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의 지도자를 세우다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7:1-2)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느헤미야는 마침내 예루살렘 성 성벽공사를 마무리하고, 성문까지 달게 됩니다. 6장에서 52일 만에 완공했다고 하니까, 그 동안 쉴 틈도 없이 열심히 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치안과 행정을 담당할 지도자들을 세웁니다. 온 유다의 총독은 느헤미야이지만,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둔 것입니다. 두 사람을 임명하는데, 하나는 ‘하나니’(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이고 또 한 사람은 ‘하나냐’(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입니다. 둘다 이름이 비슷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니를 ‘내 아우’라고 했는데, 친 동생인지 아니면, 의형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혈연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고 평가합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이 중요한데, 그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지 평가하는 항목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맥이 중요한 것을 모두 알지요. 그러나 최고의 인맥(?)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예수님’과 얼마만큼 가까운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127:1)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약점도 있고,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실력이 있어도, 항상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환경이나 건강이나 물질이나 예산같은 것에 얽매여서 지도자로 세움을 받아도 아무것도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될 줄 믿습니다. 느헤미야처럼 항상 기도하며, 일을 하니까 성벽도 성의 문짝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그것부터 염두해 두고, 사람을 뽑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니와 하나냐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니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 (7:3-4)
성벽과 문짝이 완성된 직후, 성 내부의 인구는 적고 적들의 침입 위험은 여전했기 때문에 느헤이먀는 두 사람에게 특별한 지침이 내립니다. 첫째, 성문 개폐 시간입니다. 일반적인 성문은 해가 뜨면 열지만, 느헤미야는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기습 공격을 방지하고 보초병들이 완전히 잠에서 깨어 경계 태세를 갖춘 뒤에 열도록 한 조치입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를 때 파수꾼이 지켜보게 했습니다. 둘째, 주민들을 동원해 자기 집 맞은편 성벽을 순번제로 방어하는 민관 합동 자치 방범시스템을 확립했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인구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성 안의 넓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밭을 일궈야 했습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면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려고 하겠지만, 빈 터가 많을 때, 사람도 많지 않으면 누가 들어와서 집을 짓고 살려고 하겠습니까? 유다 지역도 넓고 예루살렘처럼 황폐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성 안에 오늘날처럼,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까지 해야 합니다. 그것은 더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지요.
이주자들의 계보와 수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동하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시므로 내가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었는데 거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와 각기 자기들의 성읍에 이른 자들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와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7:5-7)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 안으로 돌아온 백성들을 정착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계획으로 돌아온 이주자들의 계보를 등록하게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주민등록과 호적제도(기본증명서)이지요. 그런데, 이전 이주자들의 자료를 찾다보니, 1차 예루살렘 귀환자들의 자료를 획득하게 됩니다. 스룹바벨 총독 때 조사가 된 것이지요. 느헤미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약 90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가장 먼저 언급된 이름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입니다. 그 뒤에 계속 여러 사람의 이름들이 나오는데, 아마 스룹바벨과 예수아 이후에 언급된 사람들이 가장 최고위층의 사람들의 명단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스룹바벨 총독 시대에도 동명인 느헤미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서의 느헤미야는 BC 444년 시대 사람이니까, 약 90년 뒤의 인물입니다. 에스라 2장에서 바벨론 포로 1차 귀환자 명단이 나오는데, 느헤미야는 에스라의 기록을 인용한 듯 보입니다. 에스라의 명단에는 11명의 지도자가 나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모르드개 앞에 ‘나하마니’를 추가했습니다. 아마도 12명의 숫자를 맞춘 것은 12지파의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상징하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가문별, 지역별로 숫자가 완전히 동일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총인원은 같습니다. 그래서 필사본 사이에 오차가 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로스 자손이 이천백칠십이 명이요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이요 …” (7:8-60)
제가 일일이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가문과 지역으로 언급된 사람 숫자를 세면, 31,089명입니다. 에스라 2장에서 계산해 보면, 29,818명입니다. 그런데, 뒤에서 총 인원은 42,360명으로 동일하게 언급됩니다.
“온 회중의 합계는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42,360)이요.” (7:66)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히브리어 자음에 점을 찍어서 숫자로 표시했었는데, 점이 잘못 찍히면, 숫자가 바뀔 수 있습니다. 기원전 538년경 작성되어 보관 중이던 1차 포로 귀환 공식 명부의 원본을 필사할 때, 전승되어 왔던 사본에서 그런 오류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본문에 따르면, 계보도 확실하지 않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로 남유다 사람들, 그러니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나 유력 가문의 사람들을 명단에 넣었고, 북쪽의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은 유다 왕국보다 더 일찍 멸망했기 때문에 계보가 잘 남겨지지 않았습니다.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7:61-65)
올라온 사람 중에는 자신이 제사장이라고 했는데, 명단에는 없어서 제사장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제사장들이 제사 후에 받는 제사장의 몫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유사(?) 제사장이지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 이후 금송아지를 섬기는 제사장들 가운데, 돈을 받고 제사장이 된 레위지파 출신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의 후손일지도 모르지요. 지도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제사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종으로 세운 사람들이 아닌데, 이 땅에서는 목회자나 신학자나 선교사 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 충격적인 사실이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우림’과 ‘둠밈’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이나 판결을 묻기 위해 사용하던 신성한 제비(신탁 도구)입니다. 대제사장의 의복 중 가슴에 착용하는 '판결 흉패' 안쪽에 넣어 보관했습니다(출 28:30). 좀더 자세하게 우림 (א֥וּרִים, Urim)은 히브리어 '오르(אוֹר, 빛)'의 복수형으로, 보통 '빛들(Lights)'로 번역됩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레프(א)'로 시작하지요. 둠밈 (תֻּמִּים, Thummim)은 히브리어 '톰(תֹּם, 온전함, 진리, 성실)'의 복수형으로, '온전함(Perfections)' 또는 '완전함'을 뜻합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인 '타우(ת)'로 시작합니다. 처음과 마지막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두 단어의 조합을 두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고 참된 판결'을 상징합니다.
아쉽게도, 성경 본문에는 우림과 둠밈의 정확한 재질이나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또 바벨론 포로기를 거쳐 스룹바벨과 에스라 시대를 지나면서, 대제사장이 갖추었던, 우림과 둠밈같은 성물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는 ‘지성물’을 먹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전통이 예수님 시대에는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로마 시대에 대제사장들은 우림과 둠밈을 찾았는지, 없어도 지성물을 먹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전에 ‘성만찬’을 지정하셨지요.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상징하는 빵을 나눠 주시며, 제자들에게 이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느헤미야 7장 65절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봉인해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떡(진설병)은 곧 예수님의 살입니다. 성도들은 성찬식에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요.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은 예수님의 도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계시록에서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시며, 진리와 빛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실 분입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님은 우리 모든 성도의 대제사장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성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베드로 사도는 우리 성도들을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레위인도,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지만, 에스라나 느헤미야 책에도 명단이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지성물(?)을 매년(?)마다 먹고 마십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 때문에 이뤄진 일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보답을 해야 할까요?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총독은 금 천 드라크마와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드라크마와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 (7:70-72)
귀환 공동체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세우는데, 힘과 열정을 쏟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우리의 물질과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힘써야 할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찾아서 주님을 섬기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루살렘 성을 지키는데, 느헤미야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세워 안보와 치안, 행정까지 맡게 합니다. 우리 나라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들이 세워져,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느헤미야는 이주자들의 명단을 확보하였고, 다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백성들의 이주를 권장하며, 예루살렘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힘썼습니다. 개척자들의 신앙과 믿음, 행동들을 본받아, 저희들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다시금 부흥의 역사가 이 땅 가운데 일어나게 하옵소서!
점점 쇠퇴해 가는 교회들이 다시금 힘을 모으게 하시고, 저 북한 땅에도 다시 교회가 세워지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드릴 수 있는 정성을 모아 최선을 다하게 하시고,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감당케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우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