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눈물의 편지 (2) (고후 12-13장)


 

  • 바울의 ‘환상 체험’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12:1-2)


 바울은 환상 중에 하나님 보좌에까지 다녀왔다고 자랑합니다. 이 자랑을 할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거짓 선생들의 자랑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하늘 나라를 본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런 체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신실하게 주님의 종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마치 제 3의 인물처럼, 소개합니다.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던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을 그렇게 소개합니다. 마치 제 3자가 본 것처럼 하는데, 몸 밖으로 ‘유체이탈’ 하여서 영적인 체험을 합니다. 이런 것은 보통 죽음 이후에 영혼이 빠져나가 우리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가 열리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12:3-4) 


 사도 바울은 그 셋째 하늘은 ‘낙원’으로 표현합니다. 고대 유대인들의 사고에서 첫째 하늘은 구름과 비를 내리는 대기를 말합니다. 이곳에서 새들이 날고, 이슬이 내리고 합니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이 우주 공간에 공중 권세를 잡은 타락한 천사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셋째 하늘은 ‘낙원’인데, 의로운 사람들이 거하는 곳으로 여깁니다. 이런 곳에 바울이 환상 중에 다녀왔고, 그 안에서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마도, 이 셋째 하늘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지 못하도록 바울이  단단히 약속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12:5-6)


 신앙 생활을 하다가 잠시 수련회를 떠나면 몇 일을 지내면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은혜를 받으면,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낙원에 대한 큰 소망이 생기고, 그 말씀 속으로 빠져 들면, 일상 생활이 멈추고, 계속 영원의 세상만 꿈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현실 세상에서 맡겨진 일을 하지 않고, 사회와 격리되는 불상사가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질까 하여 더 깊이 있게 바울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2:7-9)


 바울은 큰 체험을 했고, 환상 가운데 낙원이 어떤 곳인지 보았지만, 현실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증언하며,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일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울도 종종 이 땅을 떠나서 빨리 안식의 세계, 낙원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상 속에 멍(?)때리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 병이 무엇인지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는데, 간질인지, 안질인지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눈’에 관한 질병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태양보다도 더 밝은 주님의 빛에 눈에 비늘같은 것이 생겼다가 떨어졌다는 것이 다른 성경에 언급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여러 번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 질병을 좀 고쳐 달라고 간구했지만, 주님께서는 거절했습니다. 만약 바울이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서, 이 모든 업적(?)이 자기가 한 것이라고 교만해질까 주님께서 이 질병을 더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수많은 대적자들이 바울을 향해 자기 병도 하나 못 고치면서, 남을 어떻게 고치겠냐고 비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면,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건강한 바울이라고 해 봅시다. 그러면 병든 자들은 혹시 고침을 받았을 때, 바울이 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치지 않고, 복음을 믿은 성도들이 나음을 얻으면, 주님께서 한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병을 고치는 능력자가 있다고 해 봅시다. 자기 몸에 병이 걸렸으면, 제일 먼저 자기부터 고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할 때, 나음을 얻은 성도는 바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에게 안수기도 받으려고 하면, 수천 만원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목사가 있다면, 사기꾼이요, 거짓 목사일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도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요. 만약 바울처럼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라면, 바울처럼, 그러한 은사를 가진 목회자를 주님께서 그냥 놔두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12:10)


 바울이 우습게 보여야, 많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바울은 자신이 약해지던지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높아지고,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이 일어나면 된다고 믿기에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능욕을 받고 궁핍한 바울을 보고서,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기꺼이 주님께 나아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 참 주의 종의 모습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12:11-12)


 바울이 말하는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인내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입니다. 바울은 억지 같은 소리를 듣고 참고 견디었습니다. 사람들이 부당하게 바울을 대하고 무시해도 참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했지요. 복음이 전파된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 예수님처럼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이러남으로 사도됨을 바울은 증명했습니다.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 (12:13)


 바울이 고민해 보면,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고는 다른 교회처럼, 사역에 후원금을 거두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교회들처럼 구제사역이나 복음 사역에 함께 짐을 나누었다면 이런 불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고린도후서 8,9장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독려했는지도 모릅니다.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12:14-17)


 바울이 디도를 보냈고, 이제 다시 가서 고린도 성도들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3번째 방문에도 헌금이나 후원금을 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도와주고 베풀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물질 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 자신을 내어 주겠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래도 바울의 흠을 잡으려는 악한 자들은 어떻게든 고린도 성도들을 속이려고 들 것입니다. 


  • 바울의 두려움 (고린도 성도들의 회개치 않음)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12:18-21) 


 사도 바울은 미리 디도 편에 눈물의 편지를 보내지만, 이런 권면도 소용이 없다면 어떻할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가장 큰 것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도 어렵지만, 하나님도 참 어려운 영역입니다. 너무나도 쉽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다 회개시켜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분도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앞에서 앉아서 듣는 사람도 확실하게 변화되지 않지요? 단번에 예수님처럼 변합니까? ‘사도 바울도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듯이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강원도 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 만드신다고 천 년을 교육하고 훈련을 시켰는데, 잘 따릅니까? 결국에는 우상 숭배로 멸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사람에게서 답이 없기 때문에 오죽 답답하셨으면, 단 하나 뿐인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셨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순종을 모든 사람들의 순종으로 인정하시고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십니까? 다 안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닙니까?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고 어쩌면 평생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두렵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 디도를 보내도 해결이 안 되면, 어쩔까? 수년의 수고와 복음 전파가 헛된 일이 되지는 않는 지 두렵지 않겠습니까? 


  • 바울의 결단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13:1-3)


 바울이 이제 적극적으로 교회 안에서 훼방을 놓는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리할 것을 결단합니다. 설사,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죽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영혼은 다시 살리실 것으로 믿고, 담대하게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고 결단합니다. 그냥 치리하는 것이 아니라 2-3명의 증인으로 정확하게 거짓 풍문을 누가 떠들었는지 잡아서 확실하게 정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 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13:4-7)

 

 심지어 바울은 거짓 선생들과 거기에 휩쓸린 성도들을 치리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결의를 가지고 나섭니다. 혹시 악한 자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순교를 당해도 고린도 성도들만큼은 하나님의 뜻 안으로 돌이키게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넘어뜨리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한을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3:8-10)


 사도 바울이 제발 이 글을 읽고 주님 품으로 돌이키라고 마지막으로 당부를 합니다. 바울도 자식같이 사랑하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기는 원치 않습니다. 이 편지를 가져 가서 잘못을 바로 잡는 디도가 바울이 다시 가서 할 일이 없겠금 하기를 원하지요. 여기까지가 바울의 눈물의 편지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다행히도 디도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고린도 성도들의 회개함의 좋은 소식을 전해서 논조가 누그러지고 위로하는 위로의 편지(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 바울의 마지막 권면과 끝인사.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13:11-13)


 마지막 13장 13절은 우리 개혁교회가 축도로 쓰는 문구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먼저 했고, 우리 목회자들은 여기에 살을 붙여서 이 틀에다가 설교의 핵심적인 부분을 붙여서 끝을 맺습니다. 


 항상 성도 안에서 서로 연락하고 위로하고 중보적 기도하며 주님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항상 공동체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 각자 한 사람은 연약하지만, 교회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세가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사용하여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죄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거룩한 성도가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에게 보여 주셨던 환상과 계시를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옵소서! 사도 바울처럼, 확신과 체험이 있는 신앙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교만해 질 염려가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주 앞에 항상 겸손하게 하옵소서! 육체의 가시가 없이 항상 주를 경외하기를 간구합니다. 저희들이 주님 나라를 위해 수고와 헌신하게 하시고 바른 기도로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시원케 해드리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안에 항상 주님의 권능을 주셔서 마귀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혼을 구원해 내는 놀라운 은총이 있게 하옵소서! 아름다운 열매맺기를 바라오며,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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