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회개 기도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9:1-2)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안전하게 도착하여 예루살렘 상황을 파악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일부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부터가 율법을 심각하게 어기고 있음을 에스라에게 고발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방인과의 통혼입니다. 바벨론에서 1차로 귀환한 공동체 중에 혼인을 해야 할 젊은이들의 성비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방 여인이라도 데리고 와서 자녀들을 결혼시킨 일이지요. 그런데, 더 문제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리 터전을 자리잡았던 예루살렘의 이방 사람들과 통혼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 사회 안으로 동화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앙적인 결단으로 어렵게 어렵게 머나먼 땅, 조상들의 터전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마치 가나안 족속과 통혼하여 그 땅에 정착하려고 했던 선조들의 인습(因習)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 차라리 바벨론에서 그냥 살면 되지 않습니까? 바벨론 사회에 섞여서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2등 시민으로 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더 타락해서 ‘통혼’을 먼저 한 것입니다. 에스라는 예루살렘에서 옛 다윗 왕조의 영광을 재현하고, 여호와 신앙으로 민족과 나라를 새롭게 하려는 원대한 꿈과 비전이 있었는데, 예루살렘 땅에 돌아온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아서 큰 충격과 낙심과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율법을 연구하기로는 이방 사람들과 교류하고 통혼하면서 이스라엘이 멸망길로 들어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점점 약화되고 나라의 국운이 기운 것이 아합 왕 때에 시돈의 이세벨과 혼인함으로 바알 신앙이 이스라엘을 크게 타락시켰습니다. 물론, 여로보암의 첫 출발 때부터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남유다 왕국이나 북이스라엘이나 이세벨과 그의 딸 아달랴로 이어지는 우상 숭배가 다윗 왕조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9:3-6)
에스라는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서,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백성들 대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제사장으로서의 체통과 위엄은 다 내려놓고, 죄인의 모습으로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면서 하나님 앞에 죄악을 고백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죄 앞에서 그래도 하나님을 찾으며, 간구하는 에스라는 참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이런 목회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마치 자기가 회개할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참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은 옷을 찢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찢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우리가 담당해야 할 죽음을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대신 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9:7-10)
에스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숭배하다가 이렇게 나라가 망하고, 겨우 하나님께서 일부의 사람들을 살려 주셔서, 페르시아의 노예로 살고 있다가 주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기회를 주셨건만, 또 다시 통혼해서 율법을 어겼으니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9:11-15)
에스라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렇게 조금 남은 무리들이 예루살렘에서 정말 하나님만 잘 섬기고 율법을 준행(遵行)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방 사람들과 통혼해서 하나님 말씀을 어겼으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심판을 받아서 멸망해야 합니까?’ 이렇게 절규하고 있지요. 도저히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에스라의 절규에 가까운 기도는 어쩌면, 우리 속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의 기도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건만, 아무런 문제의식, 죄의식이 없이, 제멋대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에스라에게 권력도 주어집니다. 유대 총독으로서 인사권과 재판권까지 부여받습니다. 에스라 시대에는 이미 스룹바벨 총독이 임기를 마쳤던 것 같고, 사마리아나 시리아 총독이 유대 땅까지 간접적으로 다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의 개혁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10:1-4)
에스라는 종교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페르시아 왕의 조서를 받고 신임 유대 총독으로 온 권력자이기도 합니다. 이 권력자가 성전에서 옷을 찢고, 울면서 금식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긴장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뜰로 모이는 것입니다. 이 때 스가냐란 사람이 에스라에게 무엇이든지 명령만 하면 순종할 테니까 말씀만 하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스가냐는 유대인이 아니라 엘람 사람입니다. 사실 유대인도 아닌 것이지요. 요즘말로 하면, 유대교 개종자입니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의 소망은 ‘에스라’라고 하면서,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는 것이 문제이면, ‘다 이혼시켜서 내보내면 될 것이 아니냐’는 아주 명쾌한 답을 합니다. 사실, 에스라가 원하는 답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이방 여인과 결혼시키는 것이 죄라고 하신 것입니까? 우리가 룻기를 읽었지요. 룻이 모압여인이긴 하지만, 나오미를 따라 나서서 베들레헴으로 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염려하신 것은 이방 여인을 통해서 들어오는 다른 신과 우상의 문제입니다. 이방 여인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하나님만 섬기기로 개종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을 죄악시하여서, 자신의 권력으로 가정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개혁을 시작합니다. 하루 아침에 수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단순히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낳은 자녀들까지 모두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아내게 됩니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그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음식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하매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들이 삼 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아홉째 달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 때문에 떨고 있더니” (10:5-9)
에스라는 총독의 권한으로 유대 지역에 사람들을 보내어, 자신의 뜻이 담긴 편지를 보냅니다. 3일 안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소집령을 내립니다. 모이는 날짜는 9월 20일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명령을 9월에 내린 것이지요. BC 458년 1월에 바벨론에서 출발해서 5월 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으니까, 불과 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그래서 유다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소집했는지 대충 소문을 들어서, 어떤 징계를 내릴 지 굉장히 긴장한 상태입니다. 거기에 큰 비까지 내렸습니다. 유대력 9월이면, 대략 태양력으로 12월 경이니까 매우 추운 날씨에 비를 맞으면서 에스라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 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의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각 고을의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 하여 이 일로 인한 우리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그들을 돕더라.” (10:11-15)
에스라가 훌륭한 제사장이고 율법학자이긴 하지만, 너무나 단순하게 이방 여자를 아내를 삼은 것을 정죄합니다. 그것 자체를 죄로 규정하고, 회개(이혼과 자녀들을 내보내는 것)하라고 합니다. 많은 회중들이 에스라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이런 개혁을 할 수 없고, 철저히 조사해서 법적인 조치를 취하자고 결론을 내립니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각 지명된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첫째 달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10:16-17)
9월 20일에 소집하여서, 조사를 시작한 날짜가 10월 1일입니다. 그 마무리를 해가 바뀌어 1월 1일에 끝이 납니다. 약 3개월 동안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조사된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제사장의 무리 중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는 예수아 자손 중 요사닥의 아들과 그의 형제 마아세야와 엘리에셀과 야립과 그달랴라. 그들이 다 손을 잡아 맹세하여 그들의 아내를 내보내기로 하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숫양 한 마리를 속건제로 드렸으며 또 임멜 자손 중에서는 하나니와 스바댜요 ... 중략 ...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10:18-44)
이방 사람과 혼인 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에는 제사장도 있고, 레위인도 있고, 백성의 지도자들도 있고 자녀를 낳고 오랜 시간이 지난 가문도 있었습니다. 에스라서는 이렇게 끝이나는데, 에스라가 백성들에게 말한 대로 그대로 다 내보내고 이방 여인들을 쫓아내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 다음 이야기는 느헤미야서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에스라서를 읽으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했던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나라 사람들과 문화에 동화되어 가고, 변질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우리 성도들도 비슷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단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세상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이 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연약합니다. 또, 한 편으로 에스라 같이 정말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 말씀대로 실천하겠다고 엄청난 열성으로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는 사람이 오히려 가정을 깨뜨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독단을 보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에스라’는 제2의 모세처럼 여겨지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굉장히 배타적이고 독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인 교만입니다. 둘다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지요. 이런 결단을 가지고 말씀으로 온갖 죄악을 도려낸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이 칼로 누구까지 죽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정죄하고 죽이는 극단을 이룹니다.
에스라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도저히 답이 없습니다. 후에 보겠지만, 느헤미야도 하나님께서 보내시지만, 그 역시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말라기서까지 계속 선지자들과 율법 학자들과 지도자들을 보내어도 율법을 오해하거나 잘못 적용하거나 율법을 버리거나 제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친히 사람이 되게 해서 이 땅에 보내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별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온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졌다고 해도 변질되거나, 오만해지거나 주님 앞에는 연약한 죄인일 뿐입니다. 오직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우리는 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성령께서 우리 중심에 오셔서, 우리의 삶을 지배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겸손히 주님의 뜻에 굴복할 수 있기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율법학자 에스라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부흥케 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수많은 허물과 죄악들을 보고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우리들도 가정과 이웃과 민족의 죄악을 주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할 수 있는 마음과 은혜를 주옵소서!
그러나, 그의 개혁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있어서 큰 상처와 분열을 낳았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잘못된 독단적 결정을 내렸던 에스라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셔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시고, 죄악된 가정과 세상에서 참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평화와 생명의 주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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