 수 있기를 원합니다. 늘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함부로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겸손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바나바처럼 우리의 믿음도 자라기 원합니다. 세월이 지나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이 자라나게 하시고, 또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주님의 사역자가 되게 하시고, 누구에게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칭찬받을 만한 삶을 살게 도와주옵소서!  


 주님! 바나바는 홀로 안디옥 교회를 섬긴 것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협력하여 주님의 교회를 더욱 잘 섬겼습니다. 큰 부흥과 성장이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서로 협력하게 하시고, 성장하고 자라서 우리보다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를 섬기고 세워나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교회도 언제까지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있지 말게 하시고, 도와주고 나눠주고 섬기는 교회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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