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사] 느헤미야의 귀환 및 사역 (느헤미야 2-3장)

 



  •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도착과 사전 조사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  (2:11)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황제의 조서를 가지고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무슨 환영 연회가 벌어진 것도 아닙니다.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독을 풀기 위해서 3일 동안은 몸을 쉬게 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일하기에 앞서서 사전 준비를 하는데, 이 느헤미야의 신중함은 참 본받을만 합니다. 예루살렘의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말을 듣고 즉흥적으로 무슨 해법을 제시하지만, 대개는 탁상행정일 뿐이지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에 예루살렘 부흥이라는 소망을 주셨는데,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전까지는 자기의 측근들에게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말부터 늘어놓는 것을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이 느헤미야가 항상 때를 기다리다가 기회를 포착해서는 적극적으로 담대하게 해 내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신앙도 있고, 용기와 실천력이 따라 줍니다. 그리고 자기 부하를 다스리는 통솔력과 지혜도 있습니다. 팔박미인(?) 같은 사람입니다.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2:12-13)


 예루살렘이 얼마나 훼파되고, 가난해졌는지, 총독 느헤미야가 탄 말 밖에는 성 안에 나귀새끼 한 마리도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대개는 목축을 했으니까, 양 한 마리 없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도 없고, 그 시대의 산업 기반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골짜기 문’을 나가서 보니까 용정(용의 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축이나 짐승을 먹일 물은 있습니다. 그리고 분문(직역하면 똥문, 순화하면 거름 문)이  나옵니다. 이런 문이 있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하수나 오물처리는 했다는 뜻입니다. 1장에서 유대 형제들의 말대로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이 전소되어 그 흔적만이 남았습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비참하게 낡고 쇠락한 것이지요. 


 “앞으로 나아가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서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그 밤에 시내를 따라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아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2:14-16)


 심지어 도로 상황도 굉장히 나빠서 짐승은 못 다니고 오솔길처럼, 겨우 한 두 사람만 지나갈 길도 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물 길도 조사합니다. 시내를 따라서 성벽 어느 곳을 통과해서 수로가 놓여 있는지 살핍니다. 예루살렘 성에 사람이 살려면, 충분하게 식수가 공급되어야 하지요. 느헤미야의 사전 조사가 다 마쳤습니다. 남들 눈에 띄게 조사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했습니다. 여러 수행원을 두고, 미리 행차를 알렸다면, 일부 느헤미야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마치 예루살렘 성은 괜찮은 것처럼 미리 손볼 곳은 손 보고, 느헤미야의 눈을 가리어, 좋은 것만 보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여행지를 인터넷에서 조사해 보면, 다 멋진 곳 같아서 가 보지만, 실제로 가 보면, 전혀 멋지거나 좋지 않은 모습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 성벽 재건 추진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2:17-18) 


 느헤미야는 홀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하지 않습니다. 유대의 방백들(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합니다.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 이방 민족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성벽 재건을 해야 할 당위성과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리더는 이런 자질이 필요합니다. 현실을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되고,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지요. 느헤미야는 이 모든 것을 갖춘 그야말로 실력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우리를 비웃어 이르되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너희가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에게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기억되는 바도 없다 하였느니라.” (2:19-20)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다시 옛 예루살렘의 영광을 회복시키려고 느헤미야가 나서자, 예루살렘 성을 파괴했던 대적자들이 느헤미야와 유대인들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산발랏은 시리아의 총독인데, 그가 에스라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을 반역하려고 한다는 프레임을 씌워서 모함하고 거짓 풍문을 퍼뜨립니다. 느헤미야는 거기에 전혀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지요. 


 세상 사람들이 세상의 규칙과 질서를 내세우며 우리를 공격할 때, 성도들은 주님의 이름을 내세우고 담대히 나가야 할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이 용기와 기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명을 감당하지만,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아무 기업도 없다’ 하면서 복음 사역에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대수롭지 않게 맞받아 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갑니다. ‘닭 목을 비틀어도 해는 떠오른다.’는 말이 있듯이, 주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말에 너무 신경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몇 마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낙심하고 좌절하면 안 됩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처럼 용기를 내십시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담대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마음과 뜻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음과 뜻과 지혜를 모아서 주님의 사역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예루살렘 성벽 재건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3:1)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하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형제들(제사장들)과 함께 성벽을 건축하고 문짝을 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예루살렘은 산업도시나 행정도시 라기보다 종교도시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먼저 본을 보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섭니다. 


 우리에게 적용해 보았을 때, 하나님 나라는 믿음의 나라입니다. 무슨 정치 제도를 바꾸고, 행정을 바꾸는 것보다 앞서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삶을 살 것인가 본을 보여야 할 때 제일 앞장서야 될 사람들이 바로 목회자들이요, 성도들입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분량이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감당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정확하진 않지만, 함메아 망대에서 하나넬 망대까지 약 50미터가 좀 넘는 거리였다고 합니다. 제사장들이 무슨 건축에 대단한 기술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적극적으로 성벽 재건에 동참합니다. 잘 못해도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3:2-3)


 제사장들이 나서자, 여리고 출신의 사람들과 삭굴과 하스나아 자손들,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합니다. 그 사람들의 조상, 참여자의 이름들이 3장에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우리가 다 읽어도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느헤미야의 사역에 함께 한 자들입니다.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3:4-5)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을 기록에 남기는데,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기록합니다. 일반 드고아 사람들은 성벽 재건에 참여했는데, 오히려 귀족이 되어서 여러 가지 혜택은 누리면서도 자기 책임을 하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반면 교사를 삼아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귀족의 자격이 없지요. 우리 성도들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로서 권리는 누리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 중략 ...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 ” (3:23, 28)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느헤미야가 공사를 어렵게 시킨 것이 아닙니다. 거의 최소한의 이동 경로와 짧은 동선을 확보하도록 일을 맡겼습니다. 성전에서 가까운 대제사장과 형제들에게는 성전 가까운 곳의 망대 사이의 벽을 재건하게 했고, 집에 사는 자에게는 그 집에서 마주 대하는 성벽을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집 앞으로 나와 성벽재건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우리가 무슨 세계 먼 곳에 선교나가서 복음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집 앞에,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집 안 사람과 자녀들과 형제와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고 결단만 하면 될 것입니다. 물론, 특별히 해외나 오지에 파견하는 선교사나 사역자가 필요하지만,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우리들도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3:31-32)


 느헤미야의 지휘 아래, 정말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물론 참여하지 않은 귀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여를 독려한 것도 있지만, 느헤미야의 지도력과 통솔력이 빛나는 사건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보고 계십니다. 누가 참여하고 있고, 누가 참여하고 있지 않은 지. 하나님 나라에서 참여자로 인정받고, 주님께 큰 상급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먼곳에 나가서 선교사처럼 일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가정의 선교사의 직장의 선교사요, 학원의 선교사로서 아름다운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복음을 듣고, 복을 받아 누리는 축복의 통로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사전 조사를 통해서 예루살렘 성에서 해야할 일들을 알고, 유대 백성들 사이에서 성벽 재건을 독려했습니다. 저희들에게도 지혜와 통솔력을 주시고, 입만 열어 선동가가 되기 보다, 모범을 보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일꾼을 부르시는 주님! 저희들도, 세상에서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꾼으로 부르심을 알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님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시며,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서로 협력하고 힘을 모아 주님 나라를 이루는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각자 능력은 달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며, 일하게 하소서! 주님 나라에 공로자, 기여자가 되게 하시고, 주님의 책에 기록되는 영광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