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19:23)
고린도전서 마지막 장에도 언급되었지만,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만큼의 대적자들도 생겼습니다. 그 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 은으로 에베소에서 우상을 만들던 장사치, 데메드리오가 같은 우상 장사꾼들을 선동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 선교단을 위협하고 해치려고 합니다. 실제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 몇이 감옥에도 갇히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19:24-26)
에베소에는 큰 신전이 있는데, 그 신전에서 섬기는 신 중에는 ‘아르테미스’ (성경번역에는 아데미) 라는 여신을 이 데메드리오가 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니까, 이 신을 섬기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점점 우상 매출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바울이 우상을 무너뜨리는 아주 핵심적인 선포를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 아주 명쾌하지 않습니까?
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요, 신이 아닌 이유가 명쾌하게 제시됩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없애버릴 수가 있는 것이요. 아무런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런 것을 ‘신’으로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식합니까?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사람들도 그렇고,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미혹되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사실이지요.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 이런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버전으로 또 선포해 볼까요? 죽은 시체가 어떻게 신이 됩니까? 그런데, 죽은 사람을 숭배하고 있지요? 지금도 제사 드리고,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이 기도를 올리고 합니다. 참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모를 때는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이 임하면, 거짓은 무너집니다.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19:27-29)
데메드리오의 입에서 아주 정확하게 이 업자들의 진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상 장사를 하는 것은 첫째 풍족한 생활, 즉 돈이 벌리기 때문이고, 둘째, 명예 때문입니다. 아데미 신을 빙자해서 자신들이 부요해지고, 명예를 얻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이방 사제와 우상 장사꾼들이 이 사업을 하는 이유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교회들 안에, 목회자들이 이 2가지 이유로 직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래서 돈이 벌리지 않고, 명예가 없으면 일하려고 하지 않지요. 그래서 대형 교회에만 그렇게 이력서가 몰리고 그곳에서 일하려고 합니다. 딱 2가지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하게 말하면, 진짜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그냥 직장인이지.
사도 바울이나 진짜 목회자들은 무슨 이익 때문에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에 사명을 가지고 일합니다. 비록 명예도 없고, 누가 알아 주지도 않고, 넉넉하고 부유한 생활이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가짜 신은 진리를 알게 되면, 사람들의 두려움도 사라지고 신앙도 사라집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참 신이요, 만유의 주십니다. 사람이 어찌 한다고 해서 그 위엄이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온 세상에 주를 섬기는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면, 심판의 주로서 위엄을 드러내실 것이며, 큰 환란이 닥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시고, 전도자들과 교회의 선포와 전도를 통해서 인격적으로 복음을 허락하시지만, 조만간 은혜의 때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하나님이 손을 펼치시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데메드리오는 바울의 일행 몇을 사로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가서, 종교 인민 재판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데미를 섬기는 자들과 우상 장사꾼들이 함께 모여서 자기들의 세를 과시하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연극장에 모이니까, 바울 사도는 그곳에서 혹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싶어서 그 연극장으로 가려고 합니다.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19:30-31)
바울의 열심이 참 대단해서, 에베소의 관리들 중 일부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울을 보호하지요.
“선생님 지금 극장에 가시면 안됩니다. 잘못하면, 순교하실 수도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렸기 때문에 바울은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이를 통해서 극장 안의 상황을 알게 되지요. 이렇게 사람을 통해서 바울이 보호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도록 붙잡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19:32-33)
사실, 기독교인들만 이런 우상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도 이 우상 상인들에게는 고객이 아니고, 별 도움이 되지 않지요. 데메드리오가 극장에 모여서 자기들의 우상이 거절되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니까, 유대인들 중에 이 사람들의 화살이 자신들에게로 향하게 될까 염려하여서, 자기들은 기독교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변론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유대인의 대표로 알렉산더라는 사람을 내세워서 극장에서 자기들의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우상 장사꾼들이 자신들의 의제가 제대로 모아지지 않아서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19:34-36)
유대인들의 그룹과 대치된 상황으로 우상 상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위를 합니다. 그들의 신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장은 순식간에 여호와 하나님 VS 아데미 여신 대결 구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데메드리오가 잡아들인 사람은 바울과 함께 한 일행으로써, 유대인의 하나님을 전했다기보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의 극장에서 큰 시위가 벌어지니까, 에베소의 행정관리가 이 소요사태를 진정시키 위해 등장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서기장’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헬라 원문에는 ‘그람마테우스’라고 나옵니다. 에베소의 시의회의 대표자즘 되니까 우리식으로는 에배소 시의 의원장즘 됩니다. 불법 소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로마 당국으로부터 도시 자치권을 박탈당하거나 군사적 징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군중을 진정시키고 정규 재판과 공식 민회를 통해 해결하도록 중재해야 했고, 또 그렇게 할 막강한 사법·치안 조정 권한을 쥐고 있습니다.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19:37-40)
다행스럽게, 에베소의 서기장은 합리적이고 사리 판단이 분명해서, 불법 집회가 큰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을 조기에 막고, 고소 고발 사건을 재판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도록 잘 이끕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혹은 선교사들이 어느 국가의 복음을 전할 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윤리.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포교활동을 할 수 있게 행정이나 사법 체계가 되어 있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기독교가 이슬람 세계에서 선교하기 까다로운 것이 법 자체로 금지하고 막기 때문에 큰 난관이 있지요. 바울 이 에베소에 복음을 전할 때만 해도 유대교의 영향으로 기독교도 어느 정도 포교하는데 큰 어려움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세금을 내고, 황제 숭배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의 관습(종교 제의)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자,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네로 황제때부터는 정말 목숨을 걸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선교가 어려워지고 일상에서 신앙 생활하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도 점점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의 영향도 있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세속화 문제로 인해 그리스도의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맛을 잃은 소금으로 설명하신 일이 있는데, 속히 우리들은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선한 영향력을 회복해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진실한 섬김과 봉사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생겨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교회들이 각성하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큰 방해나 모함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파송된 선교사님들이 정치적 종교적 박해의 상황이 생겨나지 않도록 파송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대 사회적 또는 국가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들을 생각하며, 실현될 수 있도록 정치, 문화, 경제적인 노력들이 계속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던 사도 바울을 생각해 봅니다. 그와 함께 하였던 일꾼들이 박해와 미움을 당한 것을 봅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를 때, 세상으로부터 박해와 환난을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사, 복음의 진리가 전해지게 하시고, 열매를 얻게 하옵소서!
우리 사회가 점차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 감정이 사라지고, 정치적 사회적 박해의 상황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믿음으로 이런 어려운 난관을 견디어 내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과 교회의 모습이 예수님처럼 의롭고 선하게 변화되어 세상이 우리를 인정하고 자유롭고 평안하게 전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게 하옵소서!
전 세계에 파송된 선교사님들의 신원을 붙드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각 나라와 민족이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환경과 여건외 되게 인도하시며,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게 복음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많은 생명의 열매로 주님과 모든 백성이 함께 기뻐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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