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장 새 언약의 일꾼, 4장 보배를 품은 질그릇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1-2)


 서양에는 ‘추천서’ 문화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학을 진할 할 때, 훌륭한 사람에게 추천서를 받으면,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요. 어느 지역에 목회자를 청빙할 때, 훌륭한 목회자나 선교사가 추천을 한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초대교회 당시에는 예수님께 직접 사사를 받은 사도들에게 받은 추천서라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사도들의 추천서를 받아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항상 대적들에게 말씀을 전할 자격에 대해서 공격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해서 생겨난 교회들이 친히 그 자격을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고린도 교회가 그렇습니다. 그 우상이 가득한 고린도 지역에 하나님의 교회가 생겨난 것은 바울이 잘해서 된 것도 있겠지만, 성령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바울이 에베소나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할 때, 충분히 바울의 자격을 증명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3:3-6)


 사도 바울과 함께 한 선교팀은 그들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종들임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을 멋진 표현으로 바꾸었는데,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바울만 새 언약의 일꾼일까요? 복음을 받아 다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곧 ‘새 언약의 일꾼’입니다. 이 일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계속 설명합니다. 


  • 옛 언약의 일꾼 vs 새 언약의 일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3:7-11)


 옛 언약의 일꾼의 대표는 ‘모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어기면, 그 율법을 어긴 사람은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두려워 했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으려고 율법을 지키고 무서워하고 따랐던 모세보다 복음으로 죽을 영혼을 살리는 일꾼이 더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직업으로 유추가 될지모르나, 검사보다 의사가 낫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은 죄인을 정죄하고 법대로 심판을 받게 한다면, 한 사람은 생명을 살리지 않습니까? 아무튼, 바울은 생명을 살리는 새 언약의 직분이 더 영광스럽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3:12-15)


 바울은 구약성경 출애굽기 34장 33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에 대해서 말하고 곧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립니다. 그것을 바울은 해석하시기를 ‘모세’에 대해서 너무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으로 얼굴을 씌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든 사람이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 집중하지 않고, 모세를 신격화합니다. 모세가 받은 율법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 율법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완성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 일에 함께 참여한 자가 바로 바울이요,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그런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3:16-18)


 바울이 아직도 모세의 그 수건에 집중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참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 진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영광의 광채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요한과 야고보는 변화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지요. 물론, 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영광의 주님을 보고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4:1-2)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직분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릅니다. 원래 바울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 주를 믿는 성도들을 대적하는 자였는데, 예수님의 긍휼을 입어,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주님을 전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으로 주의 복음을 전합니다. 자신의 옛 동료들(바리새인들)에게 떳떳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말씀을 전심전력하여 전하고 설득하며, 양심에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4:3-6)


 바울은 참 중요한 말을 합니다. 복음이 가려진 사람들은 아무리 지혜의 말로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을 안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있는데, 풀이해 보면, ‘사탄 마귀’입니다. 그도 역사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직 바른 복음을 들은 사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주’ 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새 언약의 일꾼) 고린도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세상이 창조될 때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셔서 어둠이 떠나고 낮이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내셨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 있던 고린도 지역이 깨어나게 되었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 빛은 사람들 마음에 비춰진 것입니다.




  • 질그릇에 담긴 보배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4:7-10)


 이 보배는 앞의 말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인데, 쉽게 말하면, 복음이요, 진리입니다. 좀더 확대 해석을 하면, ‘성령’이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자기 육체를 ‘질그릇’으로 비유합니다. 구약에 따르면, 사람은 흙으로 빗어져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환난과 어려움을 만나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삽니다. 마치 십자가가 죽음자체인 것처럼.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뒤에 부활하시고 영광의 새 몸으로 부활하셨듯이, 바울도 또한 부활의 새 몸, 영생의 몸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4:11-15)


 바울은 죽을 각오로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가장 확실하게 믿을 만한 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복음 때문에 죽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진심을 고린도의 성도들은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볼 때, 그의 말은 참 진리였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또한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만 그렇습니까? 진리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진리를 증명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제자들을 믿기 때문에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고린도 성도들을 믿기 때문에 이 복음의 진리를 다시 증거합니다. 만약 믿을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면, 왜 고린도 지역에 바울이 복음을 들고 왔겠습니까? 사도행전에 성령께서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라.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 하셨습니다. 바울이 그래서 복음을 전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바울의 예언적 고백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4:16-18)


 바울은 회심 후 자신의 전 생애를 주님을 전하는 데 헌신합니다. 이제까지 갖고 있었던 수많은 계획과 꿈과 이상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그것이 쉽게 포기할 일입니까? 다 포기하고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간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늙고 병들어 갑니다. 그러한 시간들이 흐르면서 더욱 바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영원한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5:1-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점점 늙어갈 것이고, 육체는 지치고 쇠약해 질 것이며,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장막은 무너질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일한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을 것이며 심지어 그 가운데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회도 하지 마시고, 슬퍼하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더욱 주목하고, 주님의 진리를 우리의 질그릇 안에 보배로 삼아 항상 기뻐하며, 이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때로는 악한 사탄이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속이려고 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빛에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영광의 주를 뵈올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영광의 광채가 빛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은 한 때 자신을 믿고 따랐던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을 배척하고, 어리석게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성도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박해와 환난 속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바울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보배를 품은 질그릇처럼, 그 보배 때문에 질그릇조차 가치가 있어진 것처럼, 생각했고, 질그릇이 깨어지면 오히려 보배가 빛났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보배를 품고 있는 주님의 일꾼이요, 거룩히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의 환난이나 실패나 몸의 질병 때문에 우리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 때문에 존귀하게 된 우리의 신분을 기억하며 기뻐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어떤 세상의 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해서 항상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품고 주님의 종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존귀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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