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사]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 01장)

 


  • 에스라의 개혁 이후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들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 제 7년 1월에 예루살렘으로 출발했고, 약 4개월이 지나 5월에 도착해서 모든 성전에 쓸 기구와 물품들을 전했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뒤에 보니까 이방 여인과 통혼한 가정이 너무 많아서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옷을 찢고, 수염을 뜯고 재를 뒤집어 쓰고 앉아서 회개하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는데, 그 해 12월까지 조사하여서 해가 바뀐 1월에 마무리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 8년째(BC 457년)입니다.   


 에스라가 강제로 이혼하게 만들고, 이방 여인들과 자식들을 쫓아 보냈습니다. 그러면 이방 민족이 가만히 당하고 있었겠습니까? 그 이방 민족이 때를 지어가지고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는 일까지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려서, 에스라가 하는 짓이 가정을 파괴하고 제국의 안녕을 해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고발이 있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에스라의 총독의 권한은 정지되고,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지도자 정도로만 예루살렘에 남아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 페르시아 제국에 또 한 명의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수산 궁에서 예루살렘 귀환자들의 소식을 전해 들은 ‘느헤미야’입니다. 


 본래, 느헤미야서는 에스라서와 함께 붙어 있었던 성경입니다. 성경학자들이 면밀하게 읽어보고 조사하면서, 한 사람의 글이 아님을 알고, 책을 나누게 됩니다. 그것이 느헤이먀서이지요. 느헤미야는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 입니다. 에스라와 2차 귀환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을 꿈꾸며 다윗 왕조를 흥왕케 하려고 고생하며 제 2의 건국을 하려고 했는데, 에스라가 너무 급진적인 정책을 펼치다가 그만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 1:1-3)


 아닥사스다 왕 12년이면 벌써, 에스라가 개혁한 지 약 5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이 때 수산궁에 머물던 느헤미야는 유다 땅에서 온 ‘하나니’라는 사람에게 예루살렘의 상황을 듣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방 민족의 침입으로 사로잡혀 간 자들이 있었고, 예루살렘 성문은 불타고,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방 민족의 침입은 왜 일어났습니까? 에스라가 이방 여인들과 사람들을 쫓아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닙니까? 충격적인 소식이지요. 


 주님의 일을 하려고 갔던 에스라와 2차 귀환자들이 가자 마자, 큰 어려움을 당했는데, 벌써 세월이 몇 년이 흐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선교사님들이 이방 나라, 낯선 땅에 들어가자 마다, 별로 선교도 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붙잡혀서 고초를 당하거나 순교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왜 주의 일을 하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처신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복음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에는 환난이나 박해나 순교까지도 있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아무런 어려움도 환난도 없을 것으로 알면 큰 착각입니다. 


  • 느헤미야의 기도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1:4-5)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립니다. 앞으로 기도의 내용을 읽겠지만, 내용을 유추해 보면, 예루살렘의 평안과 안녕을 기도하고, 선조들의 땅에서 새로운 다윗 왕조가 기틀을 잡을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느헤미야는 먼 땅에서 선조들이 살았던 곳에 좀 어려움이 있나보다 하면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귀환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자신의 일인 것인냥 매우 고통스러워 하면서, 그 아픔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고 있지요. 이런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아쉽게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고 하면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넘기는 사람들이 지도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자기들 오락과 쾌락에 빠져 즐기기에 바쁘지요.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1:6-7)


 느헤미야는 기도에서 먼저 자기와 조상의 죄를 고백합니다. 사실, 느헤미야가 무슨 우상을 섬기거나 다른 신을 섬겼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를 지금 자복하고 있습니다. 조상 적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다가 바벨론 제국에 멸망 당해서, 계속해서 옛적 고향 땅으로 가지 못하고 다른 민족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부터 도출된 죄를 계속 참회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사정과 환경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방 땅에서 어떻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으며, 노예 생활하는 주제에 안식일이라고 이방 주인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안식일이라도 나가서 농사를 지으라고 하면 나가서 일해야 하고, 이방 제의에 참여하라고 하면 해야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다라고 그냥 저냥 사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느헤미야는 철저하게 자신과 부모의 죄까지도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이런 회개를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옛 관습과 인습에 빠져서 모르고 짓는 죄도 참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어쩔 수 없다라고 그냥 넘어가는 대다수가 있는 반면, 소수지만, 정말 한 가지라도 더 하나님 마음에 맞도록 애쓰고, 말이나 행동을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더 귀히 여기실까요? 바로 느헤미야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느헤미야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조상의 죄까지도, 고쳐야 할 것을 되돌아 보면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완전할 순 없어도 하나님께서 그런 회개하는 자들을 어여쁘게 보셔서,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먼저 우리의 죄를 돌아보고, 철저하게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응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먼저, 회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1:8-11)


 느헤미야의 구체적인 기도의 내용은 다 나와있지 않지만, 핵심적인 간구사항이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자기 홀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서 일할 수 있도록 권세를 요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데,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술 관원이 무슨 대단한 권세일까 싶지만, 왕의 지근거리에서 왕의 호의를 받을 수 있는 위치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일종의 경호실장처럼 지위가 높은 관리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파견을 가다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2:1)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 1월은 BC 444년 경입니다. 느헤미야가 술 관원이 되어서 벌써 약 8년이란 시간이 흐릅니다. 그 동안 느헤미야는 왕 곁에 서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결과겠지요. 항상 예루살렘 귀환을 염두해 두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고, 깊은 고뇌 중에 그런 근심과 걱정이 왕 곁에 있을 때에 얼굴에 드러납니다.  신하는 항상 왕 앞에서 밝은 얼굴로 대해야 하는데, 자칫 하면, 왕의 오해를 불러서 역모죄로 큰 국문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은연 중에 근심의 얼굴로 왕 앞에 선 것입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2:2-5)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무슨 일인지 묻게 되고, 느헤미야는 그 짧은 찰나에 하나님께 묵도(기도)를 하고 예루살렘 귀환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참 슬기롭게 말합니다. 유대 땅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조상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성문이 불탔다고 하면서, 별로 큰 문제는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도 에스라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이라는 언급이 없이, 그저 묘실의 성문이 잘못되었으니, 조금만 도와 주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유도한 것이지요.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2:6-8)


 아닥사스다 왕이 허락합니다. 어느 정도 도와 주면 되겠냐는 질문을 하는데, 그때 왕후도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가 기회이지요. 왕후가 옆에 있는데, 한 입으로 두 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올 수 있는 시간을 12년 요구합니다. 이 앞 장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뒷부분까지 읽으면, 느헤미야가 어느 정도 요구했는지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기도해 왔던 예루살렘 귀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페르시아 황제를 통한 승낙을 하신 것이며, 여러 가지 재물과 인력을 공식적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9-10) 


 에스라와는 다르게 느헤미야는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왕으로부터 군대와 마병까지 얻습니다. 그리고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은 시리아와 암몬쪽 총독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에스라의 개혁에 이방 민족으로서 큰 반대를 했던 자들입니다. 또 다시 유대 총독으로 느헤미야가 부임한다는 페르시아의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유대인이 온다는 소식으로 그들은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에스라의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큰 난관에 봉착하고 이방 민족의 침입(어느 정도 자초한 일이지만)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에스라를 비롯한 제사장들이나 그 개혁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부르짖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느헤미야가 올 때까지 십 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느헤미야가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준비시키셔서 일하시는데, 준비된 사람이 없으면, 수십 년이고 수백 년이고 일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준비하시고 이 땅에 보내실 때에도 헌신하는 마리아나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사람을 준비시킬 때, 80년이 걸렸습니다. 바로 모세이지요. 왜 하나님의 사역이 이렇게 느리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됩니까? 사람이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님 앞에 매달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온 정성을 다해서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기 위한 계획과 준비를 해온 사람이 그 수년 동안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일하시려고 해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 말씀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 뜻과 고집대로 살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안 하셨다고 오해를 할 것인가! 바라기는 주님의 말씀 앞에 지금 나는 어떤 일로 주님을 섬겨야 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깊이 기도하고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재앙을 내리시는 일은 금방 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다릅니다. 꼭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인류의 구원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인카네이션), 이 땅에 오셔서 이루셨습니다. 그 비밀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진 성벽 앞에서, 대적들 앞에서 하나님 나라를 지켜내고, 새로운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적을 무찌르고 이길 수 있는 용감한 하나님의 군사를 찾고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이 느헤미야 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위로하심도 발견해야 하겠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느헤미야는 자기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와 가문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아버지 앞에 죄를 자복합니다. 우리들도, 형제의 죄악,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앞에 기도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느헤미야와 같은 신실한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준비되고 결단한 자에게 응답을 주시는 주님! 우리들도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박해를 받는 우리의 형제들을 위해 함께 일하며, 위로하며 짐을 나눠지게 하옵소서! 이 땅에 아직도 죄악이 관영한데, 주님의 진리와 의를 선포하게 하시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거룩한 성도로서, 주님의 군사로 일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대장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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