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사] 서약자 명단과 서약 내용 (느헤미야 10장)

 


  • 사역자 명단


 “그 인봉한 자는 하가랴의 아들 총독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바스훌, 아마랴, 말기야, 핫두스, 스바냐, 말룩, 하림, 므레못, 오바댜, 다니엘, 긴느돈, 바룩, 므술람, 아비야, 미야민, 마아시야, 빌개, 스마야이니 이는 제사장들이요”  (10:1-8)


 느헤미야 10장은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서약한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먼저는 총독 느헤미야이고, 그 다음은 제사장들입니다. 


 “또 레위 사람 곧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 중 빈누이, 갓미엘과 그의 형제 스바냐, 호디야, 그리다, 블라야, 하난, 미가, 르홉, 하사뱌, 삭굴, 세레뱌, 스바냐,  호디야, 바니, 브니누요.” (10:9-13)


 제사장을 도와 성소에서 섬길 레위 사람들이 이 서약에 동참합니다.  


 “또 백성의 우두머리들 곧 바로스, 바핫모압, 엘람, 삿두, 바니, 분니, 아스갓, 베배, 아도니야, 비그왜, 아딘, 아델, 히스기야, 앗술, 호디야, 하숨, 베새, 하립, 아나돗, 노배, 막비아스, 므술람, 헤실, 므세사벨, 사독, 얏두아, 블라댜, 하난, 아나야, 호세아, 하나냐, 핫숩, 할르헤스, 빌하, 소벡, 르훔, 하삽나, 마아세야, 아히야, 하난, 아난, 말룩, 하림, 바아나이니라.” (10:14-25)


 그리고 백성의 우두머리들인데, 레위 사람의 이름은 느헤미야 당대의 살았던 한 개인의 이름이나 백성의 우두머리는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가문의 대표 명칭’입니다. 그 증거로 기원전 537년 바벨론 포로 귀환 1차 명단과 일치합니다. 약 90여 년 전에 이 땅에 온 조상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 가문의 명칭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개인이 이 언약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첫 번째로 예를 들면, 바로스 가문의 대표가 나와 ‘우리 바로스 가문 전체는 이 언약에 동참한다.’ 하고 가문을 대표해서 도장을 찍고 인봉한 것입니다. 


 이 가문들을 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바로스'부터 19절의 '하립'과 '아나돗'까지는 옛 문헌에 기록된 1차 귀환 당시 유력 가문들의 이름과 순서가 거의 똑같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질서를 존중하는 행정적 규칙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귀족 가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맛브나이'부터 27절의 '바아나'까지는 이전 귀환 명부에는 등장하지 않던 새롭고 낯선 이름들입니다. 이는 페르시아 통치기 100여 년을 거치며 예루살렘 내에서 새롭게 부상한 신흥 지도자(민장)들이거나,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워 새롭게 가문을 형성한 인물들로 생각됩니다. 신생 가문이지요. 


 히브리어로 이름의 뜻을 풀이해 보면, 제각각입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바로스(Parosh)는 '벼룩'이란 의미입니다. 이런 이름을 가문의 명칭으로 쓴다는 것도 참 놀라운 일이지요. 바핫모압(Pahath-Moab)은 '모압의 총독'이란 의미입니다. 말룩(Malluch)은 '다스리는 자, 왕'이란 의미지요. 하림(Harim)은 '바쳐진 자, 헌신된 자'란 의미입니다. 이 서약에 합당한 이름입니다. 바아나(Baanah)는 '고난의 아들'입니다. 부모가 이 아들을 키울 때 상당히 고난을 많이 겪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느헤미야 시대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서명하지 않고, 황폐했던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조상들의 이름(바로스, 엘람 등)을 앞세워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는 "우리는 1차로 귀환했던 그 조상들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언약 백성이다." 라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한 강력한 역사적 연대의 표현입니다.


  • 서약의 내용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품이나 온갖 곡물을 가져다가 팔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고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10:28-31)


 서약자들은 이방 사람들과 교류를 끊겠다고 선언합니다. 가장 큰 것이 피가 섞이는 혼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은 소수이고, 이방 사람들은 다수라서 그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이방 사람과 교류를 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상을 섬기는 문화를 배척하고 여호와 신앙을 지키며, 그 신앙을 전파하고 퍼져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예 이방 문화에 동화될까 염려되니까 이방 사람들을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시에 선교의 문을 가로막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교제하고 사귀면, 컬트 집단화이 됩니다. 반면, 우리가 신앙도 별로 깊지 않으면서, 세상과 교제하고 짝하면,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강해지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세상이 우리에게서 영향을 받아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12제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세상에 동화되는 나약한 신앙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느헤미야를 비롯한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겠다고 서약합니다. 기본적으로 상거래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결단이 점점 핵심은 빠지고 형식만 남게 되어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도 배제시키는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안식년을 지킨다고 서약합니다. 안식년은 제 7년 째 마다 땅을 쉬게 하는 것이고 농사를 짓지 않고 내버려둡니다. 안식년에는 땅만 쉬는 것이 아니라, 빚 때문에 노예가 된 형제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되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10:32-33)


 느헤미야 때, ‘성소세’ 또는 ‘성전세’ 라는 것을 규례로 만듭니다. 원래,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첫 아들은 바치라고 하시며, 첫 아들들 대신 레위인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분을 성소의 세겔, 반세겔로 대신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 돈으로 성막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했는데, 이런 것을 느헤미야 때, 참조를 해서 성소를 섬기기 위해서 매년 삼분의 일 세겔을 세금으로 거두어 성소를 유지하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런 것이 중요합니다. 율법에 있으니까 지키고, 없으니까 안 지켜도 된다는 마음보다,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킬 수가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보고 공동체가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레위기의 말씀을 읽다가 ‘이삭줍기 운동’을 벌여서 각자 동전을 모아 가지고 일정한 시기에 특별 헌금을 드려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쌀을 사서 공궤하는 일을 매년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까 각 교회에 맞게 자기들의 형편대로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서 실행합니다. 이런 자발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억지로 시켜서가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바쳐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 (10:34)


 제사를 위한 나무(땔감)는 제비를 뽑아 돌아가면서 그 비용을 대기로 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유류비, 에너지 비용입니다. 제사 때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각 교회에서 구역별이나 세대별, 지역별로 일을 나눠서 하는 경우가 있지요. 예를 들면, 주방 봉사 같은 것입니다. 식사를 준비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을 누가 맡아서 할 수도 있지만, 온 교우들이 돌아가면서 순번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각 교회나 공동체에 맞게 결정하고 행하면 됩니다.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을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 한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 곳간의 여러 방에 두되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그릇들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10:35-39)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면서 첫 번째 수확한 곡식이나 과일을 드리겠다고 서약합니다. 저는 처음 회사에 입사해서 첫 월급을 모두 하나님께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형편에 맞게 하면 됩니다. 저는 처음 한 번만 그랬는데, 이 느헤미야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매년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약을 합니다. 여러분 매년 1월 월급은 하나님께 바친다고 서약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에는 거의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서, 산업이 없는 레위인들이 온전히 하나님만 섬길 수 있게 하겠다고 서약합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교회들이 십일조 이야기를 꺼내면, 사회에서 욕하고 물질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비난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들보다 더 믿음이 좋다는 것을 느낍니다. 십일조가 시험이 되어서 교회에 못 나온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분량대로 할 것이며, 자원해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먼저는 예배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이 우선 되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기 위해서 성숙하고 믿음이 자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그 믿음의 분량 껏 헌금은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를 비롯한 귀환자들이 조상의 헌신과 믿음을 닮아, 조상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고, 가문 대대로 지키겠다는 것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과연 남기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회개와 변화된 삶으로 영광을 돌리고, 후배들과 자녀들과 후손들 앞에서 본이 될만한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남기며, 우리의 후손들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서약을 하고,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며 아름다운 삶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느헤미야 시대의 사람들의 결단과 헌신이 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며 결단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도 이 좋은 모습을 본받아서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아름다운 삶을 남기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다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 길을 걷는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따르게 하시고,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물질이나 소중이 생각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자원하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게 하옵소서! 우리를 인도 하시는 선한 목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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