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16:1)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 지면, 성도 간의 연대를 굉장히 중요한 주제로 다루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형제애를 강조했는데, 특히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대로 글라우디스 황제 때(AD 46년 경), 유대에게 큰 흉년이 들어서 성도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때, 구제헌금을 모아서 초대교회를 섬기는 일에 바울은 적극적으로 이방 교회들의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물론 고린도전서는 큰 기근과 흉년이 지난 시기에 세워졌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의 궁핍은 상당히 오랜 기간 계속되었습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16:2-4)
고린도 교인들도 매주 주일(첫 날)에 모여서 예배드린 것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예배만 드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헌금도 이때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헌금 관리도 교회 공동체가 인정한 사람을 세워서 관리하게 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큰 교회는 재정부서를 세워서 하든지, 이런 일을 위해서 집사라는 직분을 만들어서 감당케 하고 있지요. 사도 바울은 1, 2차 전도여행 때에도 부조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가져갔는데, 기회가 되면 또 선교 보고를 겸해서 예루살렘에 방문하려고 계획합니다.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16:5-9)
사도 바울이 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에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듣고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사역에 집중하느라, 고린도교회에 대한 방문 일정이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2차 전도 여행 중에 세운 마케도니아 지역의 빌립보 교회라든지,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복음을 위해서 에베소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지 못하고 말을 바꾼 것 때문에 바울의 대적들은 바울을 비난하고 바울이 전한 복음 조차도 부정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주님의 복음은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16:10-12)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디모데 편으로 보낸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우편이나 다른 방식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냥 편지만 던져 준 것이 아니라 이 편지를 읽어 주고 설명해 주고, 조언까지 덧붙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뜻을 잘 알고, 주님의 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바울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또한 주님께서 신뢰할만 하고,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후임이었던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의 내분으로 인해서 교역을 사임하고 바울 곁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다시금 고린도에서 사역할 것을 권면했는데, 아볼로는 마음에 큰 상처로 인해서 고린도에서 당장은 사역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합니다. 교회도 교역자를 잘 만나야 하겠지만, 교역자도 교회를 잘 만나야 합니다. 서로 맞지 않으면, 사역이 잘 될 수 없지요. 그래도 고린도 교회는 환경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명을 완수한 예가 모세가 있습니다. 무슨 사례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것 뿐인데, 온갖 욕은 다 먹고, 불평과 불만을 들어가면서,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참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바울은 그래도 여전히 아볼로를 신뢰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다시 때가 되면 사명을 감당할 것을 말하고 있지요. 예수님도 제자들을 그렇게 기다리고 인내하셨습니다. 다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다시 불러서 세우신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들도 주님께서 보내신 자리에서 인내하고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신앙이 점점 더 성숙하고 완숙의 단계에 이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6:13-14)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며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서 최고의 성숙과 성장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참 믿음 안에서 강하고, 예수님처럼 성도들과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온갖 잡신과 우상은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형제를 사랑한다면, 다투고 싸울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양보하고 배려하고 서로 섬기려고 할 뿐입니다. 교만하게 서로 잘났다고 자랑할 일도 없을 뿐더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감추고 감싸줄 것입니다.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6:15-18)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이 ‘스데바나’와 브도나도, 아가이고 입니다. 이들이 소상히 고린도 교회 문제에 대해서 바울에게 지침을 받고, 신학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받아 가지고 다시 디모데와 함께 갑니다. 이 편지가 고린도전서이지요. 사실, 바울은 이 편지가 신약 성경 중에 한 권이 될 것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지침은 오늘날 교회의 지침이 되었고, 교회는 이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6:19-20)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의 대표는 역시 에베소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서신을 기준으로 현재 바울 사도가 3차 전도 여행 중에 있는 교회지요. 아굴라와 브리스가(또는 브리스길라)는 고린도 지역에서 있습니다. 그 가정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만나 열매를 거둔 가정이지요. 고린도 교회가 단지 한 개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 지역 구석구석에 가정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함께 고린도를 복음화하는 일에 협력해야 할 교회들이 더욱 모이고 교제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각 지역마다 교파가 많이 생겨서, 교파별로는 교제가 이뤄질지 모르나, 다른 기독교 교파와는 연합이 잘 안 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도 기도하는 중에 더 협력하고, 힘을 합쳐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16:21-24)
보통 이 마지막 문구에 바울 사도가 몇 자 친필로 적고, 16장 21절 전까지는 대필자를 세워서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쓰게 했습니다. 아마 고린도전서의 대필자(공동발신자)는 소스데네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지막에 바울의 필적을 남긴 이유는 몇 몇 서신서가 초대교회에 흘러 들어간 이후, 바울의 이름으로 거짓 편지를 써서 성도들을 혼란하게 한 일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문서 위조이지요.
아마, 이단 사이비가 이런 짓을 했던 것 같은데, 바울이 그런 소식들을 접하고서, 자신이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 바울의 필적이 담긴 문안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훼방하고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저주를 받으라고 강력하게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결말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냥 여느 사람들과 나누는 친교의 말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의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깨어 경성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주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사도와 목회자는 물론, 그리스도 형제들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 받으며, 행복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를 읽으며,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발견케 하시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 성도들이 서로 하나되게 하시고, 각자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어려운 형제 자매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힘 닿는대로 섬기며 돕게 하시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힘 입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들 만이 아니라 세계 교회들도 서로 협력하게 하시고,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 되어 일하게 하소서! 때론 상처입고 지친 사역자들과 직분자들을 위로하시고, 다시금 주님의 위로와 격려 속에 사명을 되찾고 완수하게 하시며, 성도 간에 사랑과 우애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소서!
혼탁한 세상에서,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가게 하시고, 이단과 사이비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순전한 복음을 삶으로 전하며, 주님을 사랑하듯이 성도를 사랑하며, 우리의 이웃들을 옳은 데로 이끄는 주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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