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장 그리스도의 향기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2:1-4)


 개역개정 성경은 원어를 직역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좀 우리말로 매끄럽지 못하여서 그 의미가 잘 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천주교 학자들과 우리 개신교 신학자들이 함께 번역한 공동성경에는 가능한 이해하기 쉽게 의역이 된 부분이 있어서 일반 성도가 이해하기 좋은 면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공동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 


 “다시는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여러분을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만나서 기뻐해야 할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히려 내 마음이 슬퍼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기뻐야 여러분도 기뻐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찾아가는 대신에 그 편지를 써 보냈던 것입니다. 나는 대단히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쓴 것입니다.” (공동번역 2:1-4)


 성도님들도 개역 개정 성경을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다른 번역 성경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새번역 성경이나 공동 번역도 좋고, 영어를 잘 하시면,  NIV 성경이나  RSV 성경도 도움이 됩니다.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2:5-8)


 앞장서서 바울을 대적했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써서 보내고, 교회의 치리가 이뤄져서,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는 공동체에서 받아주고 사랑을 보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외면하고, 교제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영영 공동체에서 버림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도 교회를 떠날 염려가 있으니, 참회하고 돌아온 성도는 공동체에서 잘 받아 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2:9-11)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켰지만, 회개하고 참회한 자들을 용서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하면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잘못한 것을 용서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용서하면, 예수님 앞에서 한 것이고 예수님의 용서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가장 어려운 순종이 바로 ‘용서’인데, 우리는 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 어떤 죄를 지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용서할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이 곧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탄은 우리가 계속해서 분노하고 정죄하며, 물고 뜯고 싸우게 만듭니다. 사탄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다툼이 있어도 적당히 하고 멈춰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이 그동안 성도들을 박해했던 일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위해(危害)를 가했던 자신의 행동을 회개하고 용서를 받지요. 바울도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는 동포들을 용서합니다. 믿음의 선조들을 용서하고 순교를 많이 당했습니다. 우리들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도 사탄에게 속아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사탄이 원수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2:12-13)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바울보다 먼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한 것은 ‘디도’였습니다. 아마도 이 디도가 바울을 대적했던 사람들을 치리했던 것 같은데, 그 치리 이후에 고린도 교회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물론, 훗날 디도를 만나서, 교회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위로의 편지로 고린도후서를 보내게 된 것이지요. 


  • 그리스도의 향기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2:14-17) 


 바울은 자신과 복음의 동역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로 비유합니다. 복음을 듣고 회개한 사람에게는 아주 냄새가 좋고 기쁨을 주는 향기지요.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냄새 맡고 싶지 않는 냄새가 됩니다. 사도 바울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냄새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진리로 살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정말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지만, 우리가 말씀을 버리고, 세상과 연합한 삶을 산다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악취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거룩히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진리를 따라 살면, 세상이 비록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뚜렷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지 않으면, 아무런 냄새를 피우지 않는 무색무취의 존재가 되거나, 변질되어 버린 음식처럼 악취를 풍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성도들 앞에서 그리고 세상 앞에서도 정말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향기가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주님의 본을 따라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여, 우리를 보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예수님의 작은 제자’로 인정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거룩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참으로 용서하게 하시고, 어리석게 사탄에게 속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염려하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녀, 형제, 이웃 등. 우리에게 큰 아픔과 근심과 염려를 주는 사람들을 우리들은 감당할 수 없사오니, 주님께서 맡아주시고, 변화시켜 주옵소서! 


 먼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주님처럼, 용서하게 하시고, 저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처럼 받아들이고 용서할 때, 우리는 참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끝까지 승리케 하옵소서! 주님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의 중심에 좌정하시어 이끌어 주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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