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에 대한 소개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8:16-19)
디도는 그리스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볼 때, 확실한 이방인입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5장에 따르면 예루살렘 공의회(AD 48-49 경)에 바나바와 함께 디도도 동행했습니다.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출신 개종자에게 할례를 강요했지만, 바울은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게 했습니다. 이신칭의 혹은 이신득의, '율법(할례)없이 오직 믿음과 은혜로 구원얻음'을 증명하는 승리였지요(디모데가 유대인 어머니를 두어서 선교적 유연성을 위해 할례를 받은 것과 대비됩니다). 언제 디도가 예수님을 믿었는 지 분명하지 않지만, 의사 누가인 형의 전도로 믿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사도 바울을 도와 고린도 교회의 위기를 해결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파 갈등, 도덕적 타락, 거짓 선생들의 침투로 바울의 권위가 무너지고, 복음의 위기가 찾아오자, 바울을 대신하여 '눈물의 편지'를 직접 전달하고 현장을 수습한 인물입니다. 디도는 탁월한 지도력과 영적 담대함, 진정성 있는 인격으로 고린도 성도들의 회개를 이끌어냈고, 마게도냐에 바울과 재회하여 큰 위로와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구제 헌금 사역의 책임자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8:21-24)
디도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고린도 교회들의 거액 모금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돈과 관련된 민감한 사역에서 디도는 금전적 탐욕이 전혀 없고 청렴결백하여 모든 교회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좀더 ‘디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면, 사도행전 마지막에 로마에서 바울이 가택연금 상태에서 복음을 전할 때 디도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 1차 투옥에서 풀려난 후 디도와 함께 크레타(그레데) 섬을 방문하여 전도한 뒤, 디도를 남겨두었습니다. 당시 크레타인은 고대 세계에서 "거짓말쟁이, 악한 짐승,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딛 1:12)라는 악명이 높았습니다. 디도는 각 성에 경건한 장로와 감독을 세워 교회 행정을 정비하고, 영지주의적·유대주의적 혼합 이단을 단호히 논박하는 중책을 완수했습니다. 바울이 순교 직전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 데살로니가로 떠났지만, 디도는 새로운 선교지인 달마디아(Dalmatia, 현대 크로아티아 연안)로 파송되었습니다(딤후 4:10).
성도를 섬기는 연보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9:1-5)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빌립보, 베뢰아, 데살로니가 등)에 가서는 고린도 교회가 연보를 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편지를 써서 보내기 1년 전부터 그런 말을 했는데, 준비된 헌금을 함께 모아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자 할 때, 준비되지 못한 모습이 보이면 참 난감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연보(구제헌금)가 잘 되고 있는 지 편지를 써서 확인합니다.
바울이 선한 일에는 교회들마다 경쟁을 부추킨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슨 일에든지 앞장을 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성도를 돕는 일에도 최고가 되고 싶은 열망을 잘 이용(?)한 것 같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과 아가야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연보에 힘써서, 어떻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이방인 교회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고 있으니, 예루살렘 교회도 이방인 교회들에게 대해서 마음을 넓히고, 서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고 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9:6-7)
한편으로 구제 헌금에 대해서 강권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바울이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구제헌금을 드리라고 합니다. 바울이 시켜서 마지못해서 헌금을 낸다면, 인색할 수밖에 없지요. 마음에도 없던 일인데,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대면한 것도 아니요, 만나서 교제를 한 것도 아니지만, 바울을 통해서 들은 복음의 시작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복음이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 되었으면, 그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반대로 이방 교회가 물질로 돕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9:8-9)
‘구제’는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도가 구제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쓰인 이방 교회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 나누는 이방 교회는 더 많이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구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착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9:10-12)
농부들은 곡식 낱알 중에서 가장 충실한 것들을 모아서 다음 농사에 쓸 씨앗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해의 추수 때에도 풍성하게 거두지요. 마치 그런 것처럼, 고린도 교회가 연보(씨)를 통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농사 지을 때 필요한 풍성한 추수와 함께 또 그 다음해 씨를 허락하신다고 교훈합니다. 바울은 이 구제 헌금 사역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면서, 도움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도 감사가 넘치겠지만, 이렇게 드린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의 복을 받아 더 풍성하게 될 것이니까 또한 감사가 넘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9:13-15)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연보를 할 것으로 믿고, 미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성도를 섬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헌금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도 그 사람을 믿음이 있다고 보겠습니까? 교회가 직분자를 세울 때, 일상 생활을 다 살펴 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보편적으로 십일조와 감사헌금 같은 교회 생활 안에서 어떻게 헌금생활을 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회의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겠습니까? 자기도 헌금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의 돈을 관리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그러할 진대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진실하게 하나님의 것을 바치고 드리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은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내가 일해서 벌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닙니다. 가령 월급 속에는 하나님의 것이 있고, 내 것이 있고, 남의 것이 있습니다. 이 물질을 잘 나누어 드릴 줄 알고 쓸 줄 알아야 하나님 앞에서 참된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인색하게 굴지 말고, 또한 하나님의 것을 낭비하거나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와 우리의 자녀들과 이웃을 위해서 올바르게 잘 씀으로 봉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바울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는 주님 앞에 인색하거나 억지로 헌금을 드리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예배드리는 일, 예배당에 나오는 행동조차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자원하여 예배하며, 주님께서 맡기신 사역도 하고, 물질도 드리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누리고 쓸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늘 잊지 말게 하시고 자원하여 드리고 섬기며 이웃과 나누면서, 우리보다 어렵고 가난한 성도들을 살피고 돕게 하옵소서! 지혜롭게 하시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주님께 드리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생명까지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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