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행 20:1)
사도 바울은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 머물며 에베소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에베소 소동으로 인해서 신변에 위협을 바울은 많이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시기 전후로 잠시 몸을 피할 겸,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예루살렘을 위한 연보도 받아 오고 선교 후원을 받을까 하여서 고린도 교회에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와 여러 번 편지를 주고 받은 정황에 나타납니다. 아쉽게도 맨 처음에 보냈던 고린도전서 이전의 편지와 고린도후서 사이에 있었던 일명 ‘눈물의 편지’ (고후 2:4)가 분실 되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혹 학자들은 고린도후서 9장부터 12장까지가 ‘눈물의 편지’가 아닌가 주장하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서 8장까지의 내용상 분위기가 확연하게 바뀌고, 어조가 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편지를 함께 붙여 놓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가 성도들의 현안에 대한 성경적, 사도적 권고로써 실질적인 삶의 지침을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면,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의 복잡한 내면의 마음을 드러내고, 복음 전도자의 어려움을 나타냅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바울은 자신을 참 사도라고 소개하고 오해를 풀고, 고린도 교회와 화해하기를 원합니다. 상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포함이 되어 있어서, 우리가 사도 바울의 좀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게 됩니다. 이 고린도후서는 마게도냐(아마 빌립보)에 와서 고린도 교회로 쓴 듯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후 1:1-2)
데살로니가 전후서와는 다르게 고린도전서나 후서에는 바울이 자신을 소개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소개합니다. 고린도의 대적자들은 바울을 예수님의 종으로 인정을 하지 않고, 그의 신분에 대해서 공격을 했던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1:3-7)
바울은 에베소에서 또 환난을 당했고, 고린도에 와서도 큰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낙심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로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계속되는 오해와 박해 속에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신실하게 복음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바울의 권면을 무시하고 배척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울의 권면을 따러서 실천한 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위로를 받은 것 같습니다. 바울이 대적자들에게 고난을 받듯이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신실하게 주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 이 고난에 동참한 것입니다. 동족들의 박해와 유대인들의 박해가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닥친 듯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1:8-11)
사도행전에는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지 않지만, 에베소에서 바울이 큰 환난을 당했는데, 사형 선고를 받은 것으로 믿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에베소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악한 자들에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지요. 또한 고린도 교회나 빌립보 교회나 여러 교회들의 간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진 교회들이 소식도 듣기 어려운데,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의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선교사들을 위해서, 그 사역과 신원을 지켜 주시기를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린도후서라든지, 이후에 수많은 서신들을 통해서 수많은 오고 오는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가 받은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도들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1:12-14)
비록 바울을 모두가 사도로 받아들이고, 협력한 것은 아니지만, 분파가 생기고 떨어져 나간 교인들이 있긴 하지만, 고린도 교회 안에서 바울의 편지를 받고, 그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회개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바울이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이 떠나도 또 다른 여러 성도들을 통해서 서로를 세워가고 또 목회자를 세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들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이요 상급입니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15-18)
바울이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원래 세웠던 여행 계획은 고린도를 먼저 들려서 마케도니아를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예루살렘)으로 가서 그동안의 선교 성과를 보고하고 구제헌금을 전달하려 했지요.
여행일정: 에베소(소아시아) -> 에게해 횡단 -> 고린도(1차 방문) ->
마케도니아(빌립보 등) -> 고린도(2차 방문) -> 유대(예루살렘)
그런데, 대적자들의 박해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서 여행 계획이 차질이 생깁니다. 이를 또, 대적자들이 고린도 교회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여서 바울의 신실함을 부정하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잠깐 고린도 교회를 다녀왔지만, 바울은 대적자들의 모욕과 극심한 반대로 고린도 교회에서 아픔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리하여 2번의 방문 계획이 바뀌었고,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한 번만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로 결정합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1:19-22)
바울이 디모데와 실루아노와 함께 전한 복음은 변치 않습니다. 누가 전해도 예수 복음은 진실하고 신실합니다. 사람은 계획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의지가 변할 수 있지만, 진리는 변치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도 바뀌고, 직분이 바뀌고, 봉사하는 자리가 바뀔 수 있지만, 복음 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 위에 우리의 믿음도 소망도 두어야 합니다. 때로는 목회자도, 성도라도 변덕을 부리는 것 같고, 믿을 수 없는 사람 같을 지라도, 우리 주님의 복음은 변치 않습니다. 주님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변치 않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그 주님의 약속 위에 우리의 생명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에 보증으로 인치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1:23-24)
만약, 바울이 가슴 아픈 고린도 교회 방문 후에 계획대로 2번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게 된다면, 처음에는 대적자들을 불러서 교회의 치리를 직접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베드로에게 치리를 받아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듯이, 그런 일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교회의 질서는 잡히고, 함부로 사도를 대적했던 죄인들은 심판을 받겠지만, 오히려 두려움으로 인해서 교회를 떠나가는 이방인들이 있을 수 있고, 괜한 오해로 인해서, 세상 법정에 설 위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바울은 기도 중에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에게도 회개할 시간과 기회를 주고, 좀더 시간을 가지고 다시 계획을 변경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광야 40년 동안, 가나안 땅을 가까이에 두고서 들어가지 못한 것을 봅니다. 고린도 교회가 대적자들을 분별할 수 있고, 좀더 지혜로웠다면, 바울이 여행 계획을 변경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2번 방문 동안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은사를 받아 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을 배척하고,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가 어지럽혀지고 교인들의 믿음이 흔들리고 잘못되는 것을 봅니다. 참 사도와 목회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복음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 때문에, 성도들이 더 하나님 앞에 감사함을 알게 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들도 그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믿음에 섰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이 어릴 때는 이것 저것 간섭을 많이 하지만, 제 할 일을 알아서 할 나이가 되면, 성인으로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자유를 줍니다. 우리는 과연, 목회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스스로 섰습니까? 예배 드릴 줄 알고, 주님 앞에 드릴 줄 알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합니까?
그렇게 믿음에 온전하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되면, 이제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닌 제 믿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생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디모네와 실루아노처럼, 영적인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자라면 성장하여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듯이, 믿음으로 서서 또 한 생명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이 근심하고 걱정했던 고린도 교회가 주님께로 돌아온 것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했던 주의 성도들, 자녀들 돌아오게 하셔서, 우리들에게도 참 기쁨을 주옵소서! 여러 가지 환난과 고통 속에서 방황했던 분들이 있다면, 주님 안에서 참 위로를 얻게 하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모두 되게 하옵소서!
우리 인간의 생각과 계획은 차질을 빚고, 바뀌며 빈번히 멈추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은, 약속은 변치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 머물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아닌 주님의 뜻을 구하고 찾는 우리 모두가 되게 인도하옵소서! 성령님께서 지도하시고 인도하셔서, 죄악의 길에 넘어지거나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옵소서!
거짓 선생들과 목사들은 자신의 유익과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성도들을 종부리듯 부릴려고 합니다. 그러나 참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의 기쁨이 되십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이웃의 기쁨과 유익을 위해서 겸손히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참으로 주님을 섬기는 바른 본을 보이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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