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눈물의 편지 (1) (고후 10-11장)

 


  • 고린도후서(1-9장) 전에 쓴 ‘눈물의 편지’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10:1-2)


 고린도후서 1장부터 이어온 9장까지의 내용과 10장부터는 사뭇 다른 어조로 바울 사도가 말을 합니다. 아마도 학자들은 이 10장부터 13장까지가 고린도후서 앞에 디도를 통해 보냈던 ‘눈물의 편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바울은 지금 고린도 성도들 전체를 대상으로 이 부분의 글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선교팀을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규정한 어떤 특정한 부류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아마도 가만히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이단 사이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을 육신의 약점을 가지고 공격을 합니다. 바울은 육신에 따라 행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오해를 살 부분은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강조하지 않았지만, 디모데를 할례시킨 것은 같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유대 전통 문제로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바울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앞으로 10장, 11장 계속해서 바울의 변명을 통해 대적자들이 생각하는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라는 의미를 더욱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10:3-6) 


 사도 바울도 어느 정도는 ‘육신으로 행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어떤 특별한 기적이나 환상이나 어떤 영적인 카리스마로 교회를 치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말로써 전한 ‘복음’이 많은 사람의 생각과 이론과 사상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지 않습니까? 물론 그 뒤에 역사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박수와 무당 같은 사람들을 관찰하면 어떤 이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뛰기도 하고 점프를 하기도 합니다. 일명, ‘작두를 탄다’고 하지요. 그것을 본 사람들은 대단하게 여기면서, 그 사람에게 귀신이 씌여서 그런 일을 한다고 믿게 되고, 그런 무당의 말을 신뢰하게 하지요. 사도 바울은 어떤 때에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 여러 이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항상 그런 이적을 보여 가면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아주 인격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전하여도 하나님의 진리는 진리입니다. 그것을 거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거스르는 것이 되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이는 내가 편지들로 너희를 놀라게 하려는 것 같이 생각하지 않게 함이라.” (10:7-9)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인들은 무게를 잡고, 목소리를 깔면서 말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굉장히 대단한 어떤 영적인 능력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외소한 풍채와 여기 저기 온 몸에는 상처 투성이라, 볼품이 없었습니다. 어떤 문헌에는 바울이 대머리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울보다 풍채가 크고 목소리가 걸걸한 사람이 와서 전한 말씀은 더 비중이 있고 맞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0:10-13)


 바울은 대적자들처럼, 웅변식으로 크게 소리치거나 위압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항상 조용조용하게 편안한 대화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의 강의를 듣다가 졸다가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란 청년이 등장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면서, 자신들이야 말로 최고의 지혜자로 자처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자랑은 하나님의 택하신 종이라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규범으로 이루어 놓은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10:14-18)


 대적자들은 자신들이 교회를 세우거나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에서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남이 세운 교회에 가서 자신이 잘랐다고 떠들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가 없는 곳에 교회를 세울 뿐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야만인이나 유대인이나 헬라인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증거했고, 여러 가지 짐을 지우지 않고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주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가만히 교회에 침투하여 성도들에게 자신의 사상과 지혜를 주입하고 복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섬기기 보다, 대적자들을 따르게 만듭니다. 진짜 상급과 칭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실 것입니다.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나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자랑할 것은 주님 앞에 우리가 섰을 때에 주님께서 내리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우리들도 다만 예수님만 높이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본분입니다. 우리가 자격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오직 주님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주님의 사역에 동역하며, 십자가를 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며 칭찬과 상급을 내리실 것입니다. 


  • 바울의 염려로 인한 자격 증명.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11:1-3)


 바울이 태초에 아담과 하와 곁에 등장한 뱀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 것처럼 거짓 사도들의 꾀임에 고린도 성도들이 넘어갈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의 참된 종임을 증명하기 위해 거짓 사도들처럼 자신을 자랑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별로 내세우고 싶지 않지만, 세상의 논리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11:4-6)


 바울의 대적자들은 ‘다른 예수’를 전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 또한 다른 복음으로 고린도 성도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참된 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바울만큼 율법에 해박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바울은 비록 예수님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배운 제자는 아니지만, 그러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도가 된 사람들과 비교해서 바울은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갖춰진 사람입니다.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11:7-9)


 바울의 대적들은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들이 강의(?) 또는 설교를 하면서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자신들은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비싼 강사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바울은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바울은 혹시라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돈’ 때문으로 생각할까봐 자신의 사례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선교비와 생활비는 이미 세워진 다른 교회에서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마저도 부족할 때에는 직접 일하면서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이것을 비방하고 깎아 내리는 자들이 거짓 선생이요, 거짓 사도들입니다. 


 만약, 이들이 정당하고 바른 사역자들이었다면, 자신들이 받는 사례비에 감사하고, 사례를 받지 못한 바울 사도는 더 훌륭한 분이라고 높여 줘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를 후원하고 돕자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에게 감사함을 표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무슨 연유로 고린도 교회에서 강사료(?)를 받아야 합니까? 누가 부른 적도 없는데. 교회가 고맙고 감사하게 여겨서 사례비를 주면, 감사하게 받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그만입니다. 왜 비방을 합니까?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나는 내가 해 온 그대로 앞으로도 하리니 기회를 찾는 자들이 그 자랑하는 일로 우리와 같이 인정 받으려는 그 기회를 끊으려 함이라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1:10-13) 


 사례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 중요한 것은 진리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배우고 알게 하여,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많은 강사비(?)를 받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거짓 사도입니다. 성도들도 속이는 일꾼에게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신앙은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요, 그래서 사람에 따라 흔들리기 쉽상입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11:14-15)


 거짓 사도의 우두머리는 사탄입니다. 항상 속여 왔습니다. 우리 시조때부터. 지금도 속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진실하게 믿고 따르지 않으면. 그 졸개들이야 사탄이 하는 짓을 그대로 배워서 따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배워서 항상 진실하며 정직하게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바울의 자랑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11:16-21)


 바울이 이제 거짓 사도들처럼, 외적인 것으로 화려하고 자신을 내세웁니다. 이것은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리석은 고린도 성도들이 그런 것을 듣고 하나님의 큰 종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비꼬면서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11:22-27)

 

 바울의 자랑에 비추어 보면, 바울의 대적자들은 ‘히브리인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랑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위해서 죽기까지 고생하거나 환난을 참고 인내하기 보다, 주님의 영광만을 취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고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성도들에게 다가와 영광을 받고, 대접만 받으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참 종인 것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고 고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복음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놓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목숨까지 거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왠만한 금액으로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돈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것을 드리고 목숨까지 내놓고 헌신한 분입니다. 그런 고통과 고난보다도 교회를 염려하고 성도들의 성숙되지 못한 모습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그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서 주야로 기도하며, 편지를 쓰고, 사람을 보내는 노력들을 했습니다. 누가 진짜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1:28-33)


 바울은 이제 육신적인 방법이 아니라, 영적인 방법으로 자랑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약한 중에도 하나님께서 바울을 들어 쓰셔서, 모든 것을 감당케 하시기 때문에 결국에는 주님만을 찬양할 수밖에 없고 영광은 주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들어 쓰실 수 있게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주님을 의뢰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바울도 어려움과 고난 중에 주님을 의지하여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하였듯이 우리들도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더 의지하며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게 하옵소서! 


 어리석은 세상처럼, 세상의 안목으로 자랑하거나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며 본을 보이며 전하게 하소서! 우리의 이웃과 형제 자매들과 자녀들에게 거짓 없는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우리의 약함보다도 그 중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게 하시고, 죄악을 이기며, 승리케 하옵소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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